쉽게 생각한 고구마 농사, 큰 숙제가 됐습니다

고구마가 궁금해 농촌진흥청에 전화까지 했습니다

등록 2017.07.13 21:10수정 2017.07.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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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근에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좀 넓은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걸어서 5분 남짓, 가까운 거리에 있는 밭이지만 남편이나 저나 따로 하는 일이 있어서 주말에나 겨우 가곤 합니다. 그래서 풀이 무성해지기 일쑤고, 익었는데 미처 따지 않아 스스로 떨어져 썩거나, 매달린 채로 벌레 밥이 되는 경우도 예사입니다.


더위를 피해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일을 해야 하니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놓고 싶지 않은 밭입니다. 주말 농장을 열망한 적도 있고, 화분 몇 개 겨우 들어가는 옹색한 곳에 고추 몇포기 기르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그런 호사라고 생각하고요. 뭣보다 고생 이상의 것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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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어느 날의 수확.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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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어느 날의 수확. ⓒ 김현자


친정도 농사를 짓는지라 많은 것들을 얻어먹는데요. 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 심지 않는 것만 얻어먹고 있습니다. 고구마도 해마다 넉넉하게 얻어먹는데, 그럼에도 해마다 심고 있습니다. 손이 그리 많이 가지 않아 초보 농부인 우리가 만만하게 심을 수 있는 작물인데다, 뭣보다 딸이 밤고구마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친정은 몇 년 째 호박고구마만 심거든요.

우리 밭은 좀 가문 편입니다. 그래도 오이나 토란처럼 물을 좋아하는 것들만 아니라면 그리 섭섭하지 않게 거둘 수 있더군요. 몇 년 동안 농약 한번, 비료 한번 준적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름 내내 풋고추와 가지, 토마토 등을 풍성하게 따먹었으니까요. 고구마도 그리 많은 양은 아니나 어느 정도는 거둬 먹고 있으니까요.

올 봄, 일찍 찾아온 더위를 느끼며 고구마를 이식할 땅을 훨씬 깊게 파 물도 듬뿍 주고, 고구마순도 깊게 묻는 등 나름 지난해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반절 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보름쯤 지나 고구마순 한단을 사와 빈자리에 다시 심었는데 몇 개 살지 못하고 거의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힘이 된 것은 지난주 주말(7월 1일~)에 내려준 늦은 장맛비. 덕분에 해갈됐습니다. 빗속에서도 불쑥 자란 고구마를 보고 있자니 '잘 자란 것 잘라 땜빵(이식)하자' 욕심이 생기더군요. 지독한 가뭄에도 일단 뿌리를 내린 것들은 얼핏 50cm 가까이 튼실하게 자란 것들도 있었거든요. 재작년 7월 중순에 이식해 '작지만 쪄먹기에는 괜찮은' 크기의 제법 많은 고구마를 캔 적도 있어서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땜빵하자' 마음먹으니 한낮의 숨 막힐 듯한 땡볕도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호미와 가위를 들고 밭으로 달려가 50개 남짓의 고구마순을 잘라 빈곳마다 묻었습니다. 그런 후 남편에게 보내줄 사진 몇 장 찍자 싶어 핸드폰을 봤는데, 언니 둘과 동생이 '연꽃 보러 갈까?'로 주고받은 대화(톡)가 쌓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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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고추, 가지, 대파, 토마토 등과 함께 해마다 심는 옥수수입니다.비오는 날 원두막에서 듣던 옥수수잎에 떨어지던 빗방울소리가 그리워서도 입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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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땜방한 날 첫 수확한, 지독한 가뭄에 자라준 가지입니다. ⓒ 김현자


"호박꽃도 피고, 옥수수꽃도 피고 가지는 3개나 딸 수 있겠네/풋고추는 벌써 3번이나 따먹었지/이 지독한 가뭄에 감사한 일이지/고구마 길게 자란 것 잘라 땜빵 다했음"

읽지 못한 대화를 훑은 후 옥수수 꽃핀 것이며 가지 열린 것, 고구마 자라는 모습 등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이처럼 톡을 보냈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랬더니 엄마와 고구마를 몇 번 캔 적이 있는 둘째 언니가 연거푸 톡을 보냈습니다.

"고구마는 땜빵 안하는 것이여/땜빵 해봤자 밑이 안 들어/왠줄아슈?/본처 밑에 후처로 들어왔으나…./본처 눈치도 있고, 본처에 대한 예의 그런 것 때문에 자식은 안 낳는다는/엄마 해석이 그래/엄마한테 물어 보슈/진짜라닝께/그래서 고구마 캐다가 얼마나 웃었게요 ^^"

본처니 후처니, 본처에 대한 예의로 자식을 안 낳는다 등, 언니의 말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장난이려니, 의기양양하게 톡을 띄웠습니다.

"순 구라! /이쯤에도 심는 사람들 있던데? /엄마 고구마순도 누가 가져가기로 했다고 수북하게 키우던데? /재작년 7월 14일에 누가 고구마순 줘서 심었는데 알이 작아도 많이 캤어! /그리고 농사는 음력과 큰 상관이 있는데/올해는 5월이 윤달이잖아! 그러니 여름이 길지!"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장난으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점점 '언니 말이 맞다!' 쪽이 되더군요.

10여 년 전, '같은 대나무 뿌리를 나눠 우리나라에도 심고 미국이나 아프리카에 심었을 경우 그중 한곳의 대나무가 꽃을 피우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같은 뿌리 대나무도 꽃 핀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그동안 상상을 벗어난 식물의 신비스러움을 접하며 대나무 유전자에 대한 이와 같은 사실을 믿는 쪽이었거든요.

사실 땜빵하자 마음먹은 것은 재작년에 올해보다 늦게인 7월 14일에도 심어 어느 정도 수확했기 때문인데요. '그때 밑이 들었던 것은 전혀 다른 밭에서 잘라온 것을 심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같은 밭에서 자라는 것을 잘라 심으면 대나무처럼 고구마 유전자에 있는 그들만 아는 그 무엇 때문에, 엄마 해석대로 밑이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땜빵해도 고구마 밑은 들지 않는다. 고구마 줄기 따먹을 것 아니면 땜빵해봤자 소용없다. 잘 자라도 밑은 하나도 들지 않거든. 언젠가 한해 반절 이상이 죽어버려 아쉬운 마음에 잘 자란 것 잘라 땜빵했지. 줄기가 얼마나 잘 자라던지 많이 캘 수 있겠다 좋더만. 그런데 줄기 걷어도 하나도 안 나오는 거야. 그것 참 당돌하다 싶고, 한마디로 웃기더만! 식물도 함부로 볼 것이 아니다. 참 자존심 강한 고구마다 싶더라!"

언니 말은 맞았습니다. 농부 아내로 60년을 살아온 엄마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 봄에 읽은, 농부 부부가 55가지 작물의 꽃을 생태와 함께 풀어쓴 <밥꽃마중>(들녘펴냄)을 빼들고 고구마 편을 뒤졌는데 알고 싶은 것에 대해선 없더군요. 검색해 봐도 죽은 곳에 땜빵했다는 말은 있지만 시중에서 사다가 했다고 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궁금함은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넓은 밭을 놀리는 것이 죄스러워 쉽게 생각하고, 만만하게 심기도 했던 고구마가 갑자기 너무 어렵게 생각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전화하게 된 곳이 농촌진흥청. 고구마 담당자(7월 5일)에게 들은 고구마이식과 고구마 꽃에 대한 대답입니다. 사소하게 통화하며 들은 것을 기억해 정리한 것이라 표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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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2016년), 농약 한번, 비료 한번 주지 않고 퇴비와 EM활성액만으로 키워 수확, 8월~9월 햇볕에 말렸습니다. 빻아 부모님께도 드리고 형제들과 살림 난 조카들과도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고마운 이웃 몇분께도 드렸습니다. 뿌듯했습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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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수확한, 정말 맛있던 밤고구마. ⓒ 김현자


- 엊그제 고구마 땜빵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같은 밭에 자라는 것을 잘라 심으면 줄기는 잘 자라도 밑은 들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이식했다는 말이지요. 너무 늦었네요. 같은 밭에 자라는 것을 잘라 심어 밑이 들지 않는다? 그건 아닙니다. 조건만 맞으면 그래도 얼마든지 밑이 들 겁니다. 고구마는 잎을 통해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밑이 들고, 굵어집니다. 그러자면 뿌리 내리고 석 달 정도가 걸리는데, 지금 이식하면 그렇게 되기까지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밑이 들어도 충분히 자라지 못해 작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재작년에 고라니가 잎을 따 먹은 후 밑이 잘 들지 않았어요. '고라니가 한번 뜯어먹으면 밑이 들지만, 여러 차례 뜯어 먹으면 밑이 들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잎이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하는데 고라니가 뜯어 먹으면 잎이 줄어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잖아요. 그러니 횟수 상관없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습니다."

- 사실 전라도에선 한여름에 고구마순을 따 김치도 담가 먹고, 다른 지방에서도 여름에 고구마순 따서 반찬 해먹곤 하는데요. 그런데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네요?
"이식한 지 3개월 이전에는 가급 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최대한 햇빛을 많이 받는 것이 좋거든요. 캐기 10일 전에는 따줘도 크게 상관없고요. 줄기가 너무 무성하면 일부러 잘라내기도 하고 그럽니다. (아마도 양분이 줄기로 지나치게 가기 때문에?) 고구마순을 따도 크게 큰 영향이 없었던 것은 잘 자라고 있어서였을 겁니다. 만약 잘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땄다면 영향이 보다 클 수 있습니다."

- '고구마 꽃을 보면 행운이 온다'며 뉴스에도 나오고 그랬잖아요. 예전에는 고구마 꽃 보기가 참 힘들었는데, 요즘엔 아주 흔한 것 같아요. 이젠 뉴스 꺼리도 아니고요. 친정 엄마 말이 호박고구마 꽃이 훨씬 잘 핀다고 하던데요. 고구마 꽃이 흔한 진짜 이유는?
"작년까지도, 가을이면 고구마 꽃이 폈다는 전화가 많이 와 정신이 없었습니다. 고구마 원산지가 우리나라보다 더운 곳이잖아요. 고구마 꽃이 쉽게 피는 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더워졌기 때문에 그리고 품종 때문에, 이 둘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품종 때문에 많이 핀다에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밤고구마는 우리나라 환경에 적응해 자라며 꽃을 잘 피우지 않는 우리나라 재래종을 품종 개량한 것이고, 호박고구마는 (아마도 대체적으로 꽃이 잘 피는) 일본고구마를 일본에서 품종 개량한 것입니다. 아마도 고구마꽃이 폈다면 호박고구마인 경우가 많을 겁니다. 요즘에 호박고구마 많이 심잖아요. 꽃이 그만큼 흔할 수밖에 없겠죠."

- 꽃이 피면 밑이 덜 든다. 들어도 크게 자라지 못한다며 꽃을 따주는 사람들도 많던데요.
"꽃과 크게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품종에 따라 덜 피고 많이 핀다니까요. 그러니 일부러 따줄 필요는 없습니다."

고구마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분들에게는 어설픔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쓰는 이유는 우리처럼 어깨 너머 농사를 지으며 우여곡절을 겪거나, 우리 이웃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꽃 때문에 밑이 들지 않거나 굵어지지 않는다', '꽃을 따줘야 밑이 잘 든다'처럼 잘못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궁금한 것은 풀렸는데, 고구마 좀 많이 얻자고 욕심 부려 잘 자라고 있는 고구마 순을 잘라내 그나마 얻을 수 있는 것들까지 놓친 것 같아 뜨끔뜨끔, 후회되네요. 줄기를 자른 것이 고라니가 뜯어 먹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됐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고구마를 얼마나 캘 수 있을까?'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많든 적든 그 모습을 보여주는 고구마들이 무조건 고마울 것 같습니다.

#고구마 #고구마이식(땜빵) #가뭄 #텃밭 #도시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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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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