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간만에 '한 건'한 <시사매거진 2580>... 두고두고 아쉬운 하나

[TV리뷰] 김경준 전 BBK 대표의 폭로 "나는 정치적 도구였다"

17.07.10 18:20최종업데이트17.07.10 18:42
원고료로 응원


[기사 수정: 10일 오후 6시 43분]

"나는 정치적 도구였다."

투자자문회사 BBK의 전 대표인 김경준씨가 MBC TV 시사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입장이다.

9일 오후, MBC <시사매거진 2580>은 지난달 11일에 이어 두 번째로 투자자문회사 BBK 김경준 전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달엔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했고, 이번 방송에서는 자신의 입국이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라는 심경을 밝혔다.

BBK의 추억,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김경준 BBK 전 대표는 MBC TV 시사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과 인터뷰에서 억울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 MBC


당시를 복기해보자. 김경준 전 대표의 입국은 2007년 대선판의 뇌관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보수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노리고 있던 와중이라 유력후보에게 제기된 BBK 관련 의혹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김 전 대표가 한국에 온다고 하니 한나라당으로서는 악재가 겹친 셈이었다.

이때 한나라당은 편지 한 장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이 편지는 국내에서 강도상해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붙잡힌 신경화씨가 LA 구치소에 갇혀 있다가 마침 함께 있던 김 전 대표에게 전해 들은 말들을 옮겨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 편지엔 김 전 대표와 '큰집(청와대)' 사이에 모종의 이면 합의에 따라 입국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나라당 대선 캠프는 편지를 근거로 역공을 가했고, 이 전 대통령은 가까스로 BBK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이던 2012년 이 편지는 허위임이 드러났다. 해당 편지의 작성자인 재미 치과의사 신명씨는 경희대 직원이었던 양승덕씨의 부탁으로 편지를 쓰게 됐다고 폭로했다. 양씨는 해당 편지를 김병진 당시 이명박 대선 캠프 특보에게 전했고, 김 특보를 거친 편지는 은진수 BBK 대책팀장, 홍준표 당시 클린정치위원장에게 순차적으로 전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는 7월 양씨를 가짜편지의 기획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수사는 양씨 선에서 멈췄다. 검찰이 배후는 없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김경준 전 대표의 기획 입국 정황은 이명박 전 정권의 정통성을 뒤흔들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사건의 심각성이 무색하게 검찰은 교직원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고, 이후 부실수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정봉주 전 의원은 <시사매거진2580>과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사건을 왜곡시키고 사건을 한쪽으로 틀어가는 데 일정 정도 기여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보면 <시사매거진2580> 보도는 BBK 사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한다. 그러나 내용의 무게감에 비해 방송 분량은 아쉽기만 하다. 해당 사건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대선 캠프와도 얽혀 있다. 김 전 대표는 박 전 대통령 변론을 맡은 유영하 변호사와 이혜훈 현 바른정당 대표도 기획 입국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유 변호사가 한국에 입국해 BBK 관련 진술을 하면 대가로 사면과 변호사 비용 30만 달러를 지원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도 변호사를 통해 기획 입국을 제안했다는 게 김씨의 요지이다. 흥미롭게도 유 변호사와 이 대표는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 속해 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혜훈 대표는 이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관련 정황의 진위를 규명하려면 더욱 심층적인 취재와 상황 분석이 따라와야 하는데, 12분가량의 방송 분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대에 김 전 대표의 인터뷰가 방송된 점도 아쉬움을 더한다. MBC가 처한 상황을 볼 때 김 전 대표의 인터뷰가 전파를 탄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 BBK와 판박이?

검찰은 BBK 기획 입국 의혹에 대해 당시 경희대 교직원이던 양승덕씨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검찰 수사는 부실수사라는 비판이 일었고,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 MBC


이 지점에서 사족 하나를 더하고자 한다. 흥미롭게도 김 전 대표의 기획 입국 의혹은 현 정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과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국민의당은 대선이 임박한 시점인 5월5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 채용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당이 쥐고 있던 '패'는 문준용씨와 함께 미국 파슨스 스쿨에서 공부했다는 친구가 증언했다는 녹취록이었다. 국민의당은 이를 근거로 대선 막판까지 31차례에 걸쳐 관련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의당은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국민의당은 자체 조사를 통해 이유미 한 사람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결론은 오히려 당을 더 큰 위기로 몰아갔다. 허위정보를 검증할 당 차원의 시스템이 부실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김경준의 기획 입국과 문준용씨 채용 특혜의혹은 대선 막판 판을 뒤 흔들 만큼의 폭발력을 지닌 쟁점이었고, 관련 근거가 조작됐다는 점은 판박이다. 다른 점이라면 검찰 판단이다.

2012년 검찰은 기획 입국 편지 조작에 대해 편지 자체는 가짜지만 내용은 진짜라는, 사뭇 정치적인 판단을 내렸다. 반면 제보조작 사건에서 검찰은 조작 당사자인 이유미씨를 구속했고,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게 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사 진행에 따라선 당 지도부가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잘못이 불거졌을 때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잘못은 되풀이되는 법이다.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특정 정당이 관련 증거를 조작해 판을 흔드는 시도는 민의를 왜곡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사안이 이토록 위중함에도 지난 2012년 검찰은 BBK 편지 조작 가담자들을 풀어줬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검찰의 국민의당 제보조작 수사는 정도를 걷고 있다고 본다.

부디 검찰이 그 어떤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관련자들을 밝혀내고 가담 정도에 따라 적절한 조처를 하기 바란다. 만약 사건을 무마한다면 선거판을 더럽히는 범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검찰의 신뢰추락은 덤이겠다.

김경준 BBK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