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을 권리'와 '일할 권리'를 충족하는 방법

[서평] 노동에 대한 새로운 화두 <일하지 않을 권리>

등록 2017.07.16 18:08수정 2017.07.16 18:08
0
원고료로 응원
아들은 청년 취준생, 나는 고령자에 속하는 구직자다. 최근 이력서를 냈다. 소식이 없었다. 몇 주 후 이런 답이 왔다.

'연락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경력사항은 다 좋은데 나이 때문에 정식 직원으로 고용하기는 어렵고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면접 보겠다고 합니다. 면접 일정 조율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령자인 나는 일하고 싶어도 마땅히 일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고령자는 나이가 걸림돌이 되지만 젊은 청년이라고 해서 원하는 일자리를 마음대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들이 구하는 일자리에는 아예 구인 공고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일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일할 수 없는 사회다.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노동 없는 노동자' 사회가 된 것이다. 일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실업자는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받는다.

내 꿈은 동네에서 책 읽어주고 동네 방송을 하는 할머니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늙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 곧 생계 능력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꿈은 한낱 게으름뱅이의 자기 변명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일자리를 찾은 노동자라도 쓸데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법정 노동시간이 아닌 지나친 노동을 강요당한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소비적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요된 노동에 대해 적절하고 정당한 임금이라도 받고 있는 것일까.

2017년 대한민국 최저임금은 6470원이다. 한 시간 노동의 대가로는 영화 한 편도 보지 못한다. 한 끼 식사마저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다. 하지만 부당한 노동 대가에도 일자리가 주어진다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인 모순구조다.


a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반론 <일하지 않을 권리> ⓒ 동녘

만일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를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일하지 않을 권리>(동녘)는 스스로 노동 시간과 노동의 질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기선택권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일하는 괴로움, 일이 인간을 어떻게 노동에 종속 시키는가, 인간은 왜 일을 하는가를  통해 사회가 강제한 노동에 대해 짚어준다. '일할 권리'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후반부는 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을 통해 대부분의 노동자가 원하는 정규직 노동을 벗어나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예를 통해 자발적 선택적 노동을 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속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역설한 앙드레 고르는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 와도 일을 중심에 둔 사회 진보 이상을 계속 장려할 테고, 삶은 일자리를 찾고 지키려는 투쟁으로 점철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기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생활을 위한 노동은 최소로 하고 모든 물품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시간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이상사회를 그려냈다.

앙드레 고르 역시 이상적인 노동 여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시간을 선택하는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 개념을 생각해 냈다. 생활을 위한 노동은 최소로 모두가 골고루 나눠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의 영성과 창의력 발달을 위해 투자하는 사회로의 변화하자는 말이다.

'뭐라고 부르든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회 전반에 걸친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될 것이다. 필수노동을 사회적으로 나누는 방식을 개선해 실업률을 줄일 것이다. 노동 가능 시간을 전 인구에 보다 균등하게 나눔으로써 소수 직업 엘리트 대 다수 실업자, 불완전 고용자, 임시 고용자로 나뉘어 심화하는 사회 분열을 역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각자가 일을 줄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을 것이다.' - 293쪽.

책 속에서 아도르노는 '노동자가 진정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다. 그러며 '일하지 않는 시간은 암묵적으로 그저 다시 일을 시작할 준비에 들이는 시간일 뿐,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자유시간은 없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준비를 하고 대기해야 하는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개인의 시간을 대기 노동에 저당 잡힌 삶을 사는 호출형 노동자들(노동시간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필요할 때 '호출'하면 달려가야 하는 노동 형태. 고용주는 노동시간을 보장할 의무가 없으며, 노동자는 실제 노동한 시간에 대해서만 임금을 받는다. 호텔, 외식 산업, 돌봄 노동 부문에서 확산되고 있다 - 60쪽 인용)이 그런 경우다.

저자인 데이비드 프레인이 말하는 '일하지 않을 권리'는 다시 말하면 '일과 시간을 선택할 권리'다.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 저자는 기본소득을 통해 모두의 기초 생활을 보장하고, 경제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일을 쓸모없는 일로 치부하는 사회의 인식을 바꾸어 내려는 사회적 담론이 확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의미 없는 일자리, 또는 사회적 유용성이 낮거나 아예 없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느라 뛰어다닐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 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여가 그리고 생성한 부를 균등하게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294쪽 엔더스 헤이든, '일을 나누고 지구를 지키자'

필수노동 노동시간을 균등하게 나누어 모두가 일을 나누어 최소한으로 경제적인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다양한 비생산적 활동을 늘리면 일하지 않을 권리와 일할 권리가 모두 충족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말은 자본가들이 일하지 않을 권리를 선택한 사람들을 사회적 낙오자나 게으름뱅이로 낙인찍는 것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인간은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 노동을 질과 시간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일할 권리만큼 일하지 않을 권리도 존중되어야만 한다.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찍히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된다면, 각자의 내면에 숨겨진 다양한 창조와 개성의 씨앗들을 마음껏 꽃피우는 모두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a

일하지 않을 권리 ⓒ pixabay


덧붙이는 글 일하지 않을 권리/데이비드 프레인 지음. 장상미 옮김/ 동녘/ 16,000원

일하지 않을 권리 -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반론

데이비드 프레인 지음, 장상미 옮김,
동녘, 2017


#일하지 않을 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