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왜 '금단의 사과'를 따먹었을까?

국가정보기관의 정치 중립 강조하는 박종재 지음 <정보전쟁>

등록 2017.07.16 12:16수정 2017.07.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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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첩보영화의 기준점을 세웠다는 '본 시리즈', 국제통화기금이란 악명으로만 알고 있던 IMF가 미국 최고 첩보 부대(Impossible Mission Force)라는 사실을 알려 준 '미션 임파서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007시리즈까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파이 세계는 냉혹하면서도 매혹적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은 너나없이 비상한 두뇌뿐만 아니라 탁월한 격투실력과 섹시함으로 무장하여 신출귀몰한다. 그들의 세계에선 불가능이란 없다. 그럼 현실 세계는 어떨까?

책 표지 <정보전쟁> 박종재, 서해문집 ⓒ 서해문집

제1차 세계대전부터 이라크전쟁까지 현대사에서 전쟁의 승패와 국가의 명운을 가른 정보전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정보전쟁>은 제목에서부터 스멀스멀 음모의 기운이 느껴진다. 적성 국가나 기업 등에 침투하여 기밀을 알아내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스파이들의 은밀한 활동을 훔쳐볼 수 있겠거니 하고 책을 들었다.

마침 매트릭스 랜섬웨어로 각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즈음이었다. 언론에서는 악성 코드를 이용하여 돈을 요구하는 지능형 위협 수준을 넘어 테러리스트들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었다. 즉, 향후 산업·제조 현장의 설비자동제어장치(PLC)가 랜섬웨어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였으면 톰 크루즈가 나서야 할 장면이다.

<정보전쟁>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실과 안보정책실장실, 안보정보비서관실 등에서 군사·외교·정보 영역 업무를 두루 경험한 저자 박종재 교수가 정보전의 승패 사례를 열거하며 국가 정책의 관점에서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를 말한다.

저자는 먼저 성공한 정보가 승리의 열쇠가 된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치머만 전보 사건'과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미드웨이해전, 6일 전쟁 등은 정보전의 승리였다. 영국 해군 정보부가 기획한 치머만 전보 사건은 미군의 참전을 이끌어 냈고, 영국 정보기관이 벌인 기만작전이 바탕이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쟁의 줄기를 바꿨다. 이어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정보 역량은 중동 지형을 바꿨다. 또한, 냉전 시대 소련과 동구권 붕괴를 촉진시킨 것 역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반면, 실패한 정보는 대재앙의 불씨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은 정보를 무시하여 독일의 침공에 무방비로 당했다. 미군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당하고도 베트남전에서는 구정 대공세를 예측하지 못해 큰 피해를 입었다. 9·11 테러 등의 대테러 전쟁에서 미국 정보기관은 정보를 무시하여 큰 굴욕을 당했다. 이라크전쟁은 백악관이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정보를 믿은(믿고 싶었던) 어리석은 전쟁이었다.

저자는 정보활동이나 안보 정책 결정이 대부분 베일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로 실패와 성공 여부를 엄밀히 판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이를 평가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정보전의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 의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못 박는 부분이 있다.

"거의 모든 정부의 정책 실패는 어떤 형식으로든 정보 실패를 수반한다." -145쪽

진주만 피습으로 정보전의 중요성을 어느 나라보다 깊게 체감했던 미국인들은 오늘날도 "진주만을 기억하라"며 적에 대한 정보 우위를 강조한다. 그만큼 진주만 기습의 상처는 오늘날까지 깊고 아프게 남은 것이다. 실제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관 킴멜 제독을 방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장에서 소장으로 두 계급 강등시켰다. 이처럼 미국은 무엇보다 정보 실패를 엄중하게 다룬다.

"정보 실패 책임을 킴멜 사령관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워싱턴의 분노는 그만큼 대단했고 현지 지휘관은 경계 실패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킴멜 사령관은 계급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오랜 군 생활을 불명예로 마감해야 했다." -174쪽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 46명이나 사망 혹은 실종된 천안함 사건을 두고 정부와 군은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으로 침몰되었다고 했다. 적의 잠수함을 잡아야 하는 초계함이 오히려 군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잠수정에 의해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격침되었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천안함은 경계에 실패했다. 그런데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정부는 천암함 폭침을 정치화시켰고, 경계에 실패한 천안함에 대해 훈장, 표창과 승진까지 안겨주었다. 경계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더글라스 맥아더가 한 말을 아는지 모르겠다. 그는 군에 가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군사 어록의 주인공이다.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경계는 정보에 기초하는 법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보전을 이야기할 때, '천안함을 기억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쟁과 정보 활동의 상관관계 속에서 정보가 어떻게 발전해 왔고, 미래의 정보전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 말해 준다.

무엇보다 국가 정보의 중요성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숙한 사례를 들어 가능한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정보활동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정보가 수집되어 정책 결정권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현상과 그 결과가 국가의 흥망성쇠에 미치는 영향까지 살피고 있어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은 국가정보활동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제고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이명박 정부가 원세훈 국정원장을 동원하여 국내 정치 및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야당 정치인 사찰 정황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저자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정보의 정치화라는 금단의 사과를 따먹었고, 그 결과는 국가 재앙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정보의 정치화는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항상 강한 유혹이지만 개인적으로 치명적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 전체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정보를 생산하는 정보기관과 이를 사용하는 정책 결정권자 모두가 항상 유념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는 이유다." -311쪽

정보는 행정부의 계층 구조에서 소비자가 압도적 우위에 있는 소비자 시장이다. 여기에서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은 생산자인 반면 정책 결정권자는 정보 소비자다. 저자는 정보 소비자는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정책을 다루므로 정보 정치화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 보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보안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아쉽게도 정보 정치화의 달콤한 유혹은 선거철만 되면 더욱 달달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정보 생산자의 정치화 예방을 위해 감시 역할을 해야 할 국회나 언론 등이 앞장서서 남북정상회의 자료 등을 각색하며 뿌렸던 걸 보면 말이다.

<정보전쟁>은 국가정보기관의 정치 중립이 절대 필요함을 강조한다. 국정원이라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마치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흥신소처럼 운영되었다는 소식에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원세훈, 아니 이명박은 이 책을 진작에 읽었어야 했다. 이 책이 이제야 나온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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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손 꼭 잡은 홍준표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인 홍준표 경남지사가 4월 3일 오후 서울 대치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무실을 찾아 이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 연합뉴스


정보전쟁 - 제1차 세계대전부터 사이버전쟁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비밀들

박종재 지음,
서해문집,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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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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