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절단에도 삼계탕 500마리 봉사

4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초복달임 삼계탕 끓인 고성주씨

등록 2017.07.13 11:44수정 2017.07.1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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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다림 매년 초복이되면 지역 어른들을 모시고 복다림을 한다 ⓒ 하주성


12일 초복에 삼계탕을 먹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이런 삼계탕은 처음이야.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문음식점도 아니고 가정집에서 끓여내는 삼계탕의 맛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초복이 되면 매년 300여명의 어른들이 수원시 팔달구 창룡문로 56번길 18(지동)로 모여든다. 올해는 어림잡아 400명 이상이 다녀갔다.


이 집에 거주하는 고성주씨는 벌써 40년이란 세월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초복다림인 삼계탕을 끓인다. 그것도 가족들이 먹기 위해 몇 마리를 조리하는 것이 아니고 매년 300~400마리 이상의 삼계탕을 조리한다. 초복 아침이 되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 집을 찾아오는 어른들은 수원시 팔달구 지동과 인근 우만동, 인계동, 매교동 등에서 찾아온다.

도대체 이 집의 심계탕에는 어떤 비밀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노인들이 이 집을 찾아오는 것일까? 삼계탕 조리를 하는데 왜 꼬박 3일씩이나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어른들이 통을 들고 와 이집 삼계탕의 육수를 받아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40년 동안 알려주지 않고 있던 삼계탕에 숨은 이 집만의 노하우를 전격 공개했다.

육수 첫날(10일) 소뼈와 다시다, 황기, 엄나무 등을 넣고 24시간 고아낸 육수 ⓒ 하주성


고성주 둘째날(11일) 24시간 고아 낸 육수에 감자와 양파를 갈아 놓고 24시간 또 끓여낸다 ⓒ 하주성


손가락이 절단되었어도 약속한 삼계탕 봉사

고성주씨가 끓이는 삼계탕은 말 그대로 보양식이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500마리나 되는 삼계탕을 끓이기 위해 초복 2일전인 10일부터 준비를 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본육수를 내는 일이다. 우선 커다란 통에 소족과 소꼬리를 가득 채운다. 거기에 다시마와 대파 뿌리, 배, 엄나무가지, 황기 등을 넣고 24시간 고아낸다. 이렇게 24시간 고아낸 것이 바로 삼계탕의 기본육수이다.

24시간 동안 고아낸 소뼈 국물은 그야말로 진한 곰탕이 따로 없다. 들어간 내용물을 채로 건져내면 뽀얀 국물만 남는다. 11일(2일째) 그렇게 고아 낸 육수에 양파와 감자를 갈아 집어넣고 다시 24시간 끓인다. 끓이면서 연신 젓고, 위로 올라오는 내용물은 일일이 걷어낸다, 24시간 육수를 끓이는 솥 앞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올해 고성주씨의 초복다림은 힘들다고 한다. 10여일 전 출타를 하기 위해 차문에 손을 대고 있는데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자신의 차인 줄 일고 문을 닫는 바람에 좌측 손 소지 한마디가 절단되는 사고가 났다. 다행히 재빠르게 병원으로 달려가 접합수술을 했지만, 아직도 성치 않은 손으로 500마리나 되는 닭을 조리한 것이다.

삼계닭 500마리가 넘는 닭을 준비했다. 일반 삼계닭보다 더 크다 ⓒ 하주성


닭삶기 48시간 고아낸 육수에 닭을 넣고 3시간 이상 끓인다 ⓒ 하주성


접합 사고로 손가락 접합수술을 받고도 매년 연례행사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복다림을 하고 있다 ⓒ 하주성


"어떻게 가정집에서 이 많은 사람들을 대우하나요?"

12일 아침이 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초복다림에 힘을 보태줄 사람들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행정복지센터(동장 박란자) 직원들과 주민자치위원회, 기동순찰대 등에서 일을 도와주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그 외에도 매년 초복이면 삼계탕 봉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몇 명인가도 찾아왔다.

사람들은 오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상을 놓고 수저와 반찬 등을 늘어놓는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찾아오기 시작한 어른들을 일일이 안내해 자리에 앉힌다. 이어 큰 그릇에 담긴 삼계탕을 한 그릇씩 앞에 놓는다. 반찬이며 음료수, 반주까지 곁들인다. 몰려들기 시작한 어른들은 금방 앞마당과 지하연습실 입구, 집안까지 들이찼다.

500마리의 닭 중 430마리 정도가 솥 안으로 들어갔다. 이틀간이나 불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던 고성주씨의 얼굴이 벌겋다. 30도를 웃도는 더위에 불 앞에서 떠나질 못했으니 얼굴이 익을 만도 하다. 그 통에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다닌다. 매년 초복이 되면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봉사 지동주민센터 등에서 모인 10여명이 함께 봉사를 하고 있다 ⓒ 하주성


일반인들은 절대 불가능한 초복다림

"오늘 참 대단한 봉사를 했네요. 제법 큰 주민센터에도 이렇게 많이 모이지를 않는데 어떻게 가정집에서 삼계탕을 4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상대로 초복다림을 할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아요. 이 동네는 정말 복 받은 동네예요"

아침 이른 시간부터 찾아와 봉사를 한 박경숙(지동주민. 전 지동기동순찰대장)씨는 자신도 봉사라면 꽤 한다고 했는데 이런 봉사는 처음 보았다면서 "지동은 복 받은 동네"라고 한다. 12시가 지나자 그렇게 북적이던 어른들이 다 빠져나갔다. 접합수술을 받고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마을주민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고성주씨. 그의 매년 이어지는 초복다림 때문인가? 지동은 수원시에서 노인의 비율이 가장 많은 18%나 되는 마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티스토리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초복다림 #레시피 #고성주 #접합수술 #연례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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