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된 정든 아파트를 팔았어요

"사모님처럼 집 관리를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등록 2017.07.17 14:16수정 2017.07.1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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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 정현순


"우리처럼 아파트를 20년 동안 가지고 있다 파는 사람이 꽤 있지요?"하고 내가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었다. 부동산 중개인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거의 없지요. 사모님처럼 부동산을 이렇게 관리하시면 안 돼요. 사모님은 20년 동안 아주 편하게 사셨어"한다.


"아 그래요~~"

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에는 조금이라도 좋은 말을 들으려고 했었나보다. 생각해보니 다른 친구들도 그동안 몇번이나 사고 팔고 하긴 했었다. 그의 말대로 번거로움이 싫어 아주 편하게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이번에 아주 큰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10년 동안은 내가 살았고 10년 동안은 세를 주었던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했다. 꼭 20년이 되는 해가 되어 기본 대출금도 다 갚았다. 대출금을 다 갚으니 괜스레 뿌듯한 마음도 들었었다.

그동안 집을 팔고 사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기에 등기부등본에도 남편이름으로 된 것이 전부였다. 어찌 보면 그런 것을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하고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고 싶은 생각에서 집을 팔게 된 것이다. 이번에 팔기로 한 그 아파트의 세입자는 4년을 살았고 만기일이 7월이라 세입자와 합의를 보고 집을 내놓게 되었다. 

집은 생각보다 빨리 팔리지 않았어요


이번에 그런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식들 가까이로 가기로 가족들이 협의를 보고 지난 4월에 집을 내놓았다. 20평대의 작은 아파트라 집이 빨리 팔릴 거라 생각했다. 그 주변에 친구들도 많이 살고 있어 그들도 한결같이 "자기네 아파트는 빨리 팔릴 거야. 거긴 몫이 좋아 내놓으면 금세 팔린다더라." 했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집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고 집을 보러오는 사람들도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많은 부동산에  집을 팔아달라고 내놓았다. 그래도 반응은 변하지 않았다. 그제야 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더니 부동산에서 하는 말이 "세입자가 집을 잘 안 보여줘서 그 집 과연 팔릴 수 있을까?하는 말이 우리업계에서 돌고 있어요."한다.

그뿐 아니었다. 집이 어찌나 지저분한지 어쩌다 집을 보고 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주인이 안 살고 세입자가 살면서 집을 내놓으면 이런 저런 일들이 있다고는 심심치 않게 듣곤 했었다. 걱정이 앞섰다.

그 세입자가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2년 전 만기 때에도 아이들 때문에 더 살고 싶다고 사정사정하기에 난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그럼 그렇게 해요. 어차피 또 세를 줄 거니깐"하며 흔쾌히 그러라고 했었는데. 왠지 모를 배신감에 허탈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도 없이 살아봐서 세입자에게 모질게 한다거나 황당하게 세를 올린 적이 없었다.

이번에 집을 내놓으면서 세입자에게 자초지정을 말하고 사정하듯이 집 좀 잘 보여 달라며 신신당부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또 간간히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하기도 수차례. 하지만 세상살이가 내생각하는 데로 돌아가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깨닫는 기회도 되었다.'

이일을 어쩌나?'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난 새로 이사 갈 집을 계약을 했고 중도금 날짜도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 세입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갔고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여유자금이 있어 대체할 형편도 안 되었다.

다행히 집은 팔렸고 새주인을 만나다

2년 전 다시 재계약을 했기 때문에 요즘 시세보다 조금은 싸게 살고 있는데 이렇게 까지 하다니. 내가 사람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좋은 말을 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사람은 참 착한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부동산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그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모님이 내일 아침에 오셔서 집을 보여주세요."한다. 나도 그의 말을 듣고 다음날 오전에 그가 집에 있다는 통화를 하고 내놓은 아파트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집은 온통 난리도 아니었다. 강아지 배설물도 여기저기. 집안 환기도 잘 안 시킨 듯했다.

그래도  세입자에게 이런 저런 말 하지 않고"ㅇㅇ씨도 자꾸만 집을 보여주기도 번거로우니깐 이번 한 번에 잘 보여주고 끝냅시다. 도와줄 테니깐 청소 나랑 같이 할까요?" 하니 그도 조금씩 움직였다.

앞뒤베란다를 가보니 내가 살던 집이 맞나 할 정도로 정리를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강아지 두 마리도 키우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되어 부동산 중개사는 젊은 여인과 함께 집을 보러왔다. 여기저기 흩어보더니 나와 함께 사무실로 가자고 한다. 난 기대를 하고 그의 부동산사무실로 갔다.

부동산사장이 하는 말이 "집을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니 가격을 조금 내려서 파세요. 공사비정도 빼주면 산다는데. 이렇게라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 파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 싸게 파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계약을 하게 되었다.

계약이 끝나고 부동산사장이 "집주인이 왔는데도 집을 안치우고 있었어요?" "아니요 나와 함께 치운 것이 그래요"하니 그는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그 세입자는 직장이 어디에요. 가끔 손님 데리고 간다고 하면 지금 바빠서 집 못 보여준다고 하던데" 하며 묻는다. "집에서 5분 거리에서 장사해요"하니 그는 또 놀란다. "난 아주 먼 곳에서 일하는 줄 알았네요."한다.

그래도 집이 팔렸으니 세입자에게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며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나중에 들으니 남편이 아파 잠시 입원도 해 혼자 바빴다고 전해준다. 아마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세입자가 이사하는 날 난 그와 악수를 하며 건강하게 잘 살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년 된 정든 우리 집은 남의 집이 되었다. 공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인테리어가 된 옛집을 둘러보았다. 마치 신혼집처럼 예쁘게 꾸며졌다. 깨끗하게 단장을 한 집을 보니 많은 옛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도 뭉클해졌다. 오래된 만큼 정이 많이 든 집이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옛집에 들어온 새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20년 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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