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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언 vs 뒤끝' 최형우와 삼성 팬들의 갈등

17.07.17 05:32최종업데이트17.07.17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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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최형우. ⓒ KIA 타이거즈


프로야구 올스타전은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과 야구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이다. 이날은 홈팬들도 응원하는 팀에 관계없이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에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다른 경기도 아니고 올스타전에서 팬들이 특정 선수를 향해 시종일관 야유를 보내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주인공은 바로 올시즌 삼성에서 기아로 이적한 최형우였다.

최형우는 15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나눔 올스타 소속으로 선발 출전했다. 기아로 이적한 이후 처음 출전하는 올스타 무대였다.  비록 나눔이 드림 올스타에게 8-13로 패했지만 최형우는 3점 홈런을 포함해 4타수 2안타 3타점 1사구로 맹활약하며 올스타 무대에서도 뜨거운 방망이를 과시했다.

하지만 최형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엇갈렸다. 원정 응원을 온 기아 팬들이나 중립적인 다른 팬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지만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최형우가 타석에 설 때마다 적지않은 야유가 터져나왔다.

심지어 7회 타석에서는 하필 삼성 소속  심창민에게 사구를 맞고 1루로 걸어나가자 삼성 팬들이 한동안 심창민의 이름을 연호하는 웃지못할 장면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형우는 끝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경기장 분위기는 잠시 미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올스타전이 끝난 후에도 최형우와 삼성 팬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더 큰 이슈가 되었을 정도다.

삼성 팬들에게 최형우는 애증의 선수다. 최형우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삼성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2011시즌부터 한국시리즈 4연패-정규리그 5연패를 차지했던 삼성 왕조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올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기아와 4년 100억 원에 계약하며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삼성을 떠났다.

최형우는 기아에서도 빠르게 적응해 타율 .374, 22홈런 72득점 81타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기아의 선두 질주를 이끌며 모범 FA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친정인 삼성을 상대로도 타율 .410 3홈런 15타점을 기록하며 비수를 꽂았다. 반면 최형우가 떠난 삼성은 올시즌 하위권을 전전하는 굴욕 끝에 겨우 9위에 머물렀다. 최형우는 이미 정규리그 전반기에도 대구구장을 찾을 때마다 적지않은 야유에 시달려왔다. 이번엔 하필 대구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최형우가 다른 팀을 대표하는 올스타가 되어 금의환향한 모양새가 되었으니 삼성 팬들로서는 이래저래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최형우와 삼성 팬들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계기가 단순히 이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형우는 지난해 FA 이적과정에서 친정팀 삼성을 떠나 기아로 옮기게 된 배경을 놓고 "삼성에서는 대구 출신이 아니다 보니 소외감을 느꼈다"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 몇몇 매체에 보도되며 큰 논란에 휩싸였다. 심지어 역시 FA 자격을 떠나 LG로 이적한 차우찬까지 걸고 넘어지며 자신과 비슷한 입장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더해지며 불똥이 튀기도 했다. 참고로 최형우는 전북 전주, 차우찬은 전북 군산 출신이다.

최형우는 이 발언의 진위에 대하여 지금까지 구체적인 해명을 하지않고 있지만 논란은 이미 일파만파로 확산된 뒤였다. 최형우의 '소외감' 발언이 만일 사실이라면, 내용의 진위를 떠나 대단히 경솔하고 위험한 발언이다. 어쨌든 오랜시간 고락을 함께했고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친정팀과 옛 동료들, 응원해준 팬들까지 한순간에 우습게 만들어버린 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필 본인이 '특정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는 식의 주장은, 자칫 지역감정이나 차별같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뇌관을 건드릴 수도 있기에 확실한 근거없이는 해서는 안되는 발언이다. 최형우의 현 소속팀인 기아로 비유하자면, 이범호·김주찬·윤석민·임기영 같은 비호남계 출신 선수들이 '광주 출신이 아니라 차별받았다'고 했다면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까 상상하면 쉬울 것이다. 삼성 팬들이 지난 몇 년간 FA로 팀을 떠난 여러 스타 중에서도 유독 최형우에게 서운함을 느낀 것도 분명히 이유가 있다.

최형우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가 삼성과의 잔류 협상이 불발된 것을 구단 탓으로 돌리고 기아행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언플'(언론플레이)을 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삼성 구단 측도 최형우의 발언이 알려지고 나서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삼성은 지난 겨울 최형우의 잔류를 위하여 FA 협상을 진행했으나 이견 차가 너무 커서 협상이 불발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 프로야구에서 지역 출신 '순혈주의'의 의미가 많이 퇴색한데다 삼성만해도 2000년대 이후로는 배영수(한화)-박석민(NC)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지역 출신 스타의 비중은 크지않았다. 심지어 이들마저 FA가 되어 지금은 결국 팀을 떠난 상태다.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출신 차이에 따른 소외'를 운운하는 자체가 어이없다는 반응이 많다.

하필 최형우가 과거에도 몇 번이나 '입방정'으로 도마에 오른 전력이 있다는 것도 이 사건으로 재조명되는 부분이다. 최형우는 삼성 시절 개인의 미니홈피에 외국인인 제리 로이스터 당시 롯데 감독을 '깜둥이'로 지칭하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뭇매를 맞으며 공식사과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FA가 되면 120억을 받고 싶다."고 발언했다가 국내 FA시장의 거품논란에 대하여 가뜩이나 반응이 싸늘했던 야구팬들로부터 '돈만 밝히는 프로야구 선수'의 전형으로 낙인찍혀 한동안 욕을 먹기도 했다. 물론 개인의 생각차이는 엄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굳이 불필요한 타이밍에 하지 않아도 될 '어그로'를 끌다가, 먹지않아도 될 욕을 벌었다는 점에서 최형우 본인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물론 최형우의 입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외지 출신들이 현지에서 암암리에 느끼는 텃세나 소외감은 당사자 외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가급적 신중하게 이야기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최형우 본인의 입장에서 이전 구단에서 느꼈던 개인적인 감정이나 서운함을 솔직히 밝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최형우는 기아 이적 후 첫 대구 원정 당시 타석에 서기 전 헬멧을 벗고 관중석에 정중히 인사하며 팬들에 대한 깍듯한 예의를 지키기도 했다.

오히려 최형우가 먼저 원인제공을 한 측면이 있음을 감안해도, 일부 삼성 팬들의 '뒤끝' 역시 도를 지나쳤다는 반응 역시 만만치않다. 어쨌든 야유도 경기장 안에서 팬들의 합법적인 의사표시의 권리이기는 하다. 다만 정규시즌 경기 중에는 그럴 수 있다쳐도, 굳이 축제의 장인 올스타전까지 공격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었는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사구를 맞은 상황에서 피해자보다 오히려 가해자인 투수를 연호하는 행태는, 한일전같은 국가대항전에서도 보기 힘든 지나친 '비매너' 응원이라는 비판이 더 우세하다.

최형우는 논란의 소외감 발언 이후로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경기장 안팎에서 더 이상 삼성 팬들을 특별하게 도발하는 언행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놓고 여론이 삼성 팬들에게 불리한 이유다.  궁극적으로 삼성 팬들의 응원문화나 구단에도 좋지않은 이미지만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편협한 대응이었다.

최형우의 소외감 발언이 불러온 해프닝은 최희섭의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거에요) 사건과 박재홍의 '빵 사건'에 버금가는 야구계 희대의 도시괴담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형우와 삼성 팬들은 어쨌든 선수가 은퇴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라운드에서 수십번 마주쳐야한다. 최형우도 팬들의 서운함이나 오해가 있다면 그냥 무시만할 것이 아니라 한번쯤은 진솔하게 해명해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선수는 혼자 야구 잘하고 돈만 많이 번다고 끝이 아니라 항상 팬들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팬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집단적인 의사표시라도 최소한 때와 장소는 가릴 수 있는 성숙함이 요구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해프닝은 올해 올스타전이 모두를 위한 진정한 화합의 무대는 되지못했다는 씁쓸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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