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해골물 한 잔 마셔야만 정신 차릴텐가

[서평] 원철 스님 산문집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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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수()등록 2017.07.19 08:18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는 1,300여 년 전 신라시대 스님이었고, 자장 율사나 의상 대사 또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스님이었습니다. 도선 국사 의천은 1,000여 년 전 고려시대 스님이었습니다.

이들 스님들이 갖는 공통점은 그 옛날 그 시절에도 모두가 외국엘 다녀왔다는 사실입니다. 비행기는커녕 자동차도 없던 시대, 먼 나라이건 가까운 나라이건 다른 나라엘 다녀오려면 오직 걷고 또 걸어야만 갈 수 있었던 시대입니다.

이들이 발가락이 뒤틀리도록 걷고, 목숨을 걸어야만 건널 수 있는 바다를 건넜던 이유는 거기엘 가야만 구하고자 하는 법이 있을 것 같은 절박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들 스님이 다른 나라를 가고자 했던 이유는 오로지 구도, 부처님의 법을 얻기 위해서였지 유람을 떠나듯 즐기기 위한 여행을 아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옛날에야 외국을 다녀오는 스님들이 흔하지 않았겠지만 요즘 스님들 중에는 일반인들보다 더 자주 외국엘 다녀오는 스님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게 다녀오는 모든 스님들이 매번 구도를 위해 다녀오는 구법원정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때로 어떤 스님들은 승복과 삭발머리 때문에 제한되는 생활에서 벗어나는, 출가수행자라는 이유 때문에 이래저래 구속되는 평상에서의 해방을 즐기기 위한 일탈의 방편으로 떠나는 스님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스님들의 여행에 대해 일반인들이 이러쿵저러쿵하면 남에 말하기 좋아하는 중생들의 속성쯤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같은 스님이 스님들의 이러한 여행을 지적하거나 염려한다면, 이런 염려나 지적이야 말로 스님들 스스로를 자정시킬 수 있는 죽비소리 같은 작은 울림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관광 유람을 구도여행으로 착각하고 나다니는 세계화 시대의 출가자들은 "후학들아, 꼭 해골물 한 잔 마셔야만 정신 차릴텐가. 시주물 그만 낭비하고 돌아오너라"하는 선지식의 근심스런 꾸중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겠다. 공부를 위한 만행인지 놀이를 위한 여행인지, 출발하기 전에 스스로 점검해볼 일이다. 시대는 달라도 그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므로.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담는다> 76쪽-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 지은이 원철 스님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7년 7월 10일 / 값 15,000원 ⓒ 불광출판사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지은이 원철 스님,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1986년 해인사로 출가한, 법력이 31년째 되는 원철 스님이 풍경소리처럼 울려주고, 후려치는 죽비소리처럼 들려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스님이라서 맞닥뜨릴 수 있고, 출가수행자라서 사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산채정식을 차리듯 오물조물 버무려 엮은 산문집입니다.

누구나 경험하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에 부처님 가르침을 마법의 조미료처럼 넣어 글맛을 내니 배는 부른데 입에서는 자꾸 당기는 음식을 만난 기분입니다.

감미로운 이야기들은 말랑 거리는 홍시만큼이나 감미롭고, 시원한 이야기들은 산사로 가는 계곡에서나 쐴 수 있는 솔바람처럼 청량합니다.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도 어리석이 않게 읽을 수 있어 좋고, 생경하기만 부처님 가르침도 그냥 우리들 사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실루엣처럼 묘사한 스님들 일상에서 구도의 삶이 읽히고, 산수를 스케치하듯 담아낸 이야기에서 물결소리도 들리고, 야생화 향도 풍기니 부레옥잠이 그러하다 듯 시나브로 내면의 마음을 맑혀줍니다.  

정화수처럼 마음을 맑혀 주는 이야기들도 좋지만 '구법여행과 관광 유람'을 구분하고자 하는 이야기야 말로 시속에 편승하거나, 일탈을 꿈꾸는 출가자들을 향한 진정한 구도의 고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산문(山門)은 세속과 승속을 구분하지만 이 책,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는 세속과 승속을 구분하지 않는 오롯한 산문(散文)집일 뿐입니다. 출가를 하지 않고도 어느새 구도자의 마음으로 마음에 아름다운 인생을 담는 멋진 화장술 같은 책읽기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 지은이 원철 스님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7년 7월 10일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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