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피해 설립한 협동조합, 전략이 필요하다면 '이것'

협동조합 이론의 고전, 헨리 한스만의 <기업소유권의 진화>

등록 2017.07.20 09:24수정 2017.07.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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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그랜드컨벤션센터 2층에서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한국 최초의 택시협동조합 창립 2주년 기념행사였다. '사납금 없는 택시회사' 한국택시협동조합은 설립 2년 만에 월급이 두 배로 올랐다. 조합이 인수한 이전 택시회사와 비교해 일자리도 두 배로 늘어났다. 서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경주·포항·대구·광주·구미·전주 등 전국으로 확장중이다. 조합은 '쿱(coop) 택시'를 전국으로 확대하며 '쿱 버스'도 출범할 예정이다.

초·중·고 학교협동조합도 나날이 성장세다. 교내 매점 등을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 주민이 함께 운영하면서 전국에 50개를 넘어섰다. 서울, 경기에서 시작하여 강원, 경북, 경남, 충북, 인천을 거쳐 최근에는 전북, 세종, 충남 등에서도 학교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계획을 세워가고 있다. 특히 충남도교육청은 지난 19일 홍성군 금마중학교 등 8개 초·중·고교를 예비 학교협동조합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1인 1표'의 조합원 경제공동체인 협동조합의 장점이 발휘된 사례들이다.


하지만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후 최근까지 설립된 1만2000여 개 협동조합의 성적표는 초기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획재정부에서 2년마다 한번씩 진행하는 협동조합 실태조사의 올해 결과가 발표되면 더 정확하겠지만 실제 운영중인 협동조합은 절반 정도 수준이다.

1차 2013년(54.4%), 2차 2015년(55.5%)로 나타났다. 더불어 이렇게 운영되는 곳 중에서도 실제 조합원들의 경제적 참여구조가 만들어지고 의미있는 사업모델을 만들어낸 곳은 10~15% 정도로 추산하기도 한다.

협동조합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원인을 연구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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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소유권의진화 협동조합 이론의 고전, 헨리한스만의 <기업소유권의 진화> ⓒ 북돋움

주식회사와 달리 조합원 모두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경제 공동체인 협동조합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앞서의 운수업, 학교에서의 소비사업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는 성공하기 더 쉬운 걸까? 또한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왜 가맹점이 소유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번성하지 않는 걸까?

근래 시도되고 있는,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이 만든 피자연합협동조합, 동네 빵집들의 동네빵네협동조합, 마을 카페들의 소셜카페협동조합 등에 내재된 약점을 보완하려면 어떤 조직 전략, 내부 규칙과 제도적 환경이 필요한가?


최근 번역된 헨리 한스만의 <기업 소유권의 진화>(The Ownership of Enterprise)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법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한스만이 1996년에 출간된 이후 기업 연구에 관한 논문에 3000회 이상 인용되었다.

더불어 협동조합 기업 이론의 고전으로 꼽히지만, 경제학, 경영학, 법학, 정치학, 사회학, 행정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협동조합 책이 역사, 철학, 국내외 사례 소개에 치우쳤던 것과 달리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바라본다. 즉 조직경제학, 정보경제학, 거래비용경제학적인 관점에서 협동조합의 성공 요인을 탐색한다.

따라서 협동조합을 무조건 옹호하기 보다는 주식회사, 협동조합, 비영리법인에 대한 어떠한 선호도를 배제한 가운데 시장에서 이들 기업 유형이 살아남는 조건을 탐색하는 책이다.

안도경 교수와 함께 감수를 한 한신대 장종익 교수가 "한스만의 이론은 협동조합의 등장과 존재 근거, 한계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한 거의 유일한 이론"이라고 추천한 이유이다. 그동안 국내 협동조합 연구자들이 원서로만 보아오던 책이 번역되어 더 많은 연구자와 활동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시장계약비용과 소유비용의 비교 속에서 기업 소유자가 결정

제목에서 얘기하는 대로 저자는 기업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그 조직구조를 고찰한다. 이에 따르면 주식회사는 투자자가 소유한 기업이며, 협동조합은 노동자소유기업, 원료공급자소유기업, 소비자소유기업으로 다시 나뉘게 된다. 그럼 누가 소유하는지는 어떻게 결정될까?

투자자, 노동자, 원료공급자, 소비자 각각은 기업을 소유하는데 들어가는 '소유 비용'과 기업을 소유하지 않고 시장에서 계약자로만 남는 가운데 들어가는 '시장계약 비용'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게 된다. 기업의 소유권자가 되는 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경영자 통제, 집단 의사결정, 위험 감수 등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장계약자는 어떠할까? 독과점, 잠김 효과,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보통 소비자, 노동자, 원료공급자 등은 기업을 소유하기보다는 기업과 시장에서 계약을 맺으며 경제 활동을 한다. 소비자로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뿐, 기업을 소유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규모가 큰 기업들은 투자자소유기업(주식회사)으로 설립된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투자자소유기업뿐 아니라 다양한 소유 형태(소비자협동조합, 생산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상호회사, 비영리기업 등)의 기업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소비자, 노동자, 원료공급자 등이 집단으로 기업을 소유하는, 즉 협동조합 방식을 택하는게 보다 합리적이고 이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험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양한 사례들을 면멸하게 탐색하면서 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유되는 이유를 탐구한다. "왜 특정한 산업 분야에서 특정한 소유 형태의 기업이 주류가 되고 있을까?", "어떤 환경과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등에 답하는 분석 틀을 제시해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생산자협동조합 등을 협동조합이라는 하나로 묶지 않고 각각 활성화되는 환경과 업종을 밝힌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과 표준정관에도 반영되어 고스란히 협동조합의 각기 다른 유형으로 정착되었다. 

택시협동조합, 학교협동조합의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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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택시협동조합 창립 2주년 기념행사 지난 7월 14일 서울 그랜드컨벤션센터 2층에서는 한국 최초의 택시협동조합의 창립 2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 한국택시협동조합


그럼 한스만이 제시한 틀에 따라 앞서의 택시협동조합, 학교협동조합의 성공비결을 살펴보자. 한스만에 따르면, 택시협동조합과 같은 운송업은 세계적으로 노동자협동조합이 흔하게 조직되는 분야이다(107쪽). 노동자들이 기업을 소유하는데 있어 앞서와 같은 거래비용이 작동하게 된다.

시장계약비용으로는 ▲독과점비용, ▲잠김 효과 비용, ▲정보비대칭비용 등이 포함되며, 소유비용으로는 ▲경영감독비용, ▲집단적 의사결정비용, ▲위험감수비용 등이 포함된다. 이 중에서도 한스만은 집단적 의사결정 비용이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고 한다.

집단적 의사결정 비용을 낮추는 요인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동질적이어서 기업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든 대략 같은 영향을 받는 경우이다. 둘째로는 직원들간에 차이가 있어서 어떤 의사결정이 어떤 직원에게는 이익이 되고 다른 직원에게는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그런 결정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142쪽)

예를 들어 임금 결정과 관련한 의사결정은 가장 민감한 안건이다. 따라서 업무나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직원이 같은 임금을 받는 규칙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균등분배제가 현실적이지 않은 분야에서는 객관적이고 비논쟁적인 급여 계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경우에만 노동자소유기업이 번성한다고 지적한다(138쪽).

택시협동조합의 경우 노동이 매우 동질적인 동시에, 또한 개인별로 고객에게 금액을 청구하기에 개개인의 생산성 측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집단적 의사결정비용을 낮출 수 있는 이점이 많다.

학교협동조합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시장계약비용과 소유비용을 비교해서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예측할 수 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매점이 하나밖에 없기에 소비자들에 대해 구매독점적 지위를 갖는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독점기업을 소유함으로써 독점 비용을 회피할 수 있다(53쪽).

또한 학생들의 수요와 관심이 비교적 동질적이어서 운영상의 소유비용이 크지 않으며,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교육적 효과를 갖는 결과물이 됨으로 비용이라기 보다는 가치를 창출하는 측면이 크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협동조합에도 적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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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학교협동조합 학생조합원의 날 캠프 지난 7월 14일~15일 1박 2일 열린 전국 학교협동조합 학생조합원의 날 캠프 모습. 전국적으로 50여개의 학교협동조합 중 초중고 대학까지 20개의 학교의 학생조합원 140명이 함께 모여 교류회를 가졌다. ⓒ 주수원


한스만은 이처럼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실제 시장에서 이뤄지는 전략적 선택을 분석하고, 협동조합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을 정리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농산물판매협동조합(서울우유, 농협) 주택협동조합(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하우징쿱 주택협동조합) 등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원인도 이러한 거래비용경제학을 통해 도출된다.

거꾸로 이는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이들에게 성공의 조건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노동자협동조합에서 집단적 의사결정 비용이 문제가 된다면, 이를 줄이기 위하여 노동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규칙 마련이 중요하다. 노동자소유기업이라도 투자자소유기업처럼 기업과 노동자 간에 정보 비대칭이 상당 부분 존재하고, 노동자 간에 도덕적 해이나 무임승차가 존재하며, 노사 간에 전략적 행동이 만연하다면 노동자소유기업으로서 강점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역자 후기, 405쪽).

미스터피자 등 최근 들어 발생하는 가맹점 본사의 횡포에 대응해 가맹점들이 뭉쳐서 착한 본사를 협동조합으로 만드는 시도도 늘고 있다.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이 만든 피자연합 협동조합, 동네 빵집들이 도우 등 원자재를 공동 생산하고 빵 레시피를 공유하는 동네빵네협동조합, 마을 카페들이 원두 가공과 공동 브랜드를 위해 만든 소셜카페협동조합 등이 그렇다.

이들도 향후 전략을 세우는 데 한스만의 기업 소유권 이론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떤 조건하에서 직영체인, 주식회사형 프랜차이즈,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가 강점을 갖는지 거래 비용 관점에서 밝힌다. 이를 통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동조합 기업을 세울 때 살려야 할 강점과 보완해야 할 약점을 알 수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잠김 비용이 클 수 있다. 프랜차이즈에서 떠나면 특화된 장비와 지역에서 쌓은 단골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 또한 협동조합 형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면서 본사의 감독 기능 역할을 소홀히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 특정 가맹점의 질 저하가 전체 가맹점의 평판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규제 장치가 없으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영체인은 그러한 약점은 없지만 지역 체인 입장에서 고객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동기가 약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특정 협동조합 성공에 대한 예언서가 아니라, 성공을 활성화하기 위한 전략서로 보는 게 중요하다. 이 책을 번역한 박주희 박사가 "'당위(have to)'적 언어가 많았던 협동조합 관련 연구에 '왜(why)'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한스만의 공헌이라면, 현장의 실천가들은 이를 '어떻게(how)'라는 질문에 적용함으로써 성공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 이유이다.

주식회사로만 한정해서 바라보던 기업소유권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실천해보자. 단, 이 책을 통해 협동조합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보다 더 활성화될 수 있는 영역들을 찾아가자. 

기업 소유권의 진화 - 주식회사부터 협동조합까지 기업 지배구조별 성공 요인 탐구

헨리 한스만 지음, 박주희 옮김,
북돋움, 2017


#협동조합 #기업소유권 #기업소유권의진화 #헨리한스만 #협동조합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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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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