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처럼 흩어진 밥알, '미운 여섯 살'에 완벽히 졌다

[단짠단짠 그림요리] 크래미 유부초밥

등록 2017.07.25 21:07수정 2017.07.2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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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지기 친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단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다. 앞으로 친구네 집에 가려면 두 시간 반 동안 버스와 전철을 타야 한다. 이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친구는 이삿짐을 싸는 일에 지쳐갔다. 며칠 사이 통통했던 볼이 쏙 들어가 보기가 안쓰러웠다. 먼 곳으로 가는 아쉬움도 달랠 겸, 친구를 위해 이사 당일 아침 도시락을 준비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럴 때 제일 좋은 건 유부초밥이다. 나는 유부초밥에 크래미와 오이피클을 꼭 넣는다. 먼저 크래미는 잘게 찢고 오이피클은 적당히 다져 마요네즈와 머스타드 소스에 버무려 샐러드를 만든다. 뜨거운 밥에 단촛물을 붓고 휘휘 섞어 수분을 날린다. 유부의 절반은 샐러드로, 나머지는 밥으로 채운다. 겉에서 보면 밥만 넣은 것 같지만 먹다보면 상큼한 오이와 크래미가 씹힌다. 무심코 입에 넣었다가 의외의 맛에 눈이 동그래진다. 만드는 과정도 김밥 싸는 것에 비하면 일도 아니게 간단하다. 아! 크래미 샐러드에 양파를 다져 넣기도 하는데 나는 생양파를 좋아하지 않아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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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미와 오이피클을 넣은 유부초밥 ⓒ 심혜진


이사 가는 날 새벽부터 비가 쏟아졌다. 도시락을 들고 집에 갔을 때 다행히 비가 그쳤다. 친구는 집안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었고 친구의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여섯 살 된 여자아이다.

아기 때부터 자주 만났지만, 어쩐지 그 애와 나는 궁합이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그 애는 늘 자신이 대장이라도 되는 듯 내게 이래라저래라 시키길 좋아했다. 그 애가 '빵'하고 총을 쏘면 나는 '으악' 하며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쓰러져야 한다.

한 번 놀이를 시작하면 웬만해선 멈출 줄을 몰랐다. 총싸움에서 칼싸움으로, 다음엔 말타기로, 내게서 조금이라도 지친 기색이 보일라치면 재빠르게 무기와 종목을 바꿨다. 그럴 때마다 마치 처음 놀이를 시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애의 체력과 에너지는 재충전됐다.

슬쩍 발을 빼기 위해 조카들에게 써먹던 방법들, 예들 들어 맛있는 걸 먹자거나, 눈 감고 주변에서 나는 소리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자는 이야기가 그 애에겐 통하지 않았다. 조카바보로 십 년을 산 터라 아이 대하는 법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 애는 나의 육체와 정신과 감정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작은 흡혈귀' 같았다.

그 애의 검고 동그란 눈과 마주쳤다.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애가 친구에게 귓속말했다.

"이모가 싸온 도시락 먹고 싶대. 아침을 안 먹었거든."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목장갑을 낀 친구 대신 내가 나무젓가락으로 유부초밥을 집었다. "자, 먹어 봐" 그 애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 엄마가" 친구가 장갑을 벗고 초밥을 먹였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 초밥 반 개를 다 먹은 그 애가 손으로 밥을 집으려고 했다. "안 돼. 너 손 더러워. 엄마가 먹여줄게" 친구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짐 옮기던 사람들이 친구를 찾았다. 이제 아이와 나만 남았다. 그 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밥 더 줄까?" 대답 대신 그 애 손이 초밥으로 향했다. 여전히 내 눈을 바라본 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이모한테 달라고 해야지. 손 더럽다고 했잖아".

아이 손에 쥔 초밥이 뭉개져 샐러드 국물이 흘러나왔다. 그 애가 인상을 쓰더니 초밥을 바닥에 휙 내던졌다.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에 하얀 밥알이 굴러다니는 것만큼 생뚱맞고 더러운 것도 없다. 게다가 거긴 이웃집 대문 앞이다. 주워야 했지만 내겐 휴지가 없었다. 축축한 바닥에 뒹군 초밥을 신발로 쓸어 길가로 옮겼다. 밥알이 군데군데 떨어져 길이 지저분해졌다.

아이는 애쓰는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또 다른 초밥을 손에 쥐었다. "이모가 준다니까 또..." 그 애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듯했다. 그 애 입으로 초밥 몇 개가 들어갔고, 몇 개는 길가에 무덤처럼 쌓였다. 흩어진 밥알들이 바닥에 시체처럼 남았다. 나는 남은 초밥을 모조리 아이 손에 쥐여주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얼마 후 이삿짐 차가 떠날 채비를 했다. 친구 부부가 다가오자 그 애가 쌩하고 달려가 아빠 다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몹시 그리웠다는 듯이. 그 모습이 마치 나와 '있어 주느라' 불편하고 힘들었다는 항의의 표현 같았다.

"네가 아이 봐 준 덕분에 짐 잘 옮겼어. 고마워. 도시락도 잘 먹을게."

떠나는 차 안에서 그 애는 "이모 안 안녕! 안 잘 가!"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대답 대신 손을 흔들며 가늘게 웃었다. 집에 오니 녹초가 됐다. 잠시나마 보육이란 전쟁을 치렀으니 그럴 만했다. 오늘 난 완전히 패했다. 당분간 유부초밥은 안 먹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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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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