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경찰청장을 조사할 수 있을까

[시시비비] ‘백남기 사건’ 경찰 진상조사위원회, 2007년 답습하지 않길

등록 2017.07.20 17:01수정 2017.07.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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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영훈(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서명준(언론학 박사),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편집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호중(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경호(녀름 농업농민정책연구소 소장), 정민영(변호사), 장행훈(언론광장 공동대표)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의 과제가 적폐청산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공안기관의 적폐청산이 핵심이다. 국정원발전위원회는 내부에 적폐청산TF를 설치해 댓글 대선개입사건, 세월호방해공작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자행한 정치개입사건의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올바른 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통렬하게 반성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적폐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공안기관들이 서민과 노동자의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농락하면서 부패한 정권에 부역했던 역사를 과감하게 단절하지 않고서는 적폐청산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적폐청산이라고 하면 주로 국정원과 검찰을 이야기할 뿐, 경찰의 적폐청산 과업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막강한 병력과 물리력을 동원해 파업의 현장에서, 저항의 현장 곳곳에서 서민과 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목숨이 희생되는 일이 생겼는데도 말이다.

5월 말 청와대가 '수사권'을 카드로 경찰에 인권친화적 조직으로 변모할 것을 주문하자마자 경찰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 16일 외부인사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를 발족하는 자리에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시위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경찰의 잔혹한 국가폭력사건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외에도,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를 향한 폭력적 진압, 강정 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한 수년간에 걸친 인권침해와 탄압, 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에서 주민들에게 자행된 경찰폭력…. 그 상처는 아직도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피해자들은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가폭력 사건과 관련해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언론,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 철저히 보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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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경기북부 경찰특공대 창설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때마침 지난 19일 경찰청은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다고 발표했다.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한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은 경찰의 진상조사위원회 설치에 관해 지면에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20일 자 사설에서 "경찰의 과거사 반성이 경찰개혁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보수언론의 대표주자인 <조선일보>는 피해자들의 진상조사 요구나 경찰청의 진상조사위원회 설치에 대해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경찰폭력 사건에 대해 '드디어 경찰이' 진상조사에 나섰다며 환영할 만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경찰청 내에 10명 내외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는 2/3를 민간위원으로 두고 현직 경찰위원이 3명 정도 참여한다고 한다. 이런 위원회가 과연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까.

현재 경찰의 고위직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충견' 역할을 자임하면서 파업노동자와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해 거침없이 폭력적 진압을 감행했던 이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의 현장에서 주민들의 집회 자유를 무시하고 제압작전을 지휘한 사람이다.

그 후 그가 청와대 치안비서관으로 근무할 당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들을 사실상 '폭도'로 취급했고, 경찰은 이에 발맞춰 갑호비상령을 내리면서 전국의 경찰병력을 서울로 집결시켰으며, 차벽과 물대포로 청와대 방어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물대포 직사살수에 맞은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이철성 청장은 청와대에서 무슨 역할과 지시를 내렸을까. 그 역시 진상조사의 대상이다. 경찰청 내에 설치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이 청장을 불러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경찰청,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린 전례가 있다. 2007년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면서 발간한 백서를 보면, 경찰청은 "국민의 참여 욕구를 억압하고 국가안보를 우선시한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 국민들에게 큰 희생을 초래하는 적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운동과 시국사범에 대해 정권안보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국가보안법을 확대 적용해 보안사범을 양산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고 스스로 반성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청산과 개혁조치는 전혀 담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경찰의 반성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이런 우를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경찰폭력 #진상규명 #이철성 #경찰개혁위원회 #시시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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