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곳, 독특한 사람... 괴짜 도시 샌프란시스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여행 20]

등록 2017.07.21 11:10수정 2017.07.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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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희

샌프란시스코를 수식하는 말들을 한번 떠올려 봤다. 1960년대 히피 탄생지, 성소수자들의 아지트, 1950년대 잭 캐루악으로 대표되는 비트 제네레이션 문학의 탄생지, 최근에는 쓰레기 제로 라이프스타일 운동까지. 모두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단어들이다. 대표적 수식어에 걸맞게 샌프란시스코에는 괴상한 장소가 많고 독특한 사람이 산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둘째 날, 그레이스 대성당에서 화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요가 교실에 갔다. 성당 빈 곳에 요가 매트 수백 개가 깔렸고, 요가복 차림의 사람들이 성당을 가득 채웠다. 한국에서 흔히 접했던 아이돌 음악 틀어 놓고 하는 에어로빅 비슷한 요가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찬트를 외우고 힌두교 명상 음악과 함께하는 진짜 요가 교실이었다. 방문객들에게 힌두교의 신, 시바 신상 그림을 선물로 줬다.


유일신 종교인 천주교 성당에서 다원주의 종교 행사를 하는 모습에 당황해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종교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정도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종교가 한 공간에 어울릴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일이어서였다.

1967년 히피 문화의 탄생지로 유명한 헤이트-에쉬베리 거리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는 관광객들이라면 꼭 한번 들리는 관광지이만, 관광엽서나 냉장고 자석 따위의 자질구레한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가장 흔한 상점은 히피들이 선호하는 종교인 불교, 흰두교 용품 판매점이었다. 아나키스트 도서만 파는 서점이 있는가 하면, 사탄의 인형으로 가득한 흑마술 용품점도 있었다. 헤이트-에쉬베리 거리의 슈퍼마켓은 1960년대 히피 스타일 포스터가 가득했다. 요구르트, 우유가 잔뜩 든 냉장고 위로 사이키델릭 스타일의 포스터가 한가득 있었다. 채식 햄버거 가게에는 몸에 나쁜 감자튀김 대신 볶은 브로콜리를 사이드 메뉴로 팔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술관마저 평범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공원에 있는 드영 미술관에서는 1967년 히피 문화의 정점을 찍은 써머오브러브 50주년을 맞아 특별전시를 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1967년에 히피들이 입었던 옷, 당시의 공연 포스터가 대부분이었다. 전시된 작품을 깊게 이해하려고 빌린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연신 "내가LSD를 시작했을 때…," "LSD를 복용하고 이 포스터를 봤을 때…"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LSD는 헤로인, 코카인에 비해 중독성이 떨어지지만, 특유의 환각 효과 때문에 히피들이 즐겨 복용했다. LSD는 현재까지 미국 모든 주에서 불법인 마약인데,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 투어에서 성우가 자신의 LSD 복용 경험을 적나라하게 털어놓아도 되는걸까.

미국 성소수자 문화의 출발지, 카스트로 거리도 당황스러웠다 이태원에서 마주치는 어두 컴컴한 클럽 따위는 카스트로 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게이 클럽들은 하나같이 카페처럼 통유리창을 설치해 밖에서 안이 훤히 보였다. 퇴폐적인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고, 게이 클럽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일반 카페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들이 나온 가족들과 초콜릿 복근을 자랑하는 근육질의 게이들이 나란히 카스트로 길을 걸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독특한 사람도 있었다. 카우치 서핑 호스트 트렌톤은 방 4개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끝없이 계속 카우치 서핑 손님을 받았다. 혼자 큰 집에서 외롭게 살기싫어서 라고 했다. 손님맞이 하고, 이불 빨래하는 일이 버겁지 않으냐 물었더니 "난 원래 사람 만나고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일을 좋아해. 그리고 너같이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 괜찮아"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는 낮에는 대기업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지만, 밤에는 거실에 미러볼, 사이키델릭 조명을 틀어 놓고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춤을 줬다. 옷장에는 황금색, 무지개색의 휘황찬란한 파티 의상이 가득했다. 그는 매년 여름 버닝맨이라는 히피 정신이 가득한 예술 축제를 부모님과 간다. 버닝맨에는 나체로 돌아다니는사람도 많고, 기괴한 예술가들이 많다. 부모님과 히피 파티에 매년 가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어떻게 이런 괴짜 도시가 된 걸까. 그 싹은 1800년대 중반 골드러쉬부터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미국 전역을 비롯해 중국, 멕시코 등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금이 발견된 지 2년 만에 10만명의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와 근처 지역에 몰려들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서로 융화할 시간도 없이 한 도시에 몰려 살다 보니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골드러쉬는 샌프란시스코가 성소수자들의 아지트가 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골드러쉬로 급증한 인구의 95%는 남성이었다. 넘치는 성적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던 젊은 남성들은 여장한 남성과 연애를 했다. 골드러쉬가 끝난 후에도 샌프란시스코에 형성된 성소수자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성소수자 하면 떠오르는 무지개 깃발은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한 예술가가 만들었다. 70년대에는 미국 최초로 성소수자 차별 금지법이 생겼고, 하비 밀크라는 성소수자가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장으로 당선됐다. 한국은 이제 겨우 대선 후보 토론에서 성소수자 관련 법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샌프란시스코는1970년대에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문화와 법이 자리 잡았다.

1950년대 비트 제레네이션 문학과 그 뒤 이어지는 1960년대 히피 운동도 괴짜 도시 샌프란시스코 탄생에 한몫했다. 한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고 미국 전역을 쏘다니는 불안한 청춘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묘사한 잭 캐루악의 '온더 로드'가 비트 제네레이션의 대표적 작품이다. 1950년대 잭 캐루악과 그의 동료 예술가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였지만 주류 사회 시스템에 가담하기보다는 차이나타운을 거닐며 불교를 공부하고 술집에서 토론했다.

비트 제레네이션 문학을 발판삼아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 히피가 등장했다. 반전 운동, 인권 운동, 성해방, 반자본주의 운동 등 기존의 모든 주류 문화에 반대했던 히피야말로 지금의 샌프란시스코가 형성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어떤 여성은 자신이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번 돈을 길거리에서 돈이 필요한 다른 히피에게 그냥 줬다. 히피 거리에는 공짜 음식, 공짜 마약, 공짜 의료 진료 등 모든 것이 공짜였다. 현금 뭉치 따위, 히피들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다. 히피는 약에 취해 춤만 추던 한심한 젊은이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압박과 보수 문화의 억압을 깨부수려고 과감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던 불타는 청춘이었다.

2017년의 샌프란시스코는 이제 사실 히피들이 살기에는 너무 비싼 지역이 됐다. 시내 원룸 아파트는 한 달 방세가 2천 불이다. 히피 거리에는 히피들보다 관광객이 더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도시에는 히피의 자손이 살고 있고, 샌프란시스코에 히피의 기운을 계속 불어넣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앞으로 또 어떻게, 얼마나 독특해질 수 있을까.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샌프란시스코의 괴짜다움이 지속하길 바란다.
#세계일주 #샌프란시스코 #성소수자 #미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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