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컵은 여성들을 어떻게 해방시켰나

여성환경연대, '생리컵 사용 경험을 통해 본 월경문화 집담회' 개최

등록 2017.07.21 16:05수정 2017.07.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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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에 열린 <생리컵 사용 경험을 통해 본 월경문화 집담회>. 이날 집담회엔 30 여명의 참석자가 자리했다. ⓒ 남지우


지난 20일 오후,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에서 '생리컵 사용 경험을 통해 본 월경문화 집담회'가 열렸다.

여성환경연대(소장 이안소영)는 올 상반기 식품의약품안전처(아래 식약처)와 협업해 여성 1000명의 월경용품을 사용실태를 조사했다. 오는 8월 실시될 반영구 생리컵 국내 도입을 앞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조사였다. 이날 여성환경연대는 참석자들에게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월경-여성주의-환경으로 연결되는 문제의식을 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 고금숙, 경진주 활동가와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마을 성교육 단체 '초록상상' 김민지 활동가, 영화 <피의 연대기>를 연출한 김보람 감독이 자리에 참석해 우리 사회 월경 문화의 현재를 진단했다.

'생리컵'의 등장과 월경 문화 진단

고금숙 활동가는 지난 4월부터 두 달 동안 진행한 '여성 1000명의 월경용품 사용 실태' 조사 결과를 공유했다. 월경용품을 사용하는 1028명의 여성과, 생리컵을 사용하는 153명의 여성을 표본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더불어 생리컵을 사용하는 50명의 여성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기존의 일회용 월경 용품에서 벗어난 대안적 월경 용품의 대중화 가능성을 진단했다. 

여성들은 월경용품을 택할 때 '사용편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안전성과 기능성, 경제성이 그 뒤를 이었다. 보통 가장 편리하다 여겨지는 일회용 생리대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조사에 임한 여성 중 100%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 더불어 탐폰, 생리컵 등 체내 삽입형 생리대가 여성들에게 여전히 친숙하지 못한 이유 역시 분명해 보였다.

젊은 여성들일수록 생리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생리컵에 대한 정보가 주로 온라인과 sns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생리컵을 사용해본 이들 중 80% 이상이 "타인에게 추천 의향이 있다고" 밝힌 만큼, 생리컵은 다른 종류의 월경용품 보다도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사용 방법이 여전히 불편하다는 문제제기 역시 여전했다.


설문 결과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생리컵 구입 시 사이즈 선택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69.8%의 여성이 "생리 기간 중 자궁의 길이에 따라 선택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 그중에서도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만져보는 경험조차 전무했다면, 월경 용품 또한 다양해지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면서, 나의 몸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생리컵 사용은 내 몸의 주도권을 잡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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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환경연대가 전시한 면생리대, 생리컵 등 다양한 대안 월경용품. ⓒ 남지우


여성환경연대가 만난 50명의 생리컵 사용 여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생리컵의 존재를 긍정했다. 생리컵을 선호하는 여성들은 1) 생식건강 개선 및 건강증진행동 촉진 2) 경제적 비용 절감 3) 활동성 향상 4) 자기 몸에 대한 탐구와 가능성 확장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생리컵의 긍정적 효과를 설명했다.

한 참가자는 "생리컵을 쓰면서 제일 좋은 점은 내 몸에서 나오는 피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날짜에 따라 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리혈이 진해지거나 탁해지거나 하는 것에 따라서 나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생리혈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건강을 진단하고, 여성들이 월경 그 자체와 가까워지면서 유능감을 향상시킨 것이다.

생리컵을 1년째 사용하고 있다는 한 참가자는 생리컵 사용을 "내 몸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을 때 항상 '순결'을 강조하고, 성기는 소중한 것이니까 건들지 말라고 가르친다"며 "생리컵을 사용하면서 '내 몸에 내가 먼저 손을 대고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고 생활방식을 바꿀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생리컵 등 월경용품의 다양화는 이는 결국 월경하는 몸에 대한 자기부정을 이겨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물론 대안 월경용품인 생리컵이 이 사회에서 더욱 온전한 선택지로 자리잡는 데 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 생리컵 사용 방법에 대한 정보 부족 2) 건강 영향 정보 부족 3) 해외 직구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부담 4) 위생 문제 등이 저어감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체내 삽입형 월경 생리대를 터부시해온 분위기는 다양한 월경 용품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사회 각계의 다층적인 변화의 노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월경은 페미니즘적이고 퀴어적이고 인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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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윤정원 전문의가 '여성들의 월경 경험과 몸 인식'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남지우


강의를 이어간 여성의학과 윤정원 전문의는 "월경 경험이 모두에게 천차만별인 것처럼, 월경용품에 대한 호오도 다양하게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문의는 진료 현장에서 월경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종종 만난다고 밝혔다.

한 13세 중학생은 초경을 시작한 뒤, 정상 생리 양을 알지 못해 한 시간에 한 번씩 생리대를 갈아 피부염에 걸렸고, 한 17세 고등학생은 친구로부터 "너 냄새나"라는 말을 들은 뒤 강박적으로 외음부를 씻어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이들에게 다른 월경용품에 대한 선택지가 주어졌다면, 다른 선택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이런 고통을 미리 예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윤 전문의는 생리 담론은 결국 사회 운동적 성격을 띄기에, 대중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주의 시각을 지닌 의사들이 많아지고, 산부인과의 문턱을 낮추는 등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서, 대중 운동으로서 생리 담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리 용품을 공공의 영역으로 환원하고,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긍정할 수 있는 '바디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녹여낸 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사회운동/대중운동으로서의 월경 담론이 될 수 있다.

영화 <피의 연대기>를 연출한 김보람 감독은 월경 담론이 선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해외의 사례에 주목했다. 뉴욕에 위치한 모 기업에는 '남성용 생리 팬티'를 발명해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이것은 FTM 트랜스젠더 남성들을 위해 개발된 생리 팬티인데, 여성에서 남성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생리를 할 경우, 생리대를 착용하거나 탐폰을 사용하는 것이 신체적, 심리적 정서에 위반되기 때문에 남성에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트렁크 형태의 생리팬티를 제작한 것이었다.

더불어 미국 브라운대학교 등 일부 대학에서는 남자 화장실에도 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해 트렌스젠더, 젠더퀴어 학생들이 월경용품에 접근하기 쉽도록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미국 뉴욕에서는 '월경용품 알권리법' 제정을 통해, 사회적 차원에서 다양한 월경 용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을 준비 중이다.

이렇듯 월경 담론은 여성들만이 전유하는 것이 아니다. 월경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성별과 성정체성의 인권에 관한 문제이고, 우리 모두의 기본적인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사회적/정책적 차원에서의 깊은 관심이 요구되는 것이다. 생리는 정말이지 페미니즘적이고, 퀴어적이고, 인권적인 담론이다.

지금까지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는, 생리대의 '정석'으로 여겨져 왔다. 마치 '포스트잇'이라는 상호명이 접착형 메모지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듯, '생리대'는 월경 용품의 대표 격이 되었다. 하지만 생리대는 다양한 월경용품 중 하나일 뿐이고, 생리 기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흐르는 생리 혈을 받아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들이 월경 용품을 스스로 선택하고자하는 자유조차도 허락하지 않은 듯 했다. 문화와 시장이 생리컵이 여성들의 삶에 들어오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탐폰과 생리컵 등 체내 삽입형 월경 용품에 대한 남성 중심적, 보수적 시각 등이 장애물이 되었고, 이에 따라 대안 월경용품이 합법의 영역이 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대안 월경용품을 선택해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폐쇄적인 월경 문화의 가장 큰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여성들은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의 몸을 직접 만져보고, 내 몸에 잘 맞는 월경 용품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월경하는 여성의 몸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생리에 대해서 더 말하고 떠들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긍정을 시작으로, 생리에 대한 끝없는 상상력을 함께 나눠야 할, 그런 시대가 왔다.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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