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폐렴이래요"라던 학생, 그에게 '약'이 된 수업

[로또교실29] 폐렴을 낫게 한 약은 '과자집 만들기'?

등록 2017.07.25 16:21수정 2020.01.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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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챙겨먹은 약 ⓒ 이준수






"저 어쩌면 입원할지도 몰라요."


며칠 전부터 J는 입원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급식줄을 서면 손에 꼭 약이 들려있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밥 먹고 30분 뒤에 복용하면 되는데 일부러 약을 덜렁덜렁 흔들며 다가왔다.


"콜록콜록, 병원에서 폐렴이래요."


J는 천식을 달고 게릴라전에 뛰어들었던 체 게바라처럼 비장했다. 자기 몸 아픈 걸 온 동네에 소문내고 다니기에 덥석 안아줬다. 그제야 차분하게 줄을 섰다. 관심받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그가 갑자기 변했다. 수요일부터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입원하기 싫다는 의사를 비쳤다. 입원 홍보를 열심히 하던 그가 입장이 바뀐 건 금요일 '과자집 만들기' 때문이었다.


'과자집 만들기'는 아이들이 한 학기를 기다려온 미술 수업이었다.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지붕과 창문이라니, 아이들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의 집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었다. 더구나 지난주에 모둠별 사전 협의를 거치며 구체적인 작품 계획이 모두 나왔기에, 과자집은 당장 손에 잡힐 듯 눈에 아른거렸다. J는 "나아야 되는데, 나아야 되는데"를 되뇌며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었다. 








"선생님, J 데리고 삼척 병원에 갔다 올게요. 내일부터 입원할 수도 있어요."


목요일 오후, J가 교실 전화기로 통화를 하다 말고 수화기를 내밀었다. 받아보니 어머님이었다. 입원한다는 J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대화하는 내내 전화기 옆에 바짝 붙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아들은 엄마의 사실 확인에 기가 팍 죽었다. 어깨가 축 처진 꼬마는 내일 진짜 과자집 만들기 할 거냐며 교실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오늘 아침에 보니 녀석이 씨익 웃으며 앉아 있었다. 


"쌤! 의사 선생님이 많이 나았대요. 약 좀만 더 먹으면 된대요."


과자 더미 속에서 J는 지팡이 사탕을 양손에 쥐고 앞니가 드러나도록 웃었다. 초코 웨하스를 와작와작 씹어먹는 행복한 소년 J. 과자집을 만들랬더니 자기 몸을 고쳐왔다. 과자를 배 터지게 먹은 다음 날에도 배탈 없이, 기침소리 없이 싱글벙글 등교했다. 때로 재미있는 수업은 약이 된다.




 
#과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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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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