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철도 건널목 탐방, 아직 남아있는 '땡땡거리'들

[써니's 서울놀이 ⑬] 도심 속 아련한 향수를 부르는 철도건널목과 주변 거리

등록 2017.07.30 20:27수정 2019.06.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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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에 복원한 '신촌 땡땡거리'. ⓒ 김종성


폐선이 된 옛 철길을 걷기 좋은 곳으로 조성한 경의선 숲길은 연남동, 홍대, 마포, 용산 등 도심 속을 지나가서 산책하기도 만남의 장소로도 참 좋다. 이 길을 걷다보면 금방이라도 기차가 올 듯한 철도 건널목을 만난다. 건널목과 경보 차단기, 역무원 아저씨와 지나는 동네 주민들 모습을 복원해 놓아 철도 건널목 풍경이 실감난다.

철길왕갈비살, 참새방앗간 등 주변에 고깃집과 주점 등이 아직도 남아있는 이곳은 '신촌 땡땡 거리(마포구 와우산로 32길)'라 불리던 곳이었다. 마포 산울림소극장 건너편의 작은 샛길에서 시작해 와우교 아래로 옛 철길을 따라 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200m 남짓의 길이다.


숲길이 조성되기 훨씬 전부터 동네 주민들과 홍대, 신촌 주변 학생들이 정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다. 기차가 저 멀리서 다가오면 건널목에는 차단기가 내려지고 경보음인 '땡땡땡' 소리는 기찻길 옆 골목과 거리로 울려 퍼지면서 자연스레 땡땡거리라 불렸다.

그 시절 땡땡거리 풍경과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이 떠올라 저절로 발길이 멈춰지는 건널목에서 문득 서울 속 또 다른 철도 건널목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지나다 마주쳤던 '서소문 건널목', '백빈 건널목', '돈지방 건널목' 등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있을까 궁금해 찾아가보았다. '신촌 땡땡거리'처럼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전에 나만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통행이 많은 철도 건널목, 서소문 건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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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서소문역이 있었던 유서깊은 건널목. '미근동 땡땡거리'의 중심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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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차량, 사람들로 전국에서 가장 통행이 많은 서소문 철도건널목. ⓒ 김종성


태권도 시범단으로 유명한 100년 넘은 전통의 서울 미동초등학교, 1층에 카페와 식당들이 자리한 오래된 서소문 아파트가 있는 평범한 동네 서대문구 미근동에 땡땡거리가 있다. 공식명칭은 '서소문 건널목 (서대문구 충정로 6길)'.

지금은 이름만 전하는 서소문(西小門,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서쪽의 소문이다)이 있던 자리로, 일제가 없애버린 뒤 경의선 열차가 지나는 서소문역을 지었다. 이 역 역시 후일 철거되고 이제 철도 건널목과 열차소리만 남았다.


한적했던 서소문 거리에 '땡땡땡' 신호음이 울리면 어디선가 빨간봉을 손에 든 역무원 아저씨가 나타나고 붉은색 테두리를 한 길쭉한 차단기가 내려오면서 지나가던 사람들과 차량들을 일제히 멈추어 세운다. 곧이어 KTX, 무궁화호 열차, 전철, 화물열차 등 다양한 기차들이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하루 열차 통과회수가 약 580회로, 전국 철도 건널목 중에서 하루 평균교통량이 가장 많은 건널목이라는 역무원 아저씨의 전언이다. 실제로 열차들이 자주 오가서 역무원 아저씨와 5분 이상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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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근동 땡땡거리에 한 몫 하는 오래된 서소문 아파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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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건널목 주변의 땡땡거리 골목엔 맛집들이 많다. ⓒ 김종성


지나가면서 언뜻 봤을 땐 향수와 낭만을 부르는 철도 건널목이구나 싶었는데 일하는 분들에겐 무척 바쁜 삶의 현장이었다. 이곳은 '미근동 기찻길'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과거 이 동네 일대는 온통 미나리 밭이었다고 한다. 뜻을 찾아보니 정말 미근동(渼芹洞)은 '미나리(芹)가 물결(渼) 치는 마을'이란 뜻이다.

땡땡거리 주변 골목엔 3대째 운영하는 '형제옥' 설렁탕집이 있는가 하면, '미근동 쌀국수' 등 작지만 예쁘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건널목을 바라보며 우뚝 서있는 무려 1971년에 지었다는 서소문 아파트는 당시엔 드물었던 주상복합아파트로 미근동 땡땡거리에 한몫 하는 존재다.

1층에 세련된 카페와 술집, '자매분식' 같은 수더분한 식당들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아파트가 특이하게 곡선으로 휘어져 들어섰는데 땅 밑에 복개된 하천을 따라 아파트를 지어 그런 모양이 됐다고 동네 주민 아저씨가 알려줬다. 하천 위에 지어지는 바람에 오래돼도 재건축이 안 된다니, 홍제천을 덮고 그 위에 지은 서대문구 홍은동 유진상가와 같은 운명의 아파트다.  

'땡땡땡' 종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는, 백빈 건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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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CF에 나올법한 백빈 건널목.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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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땡땡거리가 남아있는 백빈 건널목.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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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무원 아저씨와도 친근한 동네 고양이. ⓒ 김종성


조선시대 궁에서 퇴직한 백씨 성을 가진 빈(嬪, 임금의 후궁에게 내리던 정일품 내명부의 품계)이 건널목 뒤쪽에서 살면서 이 길로 행차했다고 하여 붙여진 '백빈 건널목(서울 용산구 이촌로 29길)'. 건너편에 단선 철로 건널목인 '삼각 백빈 건널목'과 함께 땡땡거리를 이루고 있다.

뒤편에 높이 솟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낮고 오래된 집들이 용산방앗간, 기찻길 주점, 여천식당, 쌀집 등과 나란히 모여 있다. 땡땡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동네 주민과 눈인사를 나누는 고양이 두 마리는 백빈 건널목에서 일하는 아저씨들과도 친근했다.  

현대식 아파트와 빌딩 속 철길과 그 옆으로 줄지어진 작은 가게들, 골목길의 집들은 영화나 방송, 사진가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풍경이지 싶다. 신호에 맞춰 차들이 서고, 지나는 사람들과 자전거가 서있는 모습이 영화나 CF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양이가 스스럼없이 다니는 아늑한 분위기의 동네라 그런지 건널목에서 들려오는 '땡땡땡' 경보음이 무척 정겹고 아련하게 들려왔다.

'땡땡거리'를 탄생시킨 '땡땡땡' 종소리는 녹음된 소리지만 실제로 작은 종을 치는 것처럼 풋풋하고 아련한 기분이 든다. 저절로 향수에 빠지게 옛 종소리지만, 철도건널목엔 중요한 첨단장치가 있다고 한다. 건널목 주변에는 레이저 감지기를 부착해서 혹시 건널목에 들어온 차량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으면, 감지기가 이를 감지하여 건널목 수백 미터 앞 선로변에 설치된 기관사용 경보기에 경보등을 켠다.

기관사는 건널목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하고 미리 속도를 줄인단다. 더불어 국토교통부에서는 철도 건널목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차가 철도건널목에 접근하면 내비게이션을 통해 '일시정지' 경고 메시지를 알리는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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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가 반포대교 옆에 자리한 서빙고 북부 건널목.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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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름 '돈지방 건널목' ⓒ 김종성


건널목을 지키는 역무원 아저씨와 잠시나마 얘기를 나누다 보니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건널목엔 매연이 심했다. 차량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는데다, 열차가 건널목을 지날 때 속도를 줄이는데 이때 브레이크가 작동되면서 먼지가 많이 발생한다고. 전철의 배차간격이 짧아지는 출퇴근 시간엔 더욱 심해서, 역무원 아저씨 한 분은 열차가 지나갈 때 잠시 숨을 멈춘단다.

마스크를 쓰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호루라기를 자주 불어야 해서 마스크 쓰기가 번거롭다고 하신다. 떠올려보니 서소문 철도건널목에서 일하는 분들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철도 건널목은 작은 부주의로 인해 큰 인명 사고가 나는 곳이니 그렇겠구나 싶었다.

이외에도 일명 '땡땡 거리'는 없지만 작은 철도건널목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서빙고 건널목, 돈지방 건널목등이 있다. 유래를 궁금하게 하는 돈지방 건널목 이름을 역무원 아저씨께 물어봤다. 독특한 이름 덕에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인근에 일본군이 주둔해서 그런 이름(둔→돈)이 붙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이렇게 철도건널목마다 이름이 있지만 인터넷 지도에서 건널목 이름을 검색해도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사회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평범하고 믿음직한 내 이웃 사람들 같은 존재구나 싶다.

덧붙이는 글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했습니다.
#땡땡거리 #철도건널목 #서소문건널목 #백빈건널목 #미근동땡땡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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