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실은 열차는 지옥 위를 달린다

등록 2017.07.31 17:35수정 2017.07.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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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전철을 탄다. 출근 시간, 사람들 틈에 끼어 철로 위에 몸을 맡긴다.

출퇴근길 전철에는 몇 가지 암묵적 규칙이 있다. 환승 통로와 연결되는 출입문 근처에서 서성대지 않을 것. 에스컬레이터에서 길을 막으며 서있지 않을 것. 등등. 매일 출퇴근 시간, 거대한 물결이 땅 위와 아래로 만들어진다. 혹시 낯선 지하철역에서 그 흐름을 거슬러본 적이 있는가? 출근길의 규칙을 어기는 자에게는 어김없이 수많은 '어깨빵'과 따가운 눈총이 돌아온다.

가끔 첫차도 탄다. 첫차에는 평소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가방을 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조금 피곤한 듯 꾸벅 졸기도 하며 새벽부터 분주하게 어디론가, 어디론가 간다. 밤새 술에 취했다 돌아오는 아침 첫차 안에서는 그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묻게 된다. 저 노인들은 왜 아직도 부지런해야 하나? 우리는 왜 이렇게 더럽게 피곤하고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가?

철로 위에는 승객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쁨과 피곤함은 수많은 철도 관련 노동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5월 27일 광운대 역에서 철도 노동자 조영량씨가 열차를 분리하고, 연결하는 입환 작업을 진행하다 사고로 숨졌다. 입환 작업은 본래 일곱 명이 한 조로 진행하던 것인데 인건비 절감의 명목으로 한 조의 정원이 다섯 명으로 줄어들었고, 사고 당일에는 네 명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2016년 구의역에서 19살 김 군이 죽었다. 몇 달 뒤, 지진으로 지연 운영되던 KTX 경부선 철로를 보수 중이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두 명이 죽었다. 1년이 지난 올해 숨진 조씨는 인력감축을 견디고, 격무에 시달리던 정규직 노동자였다. 1년 사이 철로 위의 죽음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번졌다.

오늘도 전철을 탄다. 미어터지는 사람들 속에서 팔을 살짝 움직거리기도 조심스러운 '지옥철' 안에서 우리는 매일 각자의 지옥을 통과한다. 이것은 그저 주어진 일상의 풍경일 뿐일까. 누군가 그랬다. 혁명이란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는 비상브레이크' 같은 것이라고. 오늘도 바쁜 사람들 속에서 문득 상상한다. 바삐 달리는 열차 안에서 우리의 브레이크란 무엇일까?

하지만 상상이 오래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어느새 우리는 다시 바쁘게 흘러가는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휩쓸린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복잡한 생각과 분노에 대해서만 은근 슬쩍 브레이크를 당겨오지는 않았던가. 오늘도 열차는 지옥을 싣고 지옥 위를 쉼 없이 달리는 중이다.

주: 글을 마무리 하던 중 노량진역에서 철로를 보수하던 노동자 김창수 씨가 또 숨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13명이 정원이던 영등포 시설사업소의 정원은 9명으로 축소되었다. 6월 28일 자정, 사고 당시에는 7명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김창수 씨는 철도노조 지부장과 시설부장까지 역임했고 안전한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던 베테랑 현장 노동자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서동기 씨는 인권연대 회원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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