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경구피임약 광고에 숨겨진 불편한 시선

등록 2017.08.07 14:41수정 2017.08.0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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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주연


페이스북에 제약회사의 경구용 피임약 광고가 떴다. 바야흐로 피임약이 공공연하게 어느 곳에서나 언급되는 시대이다. 성의 대중화라고 해야 하나?


광고 첫 화면은 침대 위에 앉은 젊은 남녀 커플이 등장한다. 두 남녀는 해시태그로 미루어 보면 동거가 아닌, 결혼한 관계이다. 그런데 얼핏 봐도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기지 않아 보이는 외모이다. 남성은 후드티를 입고 있는데 20살 전후로도 보인다. 흰색 반팔 면티에 가는 끈이 달린, 슬립 스타일의 상의를 겹친 여성은 소녀 느낌까지 들고. 그래서 평균 초혼 연령이 30대라는 요즘 실태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남성이 긴장한 듯 침을 삼키고, 여자는 치맛자락을 쥐고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온 후, "피임약 꼭 먹어야 되요? 호르몬 그런 것 때문에..."라는 여성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이어 "몸에 부담되지 않을까?"라는 남성의 말이 더해진다.

이와 같은 젊은 부부의 조심스러운 모습은, 본래 설정된 신혼부부보다는 오히려 성적으로 첫 경험을 앞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이 피임약에 대한 오해와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미모의 서양인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그녀의 하이힐 구두 뒤태를 먼저 비춘다. 일반적으로 하이힐의 뒷모습이 여성의 엉덩이와 다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상담사의 지적 능력보다는, 성적 매력 강조로 해석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 속 가이드북에 적힌 "피임약을 처음 하는 그녀, 피부도 중요한 그녀, 신혼을 더 즐기려는 그녀에게"라는 문구는 페이스북 화면에 있는 해시태그와 같다. 해당 제품이 경구용 피임약으로 여성이 하는 피임법이기에 "그"가 아닌 "그녀"라고 딱 꼬집어 지칭했다.


여성의 질문에 상담사는 미소를 지으며 "에스트로겐 함량이 낮은 피임약"이라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영상 끝에서야 빼곡하게 적힌 글자에 빠른 목소리로만 복용법과 주의사항 등을 알려준다. "두통이나 메스꺼움, 혈전 등 부작용" 이 있고, 피임약은 "여성이 선택"할 피임방법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의료전문가와 상담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 남성용 피임 도구인 콘돔과 달리 여성이 복용하는 경구피임약은 '약'이니 만큼, 아무리 좋은 약일지라도 부작용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에 따라 영향에 차이도 있고. 그래서 의료전문가와 상담은커녕, 마트에서 과자처럼 쉽게 살 수 있는 콘돔과는 차이가 난다.

두 번째 장면에 등장하는 커플은 이제 초반의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은 사라진 채 서로 장난까지 친다. 여성이 "피부는 괜찮을까요?"라 묻자 상담사는 "피지 분비량을 감소시켜... 여드름 치료에도 효과"라고 대답한다.

즉, 해당 제품이 낮은 에스트로겐 함량으로 이와 관련한 부작용이 적으며, 여드름 치료에도 효과적인 것을 강조한다.

세 번째 장면에서는 여성이 빨래를 널다가 "우리 둘만이 있어도 좋지 않아?"라고 말한다. 남성은 "인제는 새 식구 만들어야지용~"이라 웃으며 대꾸하면서 "새 식구, 세 식구" 말장난을 한다. 이에 상담사는 "임신하고 싶을 때? 그만 먹으면 그만!"이라며 복용만 중단하면 임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광고 마지막에는 "장기 사용할 경우 주기적으로 병의원 진료를 받으라"라고 권고한다.

여성이 이 경구피임약으로 피임하려면 21일간 복용 후에 7일간 복용을 하지 않아야 한다. 광고 속 여성은 쭈뼛쭈뼛하던 처음과 달리 갈수록 능동적으로 피임을 원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해시태그로 "신혼을 더 즐기려는 그녀"를 설명하듯이.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하려면 얼마 동안 피임약을 먹어야 할까?

한편으론 이러한 모습이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미화된, 남성에 의해 강요된 성문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사랑하는 그녀가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게 남자가 피임하면 되지 않나 싶고.

불임으로 몸과 마음고생에 고가의 시술비용도 감수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반면에 어떠한 이유로든 피임을 원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사생활에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이 피임에 대해서는 분명 남녀 모두가 선택권을 지닌다.

만일 남성용 경구피임약이 있다면, 부작용의 위험에도 남성들이 먹을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당신은 여성에게만 그 선택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구피임약 #콘돔 #피임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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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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