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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무지 열 받는데?" <그알>의 얼굴, 김상중의 분노

[오마이스타 창간 6주년 기획] <그알>이 알고 싶다② 최장수 진행자, '중년 탐정' 김상중

17.08.19 14:08최종업데이트17.08.22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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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민


배우 김상중이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목동 SBS사옥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녹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중년탐정 김상중의 사건 사무소.'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의 포맷을 짧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MC 김상중이 사건에 대한 단서와 질문들을 던지며 진실에 다가가는 구성이다. 제작진의 집요한 취재로 얻어진 정보의 파편들은 김상중의 안내에 따라 퍼즐처럼 제 그림을 찾아간다. 한껏 몰입할 때쯤 한 번씩 "그런데 말입니다" 하고 치고 들어오는 반전에 허를 찔리다 보면, 이내 묵직한 메시지와 진실이 드러난다. 진행자의 1인극에 빠져들다 보면 어떤 복잡한 사건, 어떤 어려운 이슈도, 한 편의 추리 영화나 미드를 보듯 흥미롭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김상중은 그런 <그알> 포맷에 최적화된 진행자다. 2008년 3월부터 지금까지, 9년 5개월째 <그알>을 지켜오고 있는 그는, 문성근 박원홍 오세훈 문성근 정진영 박상원에 이은 7번째 <그알> MC이자 최장수 진행자. 김상중은 "나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내 역할은 저널리스트들이 취재한 내용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전달자"라고 했다. 김상중이 생각하는 <그알> 안에서의 자신의 포지션이다. 

하지만 박진홍 CP는 "10년 동안 <그알>을 하신 분이라 그런지, 통찰력과 직관이 감탄스러울 때가 많다"면서 "스튜디오 멘트의 경우 김상중씨와 오픈해 같이 토론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맥락과 사실관계에 사로잡히다 보면 제작진이 종종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마다 김상중이 바로잡아 준다는 것이다.

"PD들이 6주 텀으로 제작하는데, 순서를 굳이 외우고 있지 않아도 얼굴 보면 누가 이번 순서인지, 다음 순서인지 바로 알아요. 몰골이 말이 아니거든. (웃음) 그렇게 취재에 빠져있다 보면 가끔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저널리스트는 아니지만, 10년 하다 보니 수정할 부분이 보이기도 해요.

내 시선은 시청자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이해 못 하거나, 어렵다고 생각되는 부분. 막히거나 궁금한 점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게 <그알>의 첫 번째 시청자이기도 한 내 역할이죠."

김상중의 금요일=그알 

김상중의 금요일은 <그알>이다. 본업은 배우지만, 매주 금요일 스케줄을 빼줄 수 없는 작품 섭외에는 응하지 않는다. 역할 선택에 있어서도 <그알>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 이정민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목동 SBS 본사에서 김상중을 만났다. 이날은 <그알> 스튜디오 녹화와 더빙 작업이 이뤄지는 금요일이었다.

김상중은 매주 금요일 스케줄을 빼줄 수 없는 작품 섭외에는 응하지 않는다. 유난히 지방 촬영이 많았던 <역적>에 출연하면서도 한 번도 <그알> 녹화에 차질을 준 적이 없다. 박진홍 CP가 "그때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고 하자, 김상중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이젠 (방송가에서는) 다들 '김상중의 금요일은 무조건 <그알>'이라는 걸 알고 있어 가능한 작품 섭외만 들어 온다"고 했다. 그만큼 <그알>이 김상중에게 있어 중요한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다. 

"역할 선택할 때도 <그알>을 고려해요.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프로잖아요. 밑도 끝도 없는 악역은 좀 그렇죠. 그런 역할 섭외가 몇 번 들어왔는데 고사했어요. 대신 같은 악역이라도 정당성이 있고,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면 해요. <나쁜 녀석들>은 <그알>을 진행하면서 느낀 풀리지 않는 답답함, 응어리 같은 것들을 풀어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대리 만족하는 프로였죠. <역적>은 드라마를 통해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었고요. <그알>과 괴리감 없는 역할들을 하려고 하죠."

김상중이 처음 <그알> 진행자 섭외 요청을 받은 건 1대 진행자 문성근이 물러난 직후였다. 당시 SBS <추적 사건과 사람들>이라는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었지만, 문성근의 이미지가 강한 프로그램이었고, <그알>을 맡기엔 연륜이 부족하다 여겨 고사했다고. 이후 <그알>의 진행자가 바뀔 때마다 제안을 받았지만, 결국 받아들인 건 2007년이었다. 스스로 "이제는 나도 살아온 시간이 있고, 세상을 보는 눈도 있으니 해도 되겠다" 싶었단다. 

앞선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홍정아 작가는 "스튜디오 멘트는 오로지 김상중의 역할"이라면서, "연기력이 대단히 좋은 배우라 같은 멘트를 치더라도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박진홍 CP도, <그알>에 유독 배우 진행자가 많았던 이유에 대해 "초기 <그알>을 기획한 분들이 호소력과 전달력, 몰입도가 높은 시사 프로그램을 구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상중이 스튜디오 멘트를 "1인극처럼" 하는 이유다.

"배우 진행자의 장점이죠. 그저 전달하고 진행하는 게 목적이라면 아나운서라든지 전문 MC들이 더 나을 테니까요. 그래도 지나치면 안 되죠.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도록,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감정 지나치지 않도록 노력... 하지만

ⓒ 이정민


김상중이 <그것이 알고 싶다> 녹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본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알>의 첫 번째 시청자로서,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 어려워할 부분을 미리 제작진에게 묻고 채우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 이정민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시청자들처럼 화나고, 북받치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날 녹화분은 지난달 22일 방송된 '청춘의 덫-파타야 살인 사건'이었는데, VCR을 보며 더빙을 하던 그는 불법 도박 조직에 감금돼 폭행당하는 CCTV 영상을 보더니 연신 "와 무지하게 열 받는데?"라고 외치며 담당 이큰별 PD에게 "(가해자) 모자이크 하는 둥 마는 둥 하자. 아주 죄질이 나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물론 카메라가 꺼진 이후 나눈 '사적 대화'였다.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처럼 객관적이고 묵직한 말투로 이야기를 전했다. 카메라 앞에서도 도저히 감정 콘트롤이 안 되던 순간은 세월호 방송 때였다.   

"녹화 전 대본 볼 때부터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가슴이 메어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 그때 담당이 배정훈 PD였는데, 내가 혹시 멘트하면서 감정 추스르지 못해도 이해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알> 진행하는 동안 가장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순간이었죠."

김상중이 녹화 때 보는 VCR 영상에는 모자이크 처리나 음성 변조 등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물론, 가해자들의 모습, 유가족들의 슬픔 등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모자이크 작업은 최종 편집 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가려진 방송만 보아도, 피해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곤 했는데, 시신의 모습 등을 그대로 보고 나니 잔상이 쉽게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매주 이런 화면을 보아야 하는 김상중에게도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그저 사진에 대한 잔상이 오래 갔어요. 하지만 이후에는 그 아픔이나 고통에 대한 잔상이 더 오래 가더라고요. 2015년에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을 다룰 때였는데, 정말 추운 겨울이었어요. 긴 드라마 대사를 외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단락단락 쪼개져 있는 진행 멘트는 보통 금방 외워요. 근데 그날은 유독 발음이 꼬이고, 싸한 기분이 들었어요. 뭔가가 자꾸 방해하는 느낌? 나도 모르게 피해자에게 말을 걸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너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거야. 나를 좀 도와줘' 이렇게요." 

<그알> 탓에 배우 활동에 제약? "그렇다면 내 탓!"

ⓒ 이정민


SBS 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인 배우 김상중이 지난 7월 21일 오후 서울 목동 SBS사옥에서 대본을 읽으며 녹화준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김상중이 <그알>을 하며 느낀 건 "어느 누구도 비극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의 일이라고 그저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비극이 닥치더라도 국가가 나서서 잘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 내 나라가 그런 나라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알>에 출연하고 있다고 했다.

<그알>의 이미지가 너무 커 배우로서 역할 선택의 어려움이 없는지 묻자 "배우로서 이미지가 정형화된다면, 그건 나의 부족함 탓"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그알> 덕분에 얻어진 지적인 이미지를 통해 <어쩌다 어른> 같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하고, 광고도 찍고 있으니 좋은 일 아니냐"며 웃었다. "오늘의 <그알>이 만들어지기까지 제작진의 역할이 컸지만, 분명 그 안에는 진행자의 힘도 있었다. (배우로서 느끼는 어려움보다) 프로그램에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크다"는 그의 말에서, 더 큰 책임감이 느껴졌다.

"저도 사람이니까 언제 어떻게 실수할지는 모르죠. 하지만 술을 한 잔도 못 해요. 일단 음주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은 피할 수 있죠. (웃음) 대한민국의 정의를 알리는 프로그램의 진행자인데, 당연히 행동거지도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칠 때쯤 담당 작가와 PD가 이날 방송의 대본을 가지고 대기실로 찾아왔다. PD와 CP가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난 뒤, 김상중의 이런저런 질문과 부가 설명이 이어졌다. 20~30분 동안 스튜디오 촬영 이동 동선부터, 왜 담당 PD가 이 아이템을 선정했으며, 그 뒤의 메시지는 뭔지,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범인의 행방, 취재 뒷이야기, 현지 사정 등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궁금해할 법한 자연스러운 질문과 답변도 이어졌다. 김상중은 "<그알>이 지목한 범인은 다 잡아들이는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팀에 대한 신뢰를 감추지 않았다. 이런 믿음은 김상중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곤 한다. 김상중은 "어떤 일을 10년 정도 하게 되면 안주하게 마련인데, <그알>은 안이해지려는 순간 정신 차리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그알>은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프로예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정보가 많아졌고, 데일리 뉴스가 아니기 때문에 때론 뒷북치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알>의 영역은 남아있고, 파급력도 여전하다고 믿어요.

언제부턴가 <그알>에 마니아층이 생겼고, 방송 이후 사건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더라고요.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미제 살인 사건을 다루면 시청률이 더 잘 나오고, 사회 이야기를 하면 시청률이나 관심도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시청자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미제 사건이든, 사회적 이슈든, <그알>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이야기,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를 하거든요. 결국 진실과 정의에 대한 이야기들이잖아요. 아이템 편식 없이, <그알>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골고루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상중이 <그알>의 친절한 안내자라면, 여러 '교수님'은 <그알>의 신뢰도와 전문성을 책임지는 기둥. <그알>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 전문가 중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를 만났다. 범죄심리학을 택한 이유부터, 최근 드라마의 인기 직종이 된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수정 교수의 인터뷰가 3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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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자문을 맡고 있는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가 지난 7월 26일 오후 서울 충정로 경기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그것이 알고 싶다 그알 김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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