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별빛을 줍는 살림

[시골 아버지 살림노래] 여름에 네 번 빨래쯤이야

등록 2017.08.07 17:15수정 2017.08.0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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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네 번 빨래


무더운 여름날입니다. 아침 일찍 빨래를 했고, 낮에 빨래를 더 합니다. 아이들하고 마을 어귀 빨래터에 가서 물이끼를 걷어내는데, 두 아이는 한여름에 빨래터 물놀이를 하고 싶답니다. 그러마 하고 지켜봅니다. 옷을 몽땅 적시며 까르르 웃고 떠듭니다. 마을 할매는 회관에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시다가 우리 아이들이 함께 빨래터 치우기를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수박을 썰어 가져다주십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빨래를 다시 합니다. 물놀이를 하며 적신 옷을 빨지요. 하루 내내 신나게 논 아이들은 저녁에도 지치지 않습니다. 달빛을 바라보며 마을 한 바퀴를 걷는데 작은아이는 내내 달립니다. 이리 앞서 달리고, 저리 돌아오며 달려요. 옴팡지게 땀을 흘리며 저녁놀이를 즐긴 작은아이를 씻기고서 작은아이 옷을 또 빨아요.

아이들을 재우기까지 하루 네 번 빨래를 한 셈이고 네 번 씻긴 셈이에요. 하루에 네 번 빨래를 하자니 어지럽습니다만 예전에는 하루에 네 번뿐 아니라 열 번이나 스무 번도 빨래를 했다는 대목이 떠오릅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 그랬어요.

큰아이는 천기저귀 하루 마흔다섯 장씩, 작은아이는 천기저귀 하루 서른 장씩 빨랫감을 주었어요. 이불은 사나흘에 한 번씩 빨래하도록 했지요. 포대기나 처네도 이레마다 빨래를 했고, 배냇저고리나 손천이나 참말로 어버이는 빨래돌이로 살아야 했습니다. 한동안 잊고 살던 '아침부터 저녁까지 빨래돌이 살림'을 이 한여름에 문득 맞닥뜨렸어요. 참말로 씩씩하게 무럭무럭 개구지게 잘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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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우고서 신을 스스로 빨래한다. 이러고서 신나는 물놀이. ⓒ 최종규


부채를 두 손에 쥐고서


두 손에 부채를 하나씩 쥐고서 부채질을 합니다. 곯아떨어진 두 아이가 여름밤에 시원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크게 팔을 저어서 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가볍게 팔을 놀리며 부채질을 하기도 합니다. 자다가 밤에 문득 일어나서 부채질을 하기도 하는데, 요새는 때때로 선풍기를 틉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이던 지난해까지는 선풍기로 재운 일이 없이 늘 부채로 재웠어요.

올들어 때때로 선풍기를 쓰기는 하되, 웬만한 때에는 으레 부채입니다. 선풍기가 안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부채를 손에 쥐면 아이들 몸에 맞추어 조금 세게 부치거나 살몃살몃 부쳐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채질은 무척 조용하면서 따사롭구나 싶어요. 더운 여름에 웬 따사로움을 찾느냐 싶을 만한데, 에어컨 바람보다 부채질 바람이 땀을 한결 잘 식혀 준다고 생각해요.

겉절이 담그다가 씻기다가

아침에 배추를 썰어서 절여 놓았습니다. 배추를 썰면서 쌀겨로 풀을 쑤었지요. 낮에 읍내 우체국을 다녀오고서 저녁을 차려 아이들을 먹인 뒤에는 큰아이부터 씻는데 작은아이는 아직 씻어 주어야 합니다. 한창 겉절이 양념을 하다가 부랴부랴 작은아이를 씻기고는 다시 겉절이 양념을 썰고 갈고 다집니다.

온 하루를 신나게 뛰어논 아이들은 먼저 꿈나라로 갑니다. 나는 절인 배추에 양념과 풀물을 붓고는 천천히 버무려서 겉절이를 마무리짓습니다. 마무리지은 겉절이는 김치통에 옮겨서 냉장고에 넣습니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 시원하게 씻으니 뼈마디마다 욱신거리지만, 이튿날부터 새 김치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달게 꿈나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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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가기 앞서 ⓒ 최종규


손발을 쓴다

장난감을 만지든 나무를 타든 똑같이 손발을 써요. 장난감을 만지면 장난감 기운이 몸에 서릴 테고, 나무를 타면 나무 기운이 몸에 서릴 테지요. 아이들하고 살아가면서 더 좋거나 더 나쁘다고 할 것은 따로 없는 줄 늘 깨닫고 배워요.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어떤 눈길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고요.

어버이 스스로 곱게 마음을 쓸 수 있으면 아이들은 고운 마음을 지켜보면서 배우더군요. 어버이 스스로 착하게 바라볼 줄 알면 아이들은 착하게 바라보는 눈길을 익히고요. 두 아이가 퍽 어릴 적에 나무타기를 한 번 보여주었더니, 아이들이 자라고 자라는 동안 스스로 나무타기를 해 보려고 용을 썼고, 이제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스스럼없이 나무타기를 즐기는 손발로 거듭납니다.

고작 한 번 보여주었다고 따라한다기보다,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몸짓을 한 번 잘 보여준 셈이리라 느껴요. 손발을 쓰는 길이란, 손발로 살림을 사랑하는 길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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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타기를 해낸 작은아이 ⓒ 최종규


나들이를 가려고

나들이를 가려고 짐을 꾸립니다. 두 아이는 스스로 갈아입을 옷하고 손천을 챙깁니다. 물병까지 알뜰히 챙기기도 하지만 깜빡 잊기도 합니다. 아버지도 곧잘 한두 가지를 깜빡 잊으니 아이들도 더러 한두 가지를 잊을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빠뜨린 것이 있느냐고 묻고, 더 챙겨 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나서기도 합니다. 나중에 맞닥뜨려 보아야 배울 수 있으니까요. 한여름 뙤약볕을 쬐면서 바닷물을 안으려고 나들이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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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모깃불을 태울 적에 마당을 쓸어서 가랑잎이며 부스러기를 함께 태운다. 두 아이 모두 비돌이 비순이가 되어 준다. ⓒ 최종규


부엌에서 별빛을 줍다

두 아이를 재우는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먹었고, 무엇이 즐거웁거나 좋았으며, 이 즐거웁거나 좋았던 기운을 어떻게 몸이랑 마음에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꿈을 꾸는 잠자리인가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밤에 잠이 들면서 몸에 기운이 새로 차오르도록 할 뿐 아니라, 아침을 맞이할 적에 우리가 하루 동안 새삼스레 배우면서 즐거이 지을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나도 잠자리에 누우려다가 물 한 모금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는데 부엌 바닥에 뭔가 하얗게 있는 듯해요. 허리를 숙여서 부엌 바닥을 짚는데 어라 아무것도 안 집힙니다. 아니, 별빛이 집히네요. 달빛하고.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살림노래 #시골살이 #삶노래 #아이키우기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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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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