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더 필요한 이유

여성 비하했던 어린 시절 친구들, 아무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

등록 2017.08.08 11:05수정 2017.08.08 13:45
52
58,000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짧은 머리에 늘상 바지를 입던 여자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때가 있었다. 나긋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 때문에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던 나와 전형적인 톰보이 스타일의 그 친구는 항상 다른 아이들의 만만한 놀림감이 되곤 했다.

물론 선생님은 교실의 불화를 용납하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을 괴롭혀선 안 된다고 이야기 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가끔씩 생각해보곤 한다. 그 선생님이 그 이상의 가르침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여자다운 것도 남자다운 것도 없고, 부당한 성역할을 누군가에게 요구해서도 안 되며 성규범을 따르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괴롭혀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말하자면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야지'를 넘어서 그 이유까지 말해주었다면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설득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저 선생님이 고리타분한 좋은 말이나 한다고 여겼고 감시를 벗어나면 나와 그 친구를 다시 괴롭히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한국의 평범한 10대 남자로 성장해 갔다. 유별난 남자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포르노를 가져와 친구들과 돌려보곤 했다. 그럴 때면, 어디서 배워 왔는지 영상 속 여성을 향한 비하적인 욕설과 음담패설도 늘어놓곤 했다.

한창 '된장녀'라는 단어가 화제로 떠올랐을 때는 도마에 올랐던 배우를 비난함과 동시에 자기 주변의 여성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무난히 졸업했고 대학에 가거나 취직을 했다. 별다른 계기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은 '김치녀'나 '메갈'을 입에 달고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학교에 등장한 '페미니스트 선생님'

최근 위례별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페미니즘 소모임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혐오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에겐 더 많은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 ⓒ 닷페이스 영상 갈무리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아쉬웠다. 적절한 개입의 순간이 있었다면 그 친구들이 그렇게 성장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최근에는 교육 현장에서도 여성주의의 바람이 조금씩 부는 모양새다.

얼마전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는 영상을 통해 위례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페미니즘 동아리'를 이끄는 최현희 교사를 소개했다. 그녀는 운동장이 남자 아이들의 공간이 된 것에 어떤 교사도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환경에서, 지금은 활달하지만 성적인 사회화를 거쳐 그런 성격이 깎여나갈 여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페미니즘을 학교로 들고 오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최현희 교사는 아이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혹은 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성주의 교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그녀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일부 극우, 남초 커뮤니티에 최현희 교사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해당 학교나 교육청에 반대 민원을 넣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심지어 최현희 교사의 신상정보를 유포하거나 개인 SNS 계정으로 악의적인 멘션을 보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물론 이에 맞서 최현희 교사를 보호하자는 여론 또한 등장했다. 한 인터넷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위례초등학교에는 비방 민원보다 최현희 교사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전화가 더 많이 가고 있다고 한다.

왜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배워야 하는가

나 역시도 최현희 교사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거기에 더해 나는 그녀의 활동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이 지나치게 입시 위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공교육은 공동체의 유지와 형성에 적합한 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는 보다 학술적인 교육을 받음과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인 가치들 역시도 함께 학교에서 배워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여성주의는 성별이나 성적 실천에 따른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는 사상이자 이론이다. 이 정도면 교양 수준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에 있어 필수적인 원칙이 아닐까.

사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정확히는 남자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은 남성들의 무지(無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남중/남고에서 분리된 생활을 하지 않은 이들조차 동시대 여성의 삶과 사회적 위치를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몰라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반해 문화적으로 만연한 성적 대상화나 성역할 담론은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그러니 젠더 폭력을 휘둘러도 이를 욕망의 실천으로 여기지 그게 폭력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적극적으로 시정하고 만연한 성폭력을 방지하려는 시도들을 '역차별'이나 '남성을 가해자로 전제'하는 행위라고 인식한다. 때문에 이들은 '남성'으로서 별다른 배제나 위협을 겪지 않는, 젠더 관계에 있어서 기득권적인 위치를 점함에도 스스로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표출하고 이것이 범죄로 연결되기도 한다.

교실의 여성주의가 만들어 낼 미래

내가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구체적인 단어나 사건들로 언급해보자. 몰래 카메라, 지인 합성(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거나 나체 상태인 여성의 사진에 주변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행위), 데이트 폭력, 여성 혐오 범죄 등등. 성폭력과 성추행, 성차별과 같은 오래된 문제들을 빼놓고 열거해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이들은 사회 구성원 전반을 위험에 빠트리고 불안하게 만들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은 지금도 공동체의 주요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만약 애초에 젠더가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학제보다 이를 심도있게 연구한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배웠다면 어떠 했을까. 아마 애초에 내가 이야기한 문제들은 발생조차 하지 않았거나 혹은 여성과 남성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심각한 사회적 적폐로 고려하여 이미 오래전에 근절시켰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나는 현재의 문제를 미래에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 전반의 성별과 성적 실천에 따른 차별과 배제, 혐오와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이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또 하나. 페미니즘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뛰어난 학술적 성취를 이룩한 학제 중 하나다. 담론에 대한 담론이자 기성 학문에 대한 비판적 인식론으로서 여성주의가 쌓아온 성과는 매우 방대하다. 철학과 사회학, 언어 이론에서부터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리라 여겨지는 과학이나 지리학까지, 뛰어난 학자들이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렌즈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물을 남겨왔다. 즉 윤리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매우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명의 교사가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는 아직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교사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
댓글5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마이크 끄세요!"... 피우진 '증언 거부'에 들썩인 정무위
  2. 2 [오마이포토] 드론 촬영한 여의도 촛불집회
  3. 3 "문재인 정부는 기만적,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달라"
  4. 4 "조국 동생, 구급차 타고 커피 마셔? 제정신이 아닌 이상..."
  5. 5 "MB정부 쿨" 만큼 섬찟했던 윤석열의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