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왜곡과 김수행 <자본론>의 불편한 동거

고 김수행 <자본론> 출판한 비봉출판사의 이상한 행보

등록 2017.08.12 10:35수정 2017.08.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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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자본론은, 전 세계 경제학자와 사회운동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근대의 명저다. 그러나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 자본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서였다. 자본론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89년에 이르러 비로소 번역자의 실명을 명시한 최초의 완역본이 출간된다. 바로, 2년 전 타계한 김수행 교수의 번역본이다. 출판사는 비봉출판사였다. 그 뒤로 여러 자본론 번역본과 관련 도서가 나왔지만, 비봉출판사 판의 김수행 자본론은 28년이 흐른 오늘까지도 대표적인 자본론 번역서로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자본론을 출판한 비봉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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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자본론>(비봉출판사,2015) ⓒ 비봉출판사


2015년 김수행 교수가 타계한 그 해, 개정판을 낸 비봉출판사는 자본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착취와 억압의 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이론적, 사상적 정수를 담은 <자본론>"

그리고 오늘날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 의의를 밝힌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모든 사람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자본론>을 읽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고인(김수행 교수)의 뜻과 공헌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다."


짐짓 결의까지 느껴지는, 자본론을 출간한 출판사다운 책 소개다.

'5.18북한개입' 왜곡을 유포하는 비봉출판사

그런데 비봉출판사가 최근 출판한 책들이 이상하다. 다음은 비봉출판사가 출판한 책의 서명과 저자, 출판년도다. <역사로서의 5.18 ①②③④>(김대령, 2013), <임을 위한 행진곡>(김대령, 2015), <보랏빛 호수>(이주성, 2017)까지.

<역사로서의 5.18>을 집필한 김대령은 지만원과 더불어, 5.18왜곡 유포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 칭하는 이 책은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됐으며,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묘사하는 등 매우 악의적인 5.18왜곡을 담고 있다.

"최은희의 말에 김정일의 부관은 "3년 있으면 남조선 해방하고 갈 텐데 3년만 기다리라. 틀림없이 해방된다"고 하는 말로 그녀를 달랬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지 3년째 되는 1980년에 그녀는 북한에서 광주사태 생중계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 폭도들이 무기고를 부수어 가지고 무기를 들고 서울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뉴스도 들었다. 북한 고위층이 말하는 통일의 기회란 남한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면 남침 땅굴 등으로 게릴라 부대를 침투시켜 내전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비봉출판사,<역사로서의 5.18> 책 소개 중)

김대령은 책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을 유포한다.

"35년 만에 처음으로 밝혀진 놀라운 진실 하나, 계엄군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 진압 작전 때 시민이든 시민군이든 1명도 사살하지 않았다. 그때 도청 안팎에서 죽은 사람들은 전부 시민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비봉출판사,<임을 위한 행진곡> 책 소개 중)

올해 5월 출간된 <보랏빛 호수>는 탈북자 이주성이 쓴 소설로, 마찬가지로 '5.18북한개입설'을 유포한다.

"광주사태 당시 남파되었던 한 탈북군인의 5.18 체험담.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남파되어 활동한 북한 특전사들의 실제 활동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이다. 1980년 5월, 북한 1010 군부대 019번이란 이름으로 남파되어 광주에 왔던 정순성이 직접 보고 겪은 광주 5. 18사태의 진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어 글로 남겼다."(비봉출판사,<보랏빛 호수>책 소개 중)

이러한 5.18 폄하 외에도 비봉출판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악마', '공작', '반역' 등의 표현을 쓰며 악질의 폄하를 담은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김기삼, 2010)를 출판했다.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이주영, 2016), <우남의 꿈>(신용구, 2015) 등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책과 제주4.3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한 <제주4.3사건의 거짓과 진실>(김동일, 2016) 등 여러 극우도서를 다수 출판했다.

비봉출판사의 두 얼굴,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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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호수>(비봉출판사,2017) ⓒ 비봉출판사


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박기봉 사장은 김수행 교수와는 서울대 경제학과 선후배 사이다. 김수행 교수가 자본론을 번역하게 된 데에도 박기봉 사장의 권유가 한몫 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 덕에 번역본이 박기봉 사장이 대표로 있는 비봉출판사에서 출판됐다는 것.

우리나라 대표적인 자본론 완역본을 출판한 비봉출판사와 지속적으로 5.18왜곡을 퍼뜨리는 책을 출판하는 비봉출판사. 대체 이유는 무엇일까? 실마리는 박기봉 비봉출판사 사장에게 있었다. 박 사장이 2015년 2월 조선PUB에서 한 인터뷰 내용을 잠시 보자.

'박 대표는 자신이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게 지낸 사이 우리나라가 근본부터 좌편향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그 책임감을 통감했다며, 이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종북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관련 분야의 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얼마 전 일간지에 <이승만의 대미투쟁>이란 책 광고를 내면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지도자가 바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이승만과 박정희 이렇게 네 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근본 이유와, 우리가 누리는 모든 과학문화 생활의 기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한 세대만에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경쟁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경제발전의 토대는 전부 이 네 분의 공적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실제로 유튜브에 박기봉 사장을 검색하면, 5.18을 '무장폭동'이라 주장하는 박 사장의 강연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박 사장은 태극기집회에서 강경발언을 해 논란이 된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주도해 만든 정의실현국민연대 등 여러 극우단체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극우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법원은 악의적인 5.18왜곡을 담은 지만원과 전두환의 책에 대해 출판 및 배포 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론과 '5.18왜곡'의 동거를 보는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비봉출판사의 자본론을 계속 읽어야 할지 고민될 만큼.

자본론 1 - 상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15


#김수행 #비봉출판사 #박기봉 #5.18왜곡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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