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의 원조는 중국에서 만든 젓갈이었다

한여름 피서지 순창, 발효소스 토굴을 다녀와서

등록 2017.08.12 10:45수정 2017.08.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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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식품가공이다 보니 순창에서 일하는 지인들이 많다. 우리가 튀니지에 살 때 그 먼 곳까지 간장, 고추장, 된장을 보내준 동기도 순창에서 근무한다. 2010년부터 순창에 가봐야지 하면서 계속 기회가 되지 않았다. 살인적인 무더위가 기승인 아침 문득 순창 발효소스 토굴에 가봐야겠다는 일념에 순창으로 무작정 떠났다.

학창시절 과에서든 동아리에서든 가장 많이 찾았던 MT 장소는 강천산이었다. 강천산에 가기 위해서는 전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끝도 없이 구불거리는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 산 넘고 물 건너갔었다. 더구나 멀미까지 심한 나는 버스를 타고 강천산에 도착하면 초죽음이 되어 놀기는커녕 주구장장 누워만 있다가 왔었다. 그래서 순창을 향해 발걸음이 더 안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기별도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고 특별히 기대한 것도 없었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번 순창 여행에서 기대이상의 큰 즐거움을 누렸다. 먼저 길이 나를 놀라게 했다. 끝없는 산길을 상상하고 갔었는데 4차선 도로이다. 고속도로만큼 좋은 도로를 달려서 딱 30분 만에 순창에 도착하였다.

가장 먼저 순창군청에 들러서 지도를 하나 챙겼다. 아스라한 기억저편의 순창은 깊고 깊은 산골이었기에 어디를 갈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휴가 중이란다. 참말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휴가 때 순창을 찾은 것이다. 할 수 없지
뭐……. 후배에게 전화를 하였다. 마침 자리에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가 발효 커피 얻어 마시고 밥도 얻어먹고……. 선배가 사야 하는데 얻어먹었다. 담 번엔 내가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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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소스토굴입구 ⓒ 손안나


작열하는 태양이 밖에 서 있지 못하게 한다.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뜨거움을 넘어 햇살이 따가웠다. 햇살을 피해 발효소스 토굴에 갔다. 토굴은 자연토굴이 아니고 원래는 논이었었는데 땅을 파서 건물을 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인공토굴을 만들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평균 15~ 18도를 유지한다. 여름에는 조금 더 오르고 겨울에는 조금 더 낮아진다. 반바지가 약간 춥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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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소스토굴 내부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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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소스 내부 트릭아트 벽화 ⓒ 손안나


발효소스 토굴은 주제가 소스이다. 순창은 우리나라 국가대표 소스 생산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소스는 된장, 간장, 고추장이다. 이소스를 가장 맛있게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순창이다. 발효소스 토굴의 첫 번째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스에 관해서이다.

케첩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토마토소스로 알고 있었는데 원래는 중국에서 생선 등을 이용해 만든 젓갈이었다. 후에 젓갈은 호두를 이용한 소스로 바뀌어 동남아시아로 전파된다. 이 호두소스를 영국 탐험가가 말라카 왕국에서 유럽으로 가져갔고 유럽에 상륙한 케첩은 버섯으로 주재료가 바뀐다. 유럽의 버섯소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주재료가 토마토로 바뀐다. 결국 토마토소스가 케첩의 주재료 된 것은 19세기 초 미국에서였다. 케첩하면 토마토소스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마요네즈는 미노르카(Minorca) 섬의 마온(Mahon)에서 유래하였다. 프랑스와 영국의 7년전쟁(1756년~1763년)이 미노르카(Minorca) 섬에서 있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승리 하였다. 승리를 기념하여 잔치를 벌였지만 소스를 만들 마땅한 재료가 없었다.

요리사는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올리브 오일과 계란을 이용하여 소스를 만들었다. 이소스는 병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Salsa de Mahon(마온의 소스)"라 불리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Salsa de"가 빠지고 마오네즈(mahonnaise)라고만 불리게 된다. 마오네즈(mahonnaise)는 마온(Mahon)에 "-aise"를 붙여서 "마욘풍(風)의"라는 뜻이다. 프랑스어에서 "-aise"는 여성형 접미어로서 수식하는 명사인 소스(sauce)가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여성형을 취했다. 후에 마요네즈(mayonnaise)로 발음이 변하여 우리에게 알려졌다.

중국 광둥성 항구도시 주하이(珠海)에 살던 이금상(李錦裳, 리캄성)은 어민들에게 굴 수프를 파는 식당 주인이었다. 어느 날 굴 수프를 끓이다가 불 끄는 것을 깜박 잊고 불을 끄지 않아 수프가 완전히 졸아버렸다. 하지만 졸아버린 수프는 갈색으로 변하여 맛있는 냄새가 났다. 망친 요리를 소스로 사용하기 시작 하였는데 이것이 이금기 굴 소스의 시작이다. 자신의 이름에 가게를 뜻하는 기(記)를 붙여 '이금기(李錦記)'로 상표를 만들었고 마카오를 거쳐 홍콩에 정착하면서 전 세계에 굴 소스를 공급하고 있다.

외국에 살 때 발사믹 식초를 한 병 살려면 가격이 너무 비싸 몇 번이나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요즘 마트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발사믹 식초를 구할 수 있다. 이렇게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와인식초가 들어갔는지 안들어 갔는지의 차이 때문이다. 정통 발사믹 식초는 100% 포도 주스로 만든다. 원래 발사믹 식초는 포도 주스를 졸여서 나무통에 넣고 12~ 25년 동안 숙성을 시킨다. 이렇게 포도 주스로만 만들어 나무통에서 숙성된 발사믹 식초는 걸쭉하고 단맛이 난다. 발사믹 식초는 노화방지, 항암효과, 심장 질환 예방, 소화 촉진, 당뇨 예방 등에 효과가 있는 보양식초다.

반면 저렴한 발사믹 식초는 포도주 식초(와인식초)에 색소와 캬라멜 그리고 옥수수 가루를 넣어 2개월에서 3년 정도 숙성 시킨 것이다. 그래서 포도주 식초라고도 불린다. 포도주 식초는 효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발효소스 토굴의 두 번째 이야기는 세계의 매운맛 소스이다. 손꼽히는 매운 맛 소스는 모두 9개로 한국의 고추장, 페루의 아지 아마릴로 페이스트, 미국의 프랭크 레드핫, 튀니지의 하리사, 인도의 망고 피클, 포르투갈 & 모잠비크의 피리피리, 케러비안의 스카치 보넷 페퍼 소스 마지막으로 홍콩의 XO소스 이다. 세계 9대 매운 소스에 고추장이 들어간다니 왠지 어깨가 으쓱으쓱 해진다. 무엇보다 튀니지의 하리사를 이곳에서 만나 무척 반가웠다.

우리 가족은 튀니지에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살았다. 그 당시 튀니지 한인은 대사관 직원까지 다 합쳐도 60명이 되지 않았다. 쌀은 물론이고 무나 배추도 리비아 중국 시장에서 밀수로 들어 온 것을 사 먹어야 했다. 그만큼 한국 부식을 구하기 어려웠던 곳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고추장이 떨어지면 하리사를 사서 먹었다. 한국의 다데기처럼 생겼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고추장 대용으로 먹었었다.

어렵게 고추장을 장만 하였는데 현지인 파출부 아줌마가 일하러 와서 고추장을 먹으면 정말 속상 했었다. 우리가 하리사를 별 거부감 없이 먹듯이 튀니지 사람들도 고추장을 부담 없이 먹었다. 튀니지를 떠나며 가장 많이 사가지고 들어왔던 물건이 하리사였다. 사온 하리사를 다 먹은 후엔 이태원 아랍 시장에도 가봤지만 통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하리사를 보니 무척 반가웠고, 옛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하리사는 여러 종류의 매운 고추와 향신료, 허브, 마늘, 코리앤더, 레드 칠리 파우더 그리고 올리브 오일 등을 넣어서 만든다. 주로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에서 고기나 생선 스튜를 만들 때 사용한다. 튀니지 전통 음식인 꾸스꾸스를 만들 때는 반드시 들어가는 소스이다. 우리나라 고추장이 지역마다 집집마다 맛이 다르듯이 튀니지의 하리사도 지역마다 가정마다 만드는 방법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여러모로 우리의 고추장과 많이 닮은 소스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의 소스를 만난 후엔 미디어아트 체험관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내가 그린 곰팡이를 스크린으로 보내면 발효과정을 거쳐 전통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게임으로 즐길 수 있다. 어른인 나도 재미있게 놀았는데 나보다 뒤에 입장한 아이들은 신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다른 박물관이나 전시관의 미디어아트는 작품이라 눈으로 보기만 하는데 이곳에서는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을 때마다 화면이 변하고 게임이 되니 참 좋았다. 대전에서 온 한 가족은 지리산에서 담양 가는 길에 별 기대 없이 들렸는데 정말 재미있다며 즐거워했다. 작은 파격이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현장이다.

이야기가 있는 유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은 장류축제 때에 치맥 파티장으로 변신을 한다니 10월 장류축제 때에 한 번 더 오고 싶어진다. 유등 전시실 주변에는 고추장을 비롯한 장들과 장아찌들이 숙성되고 있어서 토굴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고 실제 사용되는 저온창고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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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커피를 판매하는 카페.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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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소스토굴에서는 장과 장아찌가 익어가고 있다. ⓒ 손안나


나오는 복도에는 트릭아트로 그려진 벽화들이 있어서 포토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많이 걸어서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이 카페에서는 발효된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를 팔고 있었다. 발효커피는 먼저 커피콩을 고초균 발효, 효모발효, 유산균 발효, 복 발효를 이용해 발효시킨다. 각각 발효된 4종류의 커피콩을 황금비율로 섞어서 로스팅 한 후 커피를 내린다. 이렇게 커피콩을 발효시키면 카페인이 감소하고 풍미가 좋아지고 기능성이 부여되어 차별화된 순창만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자기 때문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아니 커피를 못 먹는다. 그런데 이곳의 커피는 부드럽고 연해서 마치 구수한 숭늉을 마시는 것 같았다.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기에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한 컵이나 마셨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잠들 수 있었다.

너무 더워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은 곳, 별 기대 없이 방문한 곳에서 큰 기쁨을 누리고 돌아왔다. 순창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발효소스 토굴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전라북도 #순창군 #가볼만한 곳 #발효소스토굴 #재미있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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