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같은 책방, 열매 같은 골목

[마을책방 이야기] 전북 전주 <유월의서점>

등록 2017.08.14 14:26수정 2017.08.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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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지기 : 은수·고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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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는 때
 : 누리집에서 살펴야 함
 (책방지기가 몸이 여려 입원할 때가 있습니다)

여름 같은 책방이 있습니다. 여름을 좋아하고, 이 여름 가운데 유월을 사랑하는 책방이 있습니다. 여름 같은 책방이라면 어떤 느낌일까요? 바다 같은? 골짜기 같은? 흰구름 같은? 하늘빛을 닮은 파란 바람 같은? 여름에 쑥쑥 오르는 풀 같은? 여름에 이르러 꽃을 피우는 온갖 들꽃 같은? 여름에 이 땅을 날아다니는 제비 같은?


여름 같은 책방이 깃든 전주로 마실을 가면서 전주라는 고장을 생각합니다. 전북 전주는 '홍지서림'하고 '민중서관'이라는 큰 새책방이 있는 고장입니다. 그리고 이 홍지서림을 둘러싸고 헌책방이 거리를 이룬 고장이에요. 새책방하고 헌책방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이곳은 다른 고장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책내음이 흐른다고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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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천에 살짝 가려진 유리문. ⓒ 최종규


전주라는 이름을 전주 바깥에서 듣는다면 으레 한옥마을을 먼저 떠올릴 만해요. 그런데 한옥마을이라고 하는 이쁜 삶터가 이곳 전주에 있다고 한다면, 오랜 살림을 사랑하는 손길이 있다는 뜻이요, 이는 우리 삶을 이루는 오래되면서 너른 이야기를 아끼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이런 손길하고 마음이 바탕이 되어 홍지서림 책방골목을 이룰 테고, 전주 곳곳에 어여쁜 마을책방이 새롭게 태어나는 발판도 되겠지요.

전주에 뿌리를 내리는 알뜰한 마을책방으로 서학동에 <조지 오웰의 혜안>, 인후초등학교 곁에 <책방 같이:가치>, 덕일초등학교 곁에 <살림책방>, 전북대학교 곁에 <에이커 북스토어>, 남부시장 둘레에 <책방 토닥토닥><유월의 서점> 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마을책방은 마을 한켠에 조용하게 문을 열면서 곱다시 책살림을 이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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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하고 마실을 와서 작은아이는 그림을 그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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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이름쪽 ⓒ 최종규


마을책방에는 마을사람이 마실을 다니는 길에 살며시 들릅니다. 마을 어린이도 마을 어른도 홀가분하게 들러서 살짝 책 한 권을 누립니다. 이 마을책방에는 길손이나 나그네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웃 고장으로 나들이를 왔다가 문득 다리를 쉬면서 가만히 생각을 가다듬고자 마을책방에 머뭅니다. 나들잇길에 책으로 가방을 채우자면 무거울 수 있지만, 가방 무게가 아닌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책방마실을 누려요.

남부시장 둘레 골목길에 얌전하게 깃든 <유월의 서점>에 찾아갑니다. 작은아이는 마실길을 함께하면서 작은 마을책방을 놀이터로 삼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걸상에 앉고, 그림을 그립니다.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냐며 책방지기한테 여쭙니다.


새로운 책방을 꿈꾸며 스스로 서기에 독립책방이라면, 마을에서 조그맣게 이야기를 짓기에 마을책방이지 싶습니다.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운 살림을 바란다면 살림책방이 되겠지요.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이 땅을 사랑한다면 사랑책방도 될 테고요.

요즈막 들어 전국 마을 골골샅샅에 하나둘 움트는 책방은 독립과 마을과 살림과 사랑을 모두 헤아리고 싶은 작은 길을 걷는다고 느껴요. 스스로 서면서 마을과 어우러져요. 살림 짓는 길을 책에서 찾으면서 사랑 나누는 길을 책으로 펼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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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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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벗은 누구일까요. ⓒ 최종규


여름에 여름 같은 책방에서 쉽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여름을 떠올리면서 쉽니다. 가을도 지나고 겨울이 오면 햇볕을 바라는 마음으로 쉽니다. 겨울이 저물고 봄이 오면 새롭게 찾아올 여름을 기다리면서 여름 노래를 부를 책방에서 쉽니다.

여름 같은 책방하고 맞물리는 열매 같은 골목을 걷습니다. 마을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마을사람이 살아가는 골목을 걸어서 사뿐사뿐 찾아가는 길입니다. 마을책방을 찾아간 뒤 우리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은 이웃 마을사람이 삶을 짓는 골목을 다시 느긋하게 거닐면서 우리 마을길을 새삼스레 되새기는 길입니다.

한 손에 책 한 권을 들어도 좋습니다. 가방에 묵직하게 책을 담아도 좋습니다. 한 손은 아이하고 맞잡은 뒤, 다른 한 손에 책을 쥐어도 좋습니다. 두 손 모두 아이랑 손을 맞잡으면서 노래하며 골목을 걸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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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며 노는 작은아이 ⓒ 최종규


우리가 읽을 책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책 한 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이들하고 함께 나눌 책은 사랑스러운 노래가 감도는 책 한 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마을책방에서 러시아 타이가 숲을 그려 봅니다. 작은 골목책방에서 지엠오도 핵발전소도 없이 어깨동무하는 새로운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작은 유월책방에서 유월 뒤에도 여름 뒤에도 언제나 싱그러울 기쁜 보금자리를 그려 봅니다.

유월 칠월 팔월뿐 아니라, 가을 겨울 봄에도 <유월의 서점>은 늘 그렇게 골목에서 문을 살며시 열면서 상냥하게 손님을 기다립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책방이 한 곳씩 가만히 문을 열 수 있다면 참으로 재미있으리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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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 최종규


ㄱ. 이 멋진 책방을 꾸리는 기쁨이라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뜬금없이 짠해질 때가 있어요. 마음의 숲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책방 안에 있으면 그 누구의 내가 아닌, 온전한 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책방을 찾는 분들의 온기 덕분이지요.

<유월의서점>에서는 유독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됩니다. 그로 인해 서로를 치유하고 다독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간과 사람의 힘이라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제가 책방을 꾸리고자 했던 그 목표와 믿음을 깨닫게 될 때, 삶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ㄴ. 아름답다고 느끼는 손님 한두 분을 이야기하신다면?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우연치 않게 서점을 들르신 조00 대표님. 서울에서 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시는 대표님은 서점을 처음 찾으셨을 때 저와 네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셨어요. 이후 꾸준한 소통을 통해 서점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고 계시지요. 비가 올 때는 서점에 비가 새진 않는지, 날이 더울 때는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도시재생 바람이 불 때는 서점의 후폭풍이 밀려오진 않는지 걱정과 안부를 물어 주십니다. 그 따뜻한 관심들은 공간에 힘을 불어넣어줍니다. 우리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지요.

가끔 찾아오던 20대 중반의 청년 손님이 계셨어요.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 매우 어려워했던 분이었는데, 저와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진로를 찾아 서울로 가게 되었을 때, 마지막 인사를 위해 서점을 찾아오셨습니다. 고마웠다는 인사에는 진심이 느껴졌어요. 저희 서점은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게 손을 내밀어 주고,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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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 최종규


ㄷ. 10년째, 20년째, 30년째 <유월의서점> 앞모습은?
"저희 공간은 책을 매개체로 공공재로 쓰이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오래된 미래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잘 지켜내는 것. <유월의서점>은 고유의 공간을 잘 지켜내며 시대적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때로는 위로와 곁이 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ㄹ. 전주 이웃, 전주 바깥 이웃한테 <유월의서점>을 소개한다면?
"<유월의서점>은 독립출판물과 자연, 생태,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책과 더불어 지역의 문인들이 출자해 만든 모악출판사의 시집 시리즈를 선보이는 전주의 작은 골목책방입니다.

이 책방은 농촌마을에 존재하는 마을회관처럼 공공재로 쓰이길 바랍니다. 책방지기의 생각에 동참한 많은 분들이 책방에 필요한 물품과 생태, 농사 관련 책들을 기증해 주시며 나눔의 책방에 힘을 실어 주셨지요.

빛이 가장 찬란한 6월에서 영감을 얻은 '유월의서점'이란 이름처럼 이곳은 많은 분들의 따뜻한 빛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도움이 순환되고, 그 순환이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생각이 중심인 <유월의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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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시렁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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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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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 최종규


ㅁ. <유월의서점>에서 하는 모임을 소개해 주시고, 이같은 모임을 하는 즐거움을 들려주셔요.
"<유월의서점>은 '유월의 도서관' 코너를 따로 마련해 다양한 책의 순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은 구입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어 읽고, 소통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지요.

책 이외에도 여러 워크숍이 진행됩니다. 정기 워크숍으로는 농사와 생태를 주제로 하는 '유월의 영화관', 계절마다의 산나물과 꽃을 주제로 하는 자연요리 워크숍 '유월의 부엌',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읽고 나누는 '유월의 필사' 모임과 독립출판물 제작을 위한 '유월의 글쓰기' 모임이 매주 진행되고 있습니다.

빛이 좋은 오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조용한 골목에 다다르고, 그 안에 당신이 그리던 고요한 섬 하나가 있습니다. <유월의서점>은 책방을 찾는 이들에게는 좋은 책을 한 권 더 주고, 그런 다음엔 조용히 물러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유월의서점>을 지켜 나가겠습니다."

ㅂ. '유월의서점'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이야기를 들려주셔요.
"유월은 빛이 되는 계절입니다. 봄과 여름 사이, 가장 찬란한 볕이 시작되는 계절. 이 좋은 볕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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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트인 벽과 책상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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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상맡에 앉아서 바닷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최종규


ㅅ. 전주가 어떤 고장으로 나아가면 좋을까요
"전주는 흔히 전통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전통과 역사를 가졌다면, 분명 그것들을 다진 시간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의 힘을 잘 지켜내고, 복원되는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도시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ㅇ. 책을 읽는 즐거움이란? 마을책방으로 책마실 다니는 재미를, 아직 잘 모르는 이웃님한테 이야기해 주신다면?
"일본 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만의 시간에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재능의 증거이기도 하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책을 읽는 즐거움과 같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혼자만의 시간에 깊이 생각하고 공명하며 스스로를 다지는 것은 깊은 혼돈을 빠져나와 이해와 포용, 사랑을 갖춘 어른이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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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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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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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시렁 ⓒ 최종규


ㅈ. 책과 시골은 어떻게 어울릴까요.
"요즘 귀농귀촌 인구가 늘면서 젊은 청년층이 시골을 많이 찾는 추세입니다. 수도권에서 문화생활을 가깝게 접하던 그들에게 책은 그야말로 가장 많은 문화를 접해주는 백서이자 또다른 문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역시 시대와 현실에 어려움을 토로하던 청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자 이 공간을 처음 꾸렸고, 그 의미가 차츰 잘 전달되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문화는 책을 토대로 또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시골 책방은 어떤 것과의 단절을 통해 다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ㅊ. 마을에서 함께 짓는 이야기가 키우는 살림, 사랑은 우리 삶을 어떻게 북돋울까요.
"사람의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진 않지만, '나'이기보다 '우리'일 때는 분명 다른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들볶다가도 마을에서 함께 짓고 이야기를 꾸리게 되면 스스로 무뎌진 힘이 다시 성장하기도 하니까요. 그 힘으로 살림을 짓고 사랑을 하며 우리는 서서히 느긋하고 대범하게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각자가 비추는 빛들의 세기가 달라도 그 빛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우리의 삶은 빛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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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마실을 한 이튿날 아침, 책방이 깃든 골목을 조용히 걸어 보았습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유월의서점 #책방마실 #전주 #마을책방 #독립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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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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