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를 넘어 가다 분노하고 말았다

지프차로 히말라야 고개 넘어 라다크 가는 길

등록 2017.08.14 16:07수정 2017.08.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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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4천, 5천고지의 히말라야 고개를 넘고 또 넘어야 하는 라다크에 갈 수 있다. ⓒ 송성영


마날리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한 지프는 해발 4천고지에 가까운 로탕 라(3980미터)를 거쳐 해가 뜰 무렵 콕사 검문소에 도착했다. 여권 검사를 하는 동안 지프 동행인들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하고 속이 미식 거려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바나나 한 개로 대신했다. 다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자 지프가 시동을 걸었다. 깨샹은 내게 머리를 심하게 흔들어 보였다. 고산증세가 없냐고 묻는 듯 했다.

"약간 어지러운데 괜찮아. 깨샹, 너는?"


내가 머리를 흔들어 대며 말하자 녀석은 '노프러블럼'이라며 헤헤 웃는다. 후에 알게 된 것인데 보통 마날리에서 라다크로 가기 위해서는 고산증을 조절하기 위해 2천고지의 마날리나 3천고지 이상 되는 지점에서 하루 이틀 묵어가곤 한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나는 코 막힘이 자주 있어 호흡 곤란을 염려해 고산증에 좋다는 다이아목스를 준비 했을 뿐, 중간에 적응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지프는 조악한 포장도로와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내달려 나무 한그루 없는 초콜릿 빛깔의 산과 설산을 펼쳐 놓고 달렸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달릴 무렵 다친 무릎이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두 다리를 자유롭게 뻗을 수 없고 거기다가 손 둘 곳도 마땅치 않을 만큼 비좁은 뒷자리가 점점 온 몸을 옥죄어 왔던 것이다. 공룡의 뼈처럼 들어서 있는 울뚝불뚝한 근육질의 산들, 생전 처음 보는 신비로운 풍경들을 비좁은 자리 때문에 고통스럽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까르마, 조금만 쉬었다가 갑시다."
"한 두 시간 더 가면 쉬는 장소가 있습니다."
"잠깐만 쉬어 가면 안 됩니까?"
"마날리에서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중간에 자주 쉴 수 없습니다. 오늘 안으로 칼라차크라 행사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내일부터 열린다는 칼라차크라 행사장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늦게 도착하면 텐트 칠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내 배낭과 함께 지프 지붕에 실려 있는 짐은 까르마 가족을 위한 대형 텐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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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들과 함께 네 명이 앉아야 했던 뒷좌석. 손 둘 곳도 마땅치 않을 만큼 비좁았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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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산이 녹아 내려 물길이 되어 버린 도로. ⓒ 송성영


내가 힘들어 하는 내색을 보이자 싱글벙글 늘 웃던 깨샹의 얼굴이 굳어진다. 녀석이 몸을 틀어 약간의 공간을 내준다. 나는 녀석의 굳은 표정을 풀어주기 위해 '괜찮다. 괜찮다.' 거듭 말하며 장난삼아 오만상을 찌푸려 오줌 마려워 죽겠다는 시늉을 내 보이자 다시 빙글빙글 웃는다.


지프는 3, 4천 고지의 낯선 풍경 속으로 정신없이 달린다. 도중에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내린 물이 길을 막았지만 지프에게는 아무런 장해물이 되지 못한다. 물길을 헤치고 다시 정신없이 내 달린다. 하지만 씩씩한 지프와는 달리 북인도 코사니에서 다친 내 무릎에 통증이 밀려온다. 

내가 엉덩이를 약간이라도 틀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깨샹이 불편해 지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어린 깨샹을 비롯한 말수 없는 60대 초반의 티베트 사람과 스님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오뚜기 인형처럼 흔들리는 지프에 몸을 맡겨놓고 있다.

"깨샹, 엄마가 앉아 있는 중간 자리로 가면 어떨까?"
"괜찮아요."

중간 자리에 앉아 있는 깨샹의 늙은 엄마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인은 길게 늘어져 누워 있었다. 한 사람이 더 앉아도 편히 갈수 있는 자리였다. 우리는 세 사람이 앉을 자리에 네 사람이 짐짝처럼 앉아 있는데 중간자리는 어린아이와 함께 네 사람이 앉아도 될 자리를 두 여인이 독차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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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산길을 지키는 노동자들. 이들 중에 깨샹 또래 아이들도 보인다. ⓒ 송성영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내리는 과정에서 종종 무너져 내리는 도로를 보수하기 위해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모두들 얼굴이 시꺼멓게 그을려 있다. 저들 중에는 깨샹 또래 아이들도 보인다. 4천 고지에 이르는 이 높다란 히말라야에서 힘겨운 노동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 불만은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길고 가늘게 숨을 내쉬며 불만을 다스려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한 시간쯤 지날 무렵에 내 몸은 다시 한계점에 다다랐다. 고산증 예방에 좋다는 물을 틈틈이 들이켰더니 오줌보까지 곽 차 있었다.

"헤이 까르마, 잠깐 오줌이라도 누고 갑시다."

내 하소연을 들어준 것인지 아니면 까르마가 오줌보를 비우기 위해서인지 지프는 작은 호숫가에서 잠시 멈춰 섰다. 4천고지에 자리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는 깨진 얼음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푸른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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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천고지에서 만난 작은 호수는 푸른 수정처럼 맑았다. ⓒ 송성영


내리자 마자 길 한 옆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내 옆에 붙어 까르마 또한 지퍼를 내리고 볼일을 본다. 볼일을 보고 나서 운전석 옆자리, 조수석에서 편한 여행을 즐기고 있는 까르마에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가 앉아 있는 중간 자리는 넉넉합니다. 당신 동생 깨쌍이 거기에 앉아도 충분하지 않나요?"
"노프러블럼!"
"뭐라고요?"
"노프러블럼!"

그는 딱 잘라 말했다. 빌어먹을 뭐가 괜찮다는 말인가. 나는 점점 화가 났다. 내 목소리 톤이 달라지자 까르마가 힌두어인지 티벳어인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뭐라 뭐라 한다. 그러자 다들 키득 키득 웃는다. 아마 내가 징징거리는 것을 흉 본 듯싶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4천고지에 이르는 이 히말라야 설산을 걸어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에게 바지를 걷어 올려 밴드로 감싼 무릎을 보여주면서 "무릎을 다쳐서 고정된 자세로 오래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말했더니 그제야 자리를 바꿔 주겠다는 것이었다. 까르마는 내게 선심 쓰듯 자신이 뒷자리로 가겠다며 나와 스님을 앞자리로 보냈다. 자신이 혼자서 편히 앉아 왔던 자리를 두 사람이 앉게 했던 것이다.

앞좌석은 눈앞으로 다가오는 풍경들을 감상하기에 좋았지만 두 사람이 엉덩이를 반쯤 걸쳐 앉아야 했다. 한 시간쯤 지날 무렵 앞좌석에 앉아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다들 아무런 표정 없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지만 나 혼자 안절부절 못했다. 그동안 너무나 편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불편한 몸은 그 미안한 마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나는 운전석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에 운전기사가 수동 기어를 넣을 때마다 몸을 스님 쪽으로 바싹 붙여야 했다. 차창에 밀착되어 있는 스님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마땅치 않다. 엉덩이는 점점 마비되어 가고 있다. 5천고지 가까운 고개를 넘고 있었지만 그 힘든 자세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밤에 복용한 다이아목스 때문인지 고산증세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약간의 어지럼증이 느껴져 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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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고지에 가까운 바라라차 라(해발 4890미터) 부근. 도로 양 옆으로 눈 벽이 쌓여 있다. ⓒ 송성영


그렇게 두 시간쯤 더 달렸다. 도로 양 옆으로 쌓여 있는 눈 벽 사이로 달리고 있는 지프에서 내려 차라리 저 눈 덮인 설산을 걷고 싶었다. 불편한 몸을 뒤틀었다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다른 한쪽이 균형을 잃고 고통을 호소해 왔다. 힘든 표정을 지어가며 좀 쉬었다가 가자고 다시 찡찡거렸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앞 만 보고 내달렸고 뒷자리에 앉아 있던 까르마가 다시 뭐라뭐라 말했다.

까르마와 함께 운전기사와 가운데 앉아 있던 어머니와 이웃집 여인이 아까처럼 까르르 웃는다. 분명 나를 흉보는 말일 것이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옴마니 반메훔'을 반복해서 읊조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저들의 비웃음에서 벗어나겠다는 듯 점점 큰 소리로 읊조렸다. 그때서야 웃음소리가 그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까르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카르마, 당신의 이름은 불교에서 말하는 그 까르마 맞습니까?"
"물론이죠."
"당신이 지금 나에게 하는 행동들이 까르마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

내가 다시 반복해서 말하자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까르마의 얼굴이 잔뜩 굵어졌다. 나는 덧붙여 말했다.

"당신들은 내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의 행동을 부처님이 아시면 퍽이나 좋아하겠습니다. "

갑자기 지프 안이 썰렁해졌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반복해서 말했던 내 엉터리 영어를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키득 거리며 줄곧 지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던 운전기사조차 말이 없어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현존하는 붓다라 믿고 있는 달라이 라마를 영접하러 가는 길이었다. 달라이라마는 자비의 화신이라고도 불린다. 그 자비로운 화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낯선 이방인의 고통에 대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놀림감으로 삼고 있었던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있는 것일까.

분노는 나도 아프게 하고 너도 아프게 한다. 가슴이 아프다. 이들의 굳은 표정을 보면서 후회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갈 곳 없는 나를 라다크로 인도해 줄 은인으로 여겨 놓고 이제는 원수처럼 몰아세운 것은 아닌가. 어쩌면 나는 이들의 마음 상태를 함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안했다. 내가 참으면 될 것을 부처님을 앞세워 저들을 협박 한 것 같아 미안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너스레를 떨었다.

"아 이제 살만 하네요. 익숙해지니까 견딜 만 하네요."

까르마가 기분 좋게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당신은 불편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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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가는 길에서 만난 사추(sarchu 해발 4200미터). 여기서부터 버스로 갈아타기로 했다. ⓒ 송성영


그렇게 서로 화 기운을 풀어가며 눈이 벽처럼 쌓여 있는 4천 고지를 넘어 얼마쯤 달려가자 입간판에 사추(sarchu 해발 4200미터)라 표시되어 있는 너른 평원이 나왔다. 비로소 지프가 멈춰 섰다. 지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사추에서 간단한 식사까지 할 수 있었다.

지프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다가 저 만치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젊은 티베트 엄마를 보았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4천고지에서의 가쁜 호흡을 다스려가며 마음자리를 들여다보려는데 자꾸만 젖을 물리고 있는 젊은 엄마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저 젊은 엄마는 간난 아기였을 때의 내 엄마이기도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몇 개월도 채 안 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두부 모판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서야 했던 엄니, 갓 태어난 자식에게 젖을 먹이지 못하고 뚱뚱 부어오르는 젖통을 끌어안고 장바닥에서 좌판을 펼쳐야 했던 엄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눈물을 삼키다가 문득 까르마에게도 나와 비슷한 시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르마의 엄마 또한 힘든 세월을 보냈던 내 엄마처럼 온갖 고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까르마는 그런 엄마를 위해 지프의 가운데 자리를 낯선 이방인에게 끝내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까르마의 효심을 가늠하면서 편한 여행길 한번 모시지 못했던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나는 마누라에게 이혼을 요구 당하고 있는 못난 자식 꼴 보여주기 싫어 구순을 앞둔 엄니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불효자였다.

묵상에 잠겨 있는 내게 스님이 불쑥 다가왔다.

"힘들지요?"
"예 아주 피곤합니다."
"똑 같은 돈을 내고 누구는 편하게 가고 누구는 힘들게 가는 것은 불공평합니다."
"......."

스님은 지프에서 불만을 토로 했던 내 마음에 동조한다는 듯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다. 똑같은 돈을 내고 두 여자는 다리 뻗고 편하게 가는데 왜 우리만 불편하게 가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제는 그런 불만을 접었다고 말해주려다가 못 들은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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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마와 그의 엄마. 버스로 갈아 탈 무렵 지프차 여행길에서 나와 불편하게 얽힌 일들을 기분좋게 풀어냈다. ⓒ 송성영


저만치에서 가족들과 앉아 있던 깨샹이 내게 다가왔다. 엄마가 식사를 같이 하자며 나를 모셔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라면 종류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나서 담배를 피워 무는데 버스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혹시나 싶어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라다크 가는 버스 입니까?"
"그렇습니다. 레까지 갑니다."
"내가 이 버스를 탈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요."

요금도 크게 비싸지 않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멀다. 마날리에서 부터 불편한 자세로 열 시간 이상을 달려 왔다. 우리의 목적지인 레 까지 앞으로 열 두 시간은 더 가야 한다. 저 버스를 이용한다면 더 이상 서로가 얼굴 붉히는 불편한 동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까르마에게 버스를 타고 가겠노라 말했더니 자신의 엄마가 내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가운데 자리에 함께 앉아 가도 된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 서로 좋을 거 같습니다."
"교통비를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데..."
"버스 요금이 그리 비싸지 않더군요. 지프 요금은 환불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고요."

까르마가 교통비 때문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상관없다며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가 지프에서 내리면 다들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불만 폭발 일보직전인 스님이며 말없이 침묵 수행자처럼 뒷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과 깨샹 또한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내내 투덜거렸으니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 가족에게 무례를 범했으면 용서하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내가 미안했습니다. 당신의 힘든 상태를 잘 이해 못했습니다. 부디 몸 잘 챙겨서 오십시오. 우리는 다시 칼라차크라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라다크 깊숙한 곳으로 가려 합니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지요."
"아쉽네요."

배낭을 챙기고 있는 나를 영문도 모른 채 멀뚱멀뚱 지켜보고만 있는 깨샹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힘들었지만 니 덕분에 즐거웠다."
"여기서 헤어지나요?"
"그래, 건강하게 잘 지내라."

나는 녀석을 껴안고 고맙다고 말하다가 문득 북인도 문시아리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녀석들은 내게 힌두어로 친구, '도스터' 라는 말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나에게 스스럼없이 '도스터'라 불렀다.

"깨샹 이제 너와 나는 도스터야. 알지? 도스터, 프랜드."

나의 어린 친구 깨샹을 뒤로 하고 버스를 타러 가는 도중에 티베트 사람들이 널리 애송하고 있는 대승불교문학의 걸작,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오네.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이타심에서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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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로 떠나는 수행자. 내가 사진기를 들이대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자비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 송성영


#라다크 가는 길 #히말라야 #티베트 청년 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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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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