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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아니라던 <토일렛>, 내용은 더 충격적

[프리뷰] '상영 반대' 해시태그 번진 영화 <토일렛>, 직접 봤더니

17.08.16 11:19최종업데이트17.08.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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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일렛> 시놉시스 ⓒ 스토리제이


장면 1. 두 남성이 술자리 테이블에 마주 앉아 소주를 기울인다. "'서른 즈음에'가 내 18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두 사람은 "'남자는 서른부터'라는데 파이팅 하자", "안 본 사이에 사나이 다 됐네"라는 말로 서로를 격려한다.

"학교 휘저을 땐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는데, 밖에 나오니까 내가 왕따더라고"라는 말이 둘 중 한 남성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과거 학창시절 괴롭힘의 가해자와 피해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이제 모든 일이 지나간 추억이라는 듯이 웃으며 술을 마신다.

장면 2. '세 번째, 네 번째 만에 겨우 붙었다'(아마 어렵게 취업했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는 말로 술자리에서 첫 잔을 비운 두 여성. 연거푸 술을 마시는 두 사람은 "너 시집만 잘 가면 된다며", "속물이면 어떠냐"라면서 장래를 걱정하는 말을 주고받는다.

직장생활에 지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 '해외항공사에 취업했던 지인은 아랍에미리트 왕족 만나서 결혼했더라'며 비슷한 경로로 이직하는 게 어떠냐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물론 이런 가벼운 대화로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두 사람의 짧은 웃음 뒤에는 침묵이 이어진다.

위에 묘사된 상황은 최근 논란이 된 영화 <토일렛>의 첫 장면을 거칠게 압축해서 설명한 것이다. 지난 10일, 영화 <토일렛>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제작됐다고 알려지고, 이어 영화의 시놉시스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진 바 있다(관련 기사 : '강남역 살인사건'이 스릴러? 상영 반대 직면한 <토일렛>).

결국 다음날인 11일에 홍보사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날 제작사 측이 해명한 것과 같이 '강남역 살인사건이 모티프였다는 문구는 홍보사 쪽에서 작성한 것이며, 감독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특정 사건을 분석해 재조명한 것이 아닌, 묻지 마 살인, 층간 소음 살인 사건 등 일련의 충동적, 우발적 범죄들에 대해서 사회적 경각심을 주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한 홍보사 측은 "본편의 공개를 통한 객관적인 평가가 시급하다 판단" 된다며, 이례적으로 개봉하기 전에 직접 언론에 영화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영화가 개봉 후 관객에 공개되면 '불필요한 오해'로 인한 '논란'일 뿐이었다고 밝혀질까? 앞서 소개한 영화 초반의 인물 설정을 보면 제작진 측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것 같다.

자꾸 덧붙는 남성 캐릭터의 '분노 이유'

앞서 언급한 네 사람, 두 테이블에 앉은 인물 간의 첫 대면은 '두 남성 중 한 명이 다른 테이블의 여성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성들에 '작업'을 걸다가 실패한 남성들은 분노한다. '쪽 팔린다'며 화를 내던 이들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하필 먼저 담배를 피우러 나간 두 여성이 자신들을 험담하는 걸 엿듣고 만다.

"변태 같이 생겼어."
"변태를 넘어 강간범같이 생겼더구만."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남성 무리는 여성을 공중화장실에서 덮쳐 칼로 위협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공개된 '시놉시스'에 나온 그대로다. '잘 나가던 과거를 추억하며 술을 마시는 남성'과 '취업·결혼 걱정하며 술을 마시는 여성' 같은 인물 설정이 얼마나 단순하고 가벼운지는 관객이 판단하도록 맡기자.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니까.

강남역 여자화장실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고 전면에 내세운 영화 <토일렛>의 메인 포스터. ⓒ 스토리제이


칼을 구해서 자신을 욕한 여성의 뒤를 밟는 남성들. 여기까지 묘사된 여성 캐릭터는 매우 단편적이다. 두 여성은 가볍게 묘사된 이후에도 별다른 성격이 추가되지 않는다. 흉기로 협박당해 스타킹으로 손을 묶여 화장실에 '갇힌' 뒤에는 "살려주세요"라는 말과 비명 외에는 대사도 많이 하지 않는다. 마치 '당해도 싸다'는 평가를 끌어내려는 듯이 남성들의 분노를 '유발'한 장면 이후에는 무기력한 희생자 수준에서 머무는 셈이다.

반면 남성 캐릭터는 대면 후에도 화장실에서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 무대인 화장실에서 "기분이 영 X 같거든"이라며 저항이 불가능한 여성의 뺨을 때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년'으로 끝나는 욕을 마구 내뱉는다.

두 명의 남성은 강간을 시도하기 직전에 "나중에 신고할지 모르잖아, 보험 들어놔야지"라며 여성의 주민등록증과 얼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이들은 '얌전하게 따르면 일찍 끝내주겠다'라거나 '말을 잘 들으면 죽이지는 않겠다'는 전형적인 범죄 가해자의 언행을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한다.

"니가 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그러니까 니가 이해해라. 대신 저세상 가서 원망해도 화 안 낼게."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 외에 별다른 변명의 기회가 없던 여성 캐릭터에 비해, 남성 캐릭터는 '너희가 먼저 우릴 욕했다'라거나 '자꾸 반항한다'면서 분노의 이유를 덧붙인다. 급기야 살해 의도를 드러내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맞지?'라며 피해자에게 살해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대사까지 한다. '완전범죄를 꿈꾼 그곳'이라는 포스터의 문구도 가해자의 입장에 맞춘 것 같았는데, 이 정도면 영화의 줄거리와 대사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보도에 관해 비판이 쏟아졌던 걸 돌이켜 보자.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의 제목으로 <"여자가 무시" 목사 꿈꾸던 신학생 묻지마 살인>이 붙은 것에 어느 누리꾼은 "왜 언론이 가해자에 이입하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도 "그대도 꿈이 있던 사람이었는데"라고 피해 여성을 향한 추모글이 붙은 바 있다(관련 기사 : 목사 꿈꾸던 신학생? 피해자에게도 꿈이 있었다).

페미니스트 영화·영상인 모임 '찍는 페미'는 지난 10일 오후 페이스북에 "<토일렛> 제작진은 영화 홍보문구가 강남역 살인사건의 여성혐오적 맥락을 부정하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토일렛>을 비판하는 이유도 지난해 강남역 사건 보도를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일단 <토일렛>과 강남역 살인사건의 연관성 측면을 배제하더라도, 가해자에 이입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영화 시놉시스와 연출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과연 '홍보사의 실수'라는 말로 끝날 문제일까

영화 <토일렛>의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상훈씨의 인스타그램 게시글. 영화 <토일렛>에 관한 논란이 커지자 "강남역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이며 "그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 이상훈


SNS를 통해 논란이 퍼지던 당시, 영화 <토일렛>의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상훈씨는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해명했다. 이씨는 게시글에서 <토일렛>에 관해 "강남역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이며 "그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해명을 듣고 기자가 <토일렛>을 직접 봤지만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범죄에 대한 고찰'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감독과 홍보사의 설명처럼 <토일렛>이 실제 벌어졌던 사건의 피해자를 모욕할 의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연출이 너무 안일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살인자의 욕설과 분노 표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도 그렇고, 등장인물과 사건의 묘사가 너무 단순하다는 점을 봐도 '범죄자는 결국 벌을 받는다'는 메시지 전달은 다분히 실패에 가까워 보인다.

내용상 드러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떠나서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만 놓고 보기에도 이상한 것은 마찬가지다. 보통 스릴러 영화에서 관객이 이입하게 만드는 대상은 살인마나 악령을 피해 '달아나는 인물들'인데, <토일렛>은 줄거리의 많은 부분이 '살인자'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남성 주인공이 어떻게 하면 '여성에게 모욕당한 분노를 풀고 완전범죄를 만들지' 고민하는 지점이 다분히 그렇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사이코패스 살인자로 묘사되는 주인공이 왜 굳이 이런 대사까지 외쳐야 했을까.

"오늘 완전히 피 맛보는 날이네!"

어째서 <토일렛>의 장르가 '다큐'가 아니라 '스릴러'였는지,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옳았는지 애써 구구절절 설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난 2006년부터 영화계에 몸담은 배우이자 두 번째로 영화 감독을 맡은 사람이라면, 더 섬세하게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줄거리와 구성의 영화가,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개봉된다면 어떤 파장을 불러올 지 제작과 홍보의 과정 이전에 먼저 따져봤어야 할 일이다. 작품과 사건의 연관성과 별개로 말이다.

보도자료에서의 언급이 '실수'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영화의 '핵심 요소'를 짚어 알리는 홍보사가 '강남역 살인사건'을 떠올려 문구를 작성할 정도였다면, <토일렛>을 본 관객도 같은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고 여겨야 맞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이는 '#토일렛_상영_반대' 해시태그와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번지는 게 그저 '잘못된 홍보의 문제 때문이라며 쉽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유추할 지점이기도 하다.

살인사건과 몰카 등 범죄의 영역에 있는 소재를 영화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토일렛> 측이 언론에 공개한 버전을 그대로 상영한다면 아마 '반면교사'가 될 것 같다. 아니, 영화 개봉과 반대 입장을 둘러싼 논란이 차라리 교훈을 주는 차원의 '사건'으로 마무리되길 바란다. '여성혐오가 콘텐츠가 되는 사회'라는 누리꾼의 조롱이 현실적이라 느낄 만큼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제작돼 쏟아지는 영상은 이미 한국에서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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