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리퀘스트> 필요없는 세상, '문재인 케어'로 가능할까

[주장]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 보편적 제도로 잘 설계해야

등록 2017.08.16 17:26수정 2017.08.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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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2000원입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KBS에서 방영되었던 <사랑의 리퀘스트>의 캐치프레이즈다. 2001년 2월 1일 첫 방송 이후 2014년 12월 27일 종영하기까지 13년간 779부작으로 진행되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그동안 수천 명의 소년소녀가장, 결식아동, 장애인, 희귀질환이나 백혈병 등 난치병 환자들에게 생활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지원한 대표적인 공익 모금방송이었다.

사랑의 리퀘스트 우리나라 대표 공익 모금방송 ‘사랑의 리퀘스트' ⓒ KBS 홈페이지


나의 아내는 2001년 11월 말 만성골수성백혈병 가속기 진단을 받았다. 때마침 치료효과가 뛰어난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이 우리나라에서도 시판되어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평생 먹어야 할 '글리벡'의 한 달 약값은 450만 원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액에 부담이 컸지만 아내의 질병 악화로 인도주의 차원에서 시행된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내는 10개월 동안 무상으로 '글리벡'을 복용할 수 있었다. 2002년 10월에는 조혈모세포(골수)이식까지 받아서 현재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아내의 투병을 지켜보며 변화된 일상 가운데 하나는 매주 토요일 오후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서 전화 한통으로 2000원을 기부할 수 있는 060-700-0600 ARS 전화를 누르는 것이었다.

한때 저소득층 환자들의 생명줄이었던 <사랑의 리퀘스트>


아내의 백혈병 진단과 글리벡 치료는 내가 2005년 11월부터 한국백혈병환우회에서 상근자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항암치료나 조혈모세포(골수)이식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절망하고 있는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들과 상담하고,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2000만 원, 출연하지 않고 자막만 나오면 1000만 원을 치료비로 지원해 주는 <사랑의 리퀘스트>와 연결시켜 주는 것이었다.

백혈병 환자의 사연을 구구절절 정리해 <사랑의 리퀘스트> 작가에게 보내고 간곡히 부탁했는데도 결국 선정이 되지 않아 그 결과를 해당 환자에게 전달할 때의 그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2000만 원의 치료비 지원을 받아야 은행 대출 받고, 집 팔아 월세로 옮겨 당시 백혈병 치료비인 5000만 원에서 1억 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0만 원의 치료비 지원을 못 받으면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한 백혈병 환자들이 하나둘씩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ARS 전화를 걸어 2000원씩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다보니 출연자의 가슴 아픈 사연에 초점을 두고 방송되는 경향이 있었다. 치료가 끝난 백혈병 환자가 나중에 방송을 본 후 자존감에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지인으로부터 불편한 동정이나 거부감을 경험하면서 <사랑의 리퀘스트> 출연 자체를 후회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때부터 백혈병 환자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고,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 출연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도 백혈병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안타까운 측면만 강조하기 보다는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 달라고 방송 작가에게 부탁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 1회 평균 모금액인 1억 원을 연간으로 계산한 금액인 52억 원의 재원만 있으면 <사랑의 리퀘스트>는 종영되어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리퀘스트>가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비를 지원해 준 대표적인 공익 모금방송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간 52억 원의 재원만 있으면 환자들이 가슴 아픈 사연을 공개하지 않고도 생활비, 교육비, 의료비 지원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비급여제도 도입과 3대 비급여 해소가 핵심인 '문재인 케어'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한 대학병원을 찾아 환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선 공약이었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예비급여제도 도입을 통해 미용·성형을 제외한 일체의 의학적 비급여를 전면적으로 건강보험 급여화하고, 의료비 폭탄의 상징이었던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를 전면 폐지하거나 단계적으로 건강보험 급여화하는 방식으로 올해부터 2022년까지 30.6조 원의 재정을 투입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일명, '문재인 케어'다.

‘문재인 케어 지난 8월 9일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일명 ‘문재인 케어’)을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 청와대 홈페이지


그동안 의료기관이 가격을 마음대로 정해도 통제할 방법이 없었던 의학적 비급여(미용·성형 제외)를 예비급여에 포함시켜 우선 가격 관리를 하고, 이와 함께 평가를 통해 신속하게 일반급여로 전환하는 예비급여제도 도입은 '문재인 케어'의 가장 큰 차별화다. 역대 정부들은 비급여 관리는 소홀히 하면서 건강보험 재정 투입에만 전념하다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의료비 폭탄의 상징이 되었던 3대 비급여 중에서 선택진료비는 전면 폐지되고, 상급병실료는 2~3인실과 중증 호흡기질환자·출산 직후 산모 등의 일부 의학적 입원의 경우 1인실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제공 병상도 10만 개로 대폭 확대해 간병비 부담도 줄어든다.

이렇게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를 폐지하거나 건강보험 급여화하는 적극적 조치가 취해지면 환자들은 진료비 영수증 확인만으로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혜택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의 한계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사항인 4대 중증질환 국가책임제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2013년 8월부터 추진된 한시적 제도였다.

한시적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2013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박근혜 정부의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한시적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의 가장 큰 효과는 재난적 의료비를 지원받은 해당 중증질환 환자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2014년에는 84.6%, 2015년에는 85.7%, 2016년에는 86.7%로 대폭 상승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연간 약 600억 원의 적은 재원으로 운영된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이 지원 받은 해당 중증질환 환자에게는 의료비 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한 달 약값이 천만 원이 넘는 고가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가 줄줄이 출시되고 있다. 일부 신의료기술은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 못지 않게 고가다. 최근 이러한 고가의 비급여 약제나 신의료기술로 치료받는 중증질환 환자들의 불만이나 민원이 그나마 줄어든 것은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에서 2000만 원까지 비급여 약제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한시적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대상 질환이 암, 희귀난치성질환,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중증화상 등과 같이 일부 중증질환으로 제한되었고, 일생에 한 번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지원 금액도 2000만 원 이하로 고정되어 있다. 재원도 약 600억 원으로 적어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설계 중인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

이번 '문재인 케어'에서는 그동안 중증질환 환자 중심으로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대상 질환을 일부 중증질환으로 제한하지 않고 전체 질환으로 확대하고, 소득하위 50%까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 된 지원을 한다.

지원 횟수도 평생 1회가 아닌 재난적 의료비 부담이 생기는 매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항암제 등 고가 약제의 경우 최대 2000만 원인 지원금액을 상향조정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예산도 매년 2000억 원 이상이 되도록 대폭 증액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문재인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를 박근혜 정부의 한시적 제한적 제도가 아닌 보편적 제도로 잘 설계하면 '문재인 케어'의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1차 목표치 70%)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가계 파탄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는 보완장치가 될 것이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2014년 12월 27일 종영되었다. 이때는 박근혜 정부의 한시적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이 추진된 지 1년 4개월이 경과한 시점이다. 치료비 지원사업을 하는 민간복지단체 중에서 1회 치료비로 2000만 원의 고액을 지원하는 곳은 <사랑의 리퀘스트> 이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2013년 8월 이후 정부의 한시적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통해 <사랑의 리퀘스트>와 동일한 지원액인 2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를 잘 설계해 환자들이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방송 출연이나 민간복지단체의 도움 없이도 병원비 걱정 없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안기종 기자는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문재인 케어 #재난적 의료비 #사랑의 리퀘스트 #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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