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뭔 짓을 한 거지?' 노모 요양원 모신 자식들 이야기

[서평] <어머니가 트시다>

등록 2017.08.17 14:59수정 2017.08.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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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트시다> 책표지. ⓒ 컬처플러스

안타깝게도 치매 발병률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치매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9년 약 21만 7천 명에서 2013년 약 40만 5천 명. 4년 만에 87%가 증가.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 인구는 73만 4천 명. 2025년에는 1백만 명, 2043년에는 2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양가 부모님 모두 팔순입니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는 구순을 앞두고 있습니다. 노인들 문제나 건강한 노후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요. 노인들에게 치매는 암보다 두려운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 모두 제발 치매로 삶을 마무리하는 불행하고 두려운 일은 없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트시다>(컬처플러스 펴냄)는 저처럼 연세 많은 어르신을 둔 분들이나, 특히 가족 누군가에게 찾아온 치매로 고생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어머니의 현재 상태를 두고 사람들은 '치매에 걸렸다'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트셨다'라는 용어를 일부러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치매에 걸렸다'라는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용어를 만든 이유는 아직 정신이 멀쩡할 때가 대부분이고 어쩌다가 혼돈이나 망각 상태가 일어날 뿐인데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치매에 걸렸다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은 이제까지 자식들을 제 몸보다 더 아끼며 키워내느라 고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치매 초기 상태에서는 정상인들과 별다른 차이 없이 사고와 대화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에 대해 치매라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인격 존중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저자는 일반인들이 치매 징조가 일어날 때부터 치매가 본격화되기 전까지의 상태를 '트시다'라고 명명했다. 즉, '치매에 걸렸다'가 아닌 '트셨다'라는 개념을 갖고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바라보면 자칫 치매라는 판단으로 인해 잃어버릴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고스란히 되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일러두기'에서.

책 속 어머니는 7남매를 키워내신 분입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들과 함께 살아오셨는데, 그 어머니에게서 어느 날부터 치매 증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치매라고 하지만 무심하면 쉽게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미해 90% 정상에 가까운, 그러나 치료를 시작해야만 하는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뵈러 간 몇몇 자식들은 모인 김에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좋은 곳이라고 소개받은 한 요양원에 가게 됩니다. 그야말로 소개해준 사람 말처럼 정말 괜찮은 곳인가 가보기나 하자. 알아나 두자 나들이 삼아 간 것인데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 길로 그만 스스로 요양원에 입원하고 맙니다.  


어머니를 얼떨결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자식들은 안도의 숨을 쉬게 됩니다. 소개받은 대로 꽤 괜찮아 보이는 요양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뭣보다 하루라도 빨리 치매를 늦추는 치료를 해야만 하는데 평생 집밖에 모르시던 어머니가 요양원을 싫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하던 터라 자식들은 더욱더 어머니의 순조로운 요양원 입원이 다행이다 안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안도는 아주 잠깐. 자식들은 '우리가 지금 뭔 짓을 한 것인가' 자책하고 맙니다. 얼떨결에, 어머니 스스로 요양원을 더 마음에 들어서 입원하시게 된 것이지만 그날은 하필 어버이날 전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자식들은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가운데 두고 더욱 잦은 통화를 하게 되고, 더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게 됩니다. 3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환갑이 넘었거나, 일흔을 바라보는 누나들과 형들에게 평소 휴대폰으로 연락을 자주 하곤 했던 저자는 기동력이 떨어지는 형제들과 어머니와의 연락병 노릇을 자청합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입원한 것은 2015년 5월 7일. 그로부터 올해 6월 17일까지. 메시지를 통해 어머니의 상태를 서로 공유하며 어머니의 상태를 이해하거나, 그리움과 애잔함을 달래기도 합니다. 두 해 동안 그처럼 나눈 메시지와 전화통화 내용 등을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대개 3개월이면 요양원에 적응한다는데 어머니는 6개월이 되어서야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적응해 가는 동안 살던 곳이나 친척 집에 가고 싶어 조급해하거나, 요양원을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사정이 되지 못해 자주 가지 못하는 자식들을 먼저 헤아려 위로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먹고 싶은 것에 집착해 채근하기도 하고, 착각과 혼란을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식들은 어머니를 위한 최선이라 믿고 치료하는 지금의 방법이 사실은 어머니께 좋지 않은 것이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기도 하는 등, 치매기 시작된 노모의 요양원에서의 일상과 자식들의 애잔함을 잘 나타내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수님들과 누나들이 쌓인 문자들을 보고는 한권의 책으로 엮어볼 것을 권유하셨다. 처음엔 황당하게 들렸지만 그것을 계기로 지난날 우리가 주고받았던 문자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내용은 특별할 것 없이 빈약했지만 지나간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도 책을 낸다는 것을 영 쑥스러워하니, 가족 모두가 자신을 가지라며 용기를 주었다.(…)책을 낸다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로 공유했던 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읽을거리로 만들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그래 시작해보자' 우리들의 이야긴데 글솜씨가 좀 빠지면 어떠랴. 짠하고, 안타깝고, 애타고, 때로는 뭉클했던 우리들의 지난날을 책으로 엮어 어머님께 드리자. 어머님께서는 자식의 부족함도 채워 가시며, 자식들과의  이야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시리라'-'프롤로그'에서.

사실, '큰누나 외 9명의 가족들이 휴대폰 문자로 주고받은 이야기'란 부제에 끌렸는데, 한 가족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지레짐작에 읽을까를 망성이기도 했습니다. 지레짐작은 어느 정도 맞았고요.

그럼에도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치매에 걸렸거나,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는 당사자의 심정이나 상태를 날것 가까이 담고 있는 책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치매를 이해하고 이겨내는데 도움이 많을 것이니까요.

저자는 수의사이자 축산전문가라고 합니다. 저자의 전문지식이나 사견이 들어간 닭 이야기 등 축산 관련 이야기들이나 날뛰기와 같은 게임이야기 등을 실어 읽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었는데요. 통화가 계속되면서 어머니께 들려드릴 뭔가 재미있는 것을, 이왕이면 어머니가 관심 둘 뭔가를 들려드리고 싶어 이야기거리를 고민한 끝에 들려드린 것들이라고 하네요.

형수들로부터 그동안 주고받은 메시지를 책으로 엮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음에도 미루다가 회상의 책이 되기 전에 가급 빨리 책으로 엮자 마음먹게 한 것도 '어머니께 읽을거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라고 하고요. '우리와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하고 애태우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도 책을 엮었다'고도 하네요.

그래서 이미 주고받은 메시지를 최대한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싣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요. 때문일까요. 소소해도 너무 소소해 보이는 부분들이 종종 보였는데, 책의 의도 때문인지 도리어 '진정'으로 와 닿았습니다.

책의 배경이기도 한 요양원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요양원의 특성상 당사자나 종사자가 아니면 그곳에서의 생활이나 당사자의 심정을 속속들이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치매라고 하나 책 속 어머니는 정상인에 가깝습니다. 그 어머니가 전하는 치매와 요양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노인들의 삶.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는 노모의 심정을 이처럼 날 것 그대로 전하는 책이 그간 있었던가요. 그래서 더욱 권하는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어머니가 트시다>(나병승) | 컬처플러스 | 2017년 7월 ㅣ16,000원.

어머니가 트시다

나병승 지음,
컬처플러스, 2017


#치매 #요양원 #노후(노년) #나병승 #컬처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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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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