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30분 공부하면 영어 달인" 이 말에 속지 마라

[서평]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와 <외국어 잘하는 법>을 읽고

등록 2017.08.17 15:24수정 2017.08.17 15:24
0
원고료로 응원
"하루 30분만 하면 영어 실력 완성."

인터넷만 켜면 이런 류의 영어 학습 광고창이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타난다. 외국어 공부에 애당초 '완성' 혹은 '정복'이라는 게 가능할까 싶어 외면한다. 그러고 외출을 해서 전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서면 "10분만 공부해도 영어 끝"이라는 광고가 또 눈앞에 보인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출퇴근 시간을 짬짬이 이용해 공부를 하라는 뜻일 게다. 우리는 왜 이렇게 시간을 나노 단위로 나눠 가면서까지 영어를 정복하려고 안달하는 걸까? 일반인들도 영어를 잘하고 싶은 열망이 뜨거운데, 직업이 번역가인 나는 더 말할 필요 없다.


나는 15년이 넘도록 영상번역을 하며 매일같이 외국어 속에 파묻혀 살았다. 번역을 하면 할수록 외국어 정복은커녕 내 미천한 외국어 실력을 깨닫고 매일매일 겸손해진다. 외국어는 정복할 수 없으니, 그저 매 순간 새로운 걸 하나씩 알아가는 것 자체에 만족하자 위안을 삼는다.

그래도 "만에 하나 혹시라도" 좀 더 쉽고 빠르게 외국어 실력을 높일 방법이 없을까 계속 찾아다녔다. 동료 번역가들에게도 공부 비법을 물어보고, 외국어 공부법 관련서도 이것저것 읽어 보았다. 누가 나에게 외국어 공부법을 묻는다면 바로 수십 가지 방법을 알려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제는 외국어 공부 학습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김민식 저)와 <외국어 잘하는 법>(지노 에이이치 저, 김수희 옮김)은 제목만 봐도 목적이 너무 선명해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취미로 하는 영어 공부'는 이렇게

시트콤 <뉴논스톱>을 연출한 PD로 유명한 김민식이 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제목이 전부다. 제목 그대로 영어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면 된다는 거다. 저자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짬짬이 공부'를 강조한다. 20분을 넘어가면 어차피 효율이 떨어지니 10분에서 20분씩만 공부하라고 한다. 자투리 시간만 모아도 하루에 1시간, 석 달이면 100시간이니 그 시간에 책 한 권을 외울 수 있다는 거다.


a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표지 ⓒ 위즈덤하우스


그렇게만 하면 영어 실력 기초가 탄탄해지고 성취감과 함께 자존감까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인생이 즐거워진단다. 정말 이렇다면, 영어책 한 권 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저자인 김민식도 책을 읽고 실천하지 않을 이들이 100명 중 97명은 될 거라고 에필로그에서 말한다. 이 책에서 알려 주는 방법이 아주 획기적이거나 새롭지는 않다. 관건은 실천이다. 어떠한 공부법이든 매일 꾸준히 지속해야 효과가 있다. 그런 면에서 앞서 소개한 '짬짬이 공부'가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취미로 하는 영어 공부'라 이 방법이 어느 정도 유용하다.

하지만 번역가처럼 좀 더 높은 수준의 외국어 실력을 요구하는 전문가가 되려면, 짬짬이 공부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번역가를 위한 외국어 공부법 단서는 <외국어 잘하는 법>에서 찾을 수 있다.

번역가 꿈꾼다면... 매일 8시간 공부도 부족하다

이와나미 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 <외국어 잘하는 법>은 외국어 습득에는 요령이 있으니 그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한다. 저자인 지노 에이이치는 어학을 질색하며 외국어 콤플렉스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영어, 독일어, 체코, 불어 등 몇 개 국어를 통달했다.

이 책 역시 획기적인 공부법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공부하기 전에 목적부터 정하라고 강조하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무슨 언어를 어떤 목적으로 배울지를 분명히 정하고 나서 공부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중략) 필요도 없는 언어를 단순히 교양을 위해서 서너 가지나 배우는 것은 인생에서 커다란 낭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될 언어를 쓰거나 말하기까지 하려고 하는 것도 아깝고 쓸데없는 노력이다. (28~29쪽)"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읽기-쓰기-말하기-듣기' 이 네 가지를 다 잘해야 한다고 집착하기 쉽다. 이게 가장 이상적인 목표지만, 자신이 왜 외국어를 공부하려는 건지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여행을 위한 건지, 독해를 위한 건지, 번역가가 되기 위한 건지 말이다. 목적에 따라 공부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가서 국제 정치를 토론할 게 아니니, 불필요하게 어려운 시사 용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거다.

"어떤 외국어를 습득하고자 결심하고 구체적으로 학습을 시작했을 때 우선 반년 정도는 미친 듯이 몰두할 필요가 있다. (중략) 그 다음에는 정기적으로 일정한 시간을 내서 공부하면 된다. (37쪽)"

a

<외국어 잘하는 법> 표지. 지노 에이이치 지음, 김수희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함혜숙


위 대목은 번역가가 되기 위한 외국어 공부법에 적용할 만한다. 처음부터 매일 30분씩만 공부하면 일상 회화 습득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번역가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이 책에서는 '어휘 공부'를 강조하는데, 문법을 인간의 뼈와 신경에, 어휘를 피와 살에 비유했다. 문법만 공부하고 어휘 공부를 하지 않는 건, 피와 살이 없는 해골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문법과 어휘 공부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우리는 종종 한쪽으로 치우친다. 때로는 문법에만 치중해서 문제, 때로는 문법 공부하지 말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해서 탈이다.

그럼 공부 목적에 따라 암기해야 할 어휘량은 어떻게 될까? 본문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으니 각자 상황에 맞춰 판단해 보기 좋다.

"소설이나 시를 즐기고 회화도 가능하며 해당 언어로 편지나 논문도 작성할 수 있으려면 최조 4,000 단어에서 5,000 단어가 필요하며, 3년에서 4년의 학습 시간을 요한다. 5,000 단어를 넘어 6,000 단어, 7,000 단어, 8,000... 단어로 늘리는 것은 그 분야의 프로 이외에는 필요치 않다. (49쪽)"

단순히 취미로 영어 공부를 하겠다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서 제시한 짬짬이 공부법대로 매일 10분~20분씩만 부담없이 공부하면 될 것이다. 반면에, 번역가를 꿈꾸는 이라면 "매일 30분만 하면 영어 달인이 된다"라는 달콤한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매일 8시간씩 공부해도 부족하다"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다.

"'외국어는 좋아하지만 단어를 잘 못 외우겠어'라는 사람은 자신이 근면하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45쪽)"

"작가가 되고 싶은데 글쓰기는 싫어요.",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단어 외우는 건 싫어요." 이런 핑계는 미뤄 두고, 일단 무조건 닥치는 대로 실천을 해 보자. 우선 나부터.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


#영어책한권외워봤니 #외국어잘하는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번역하며 글 쓰며 세상과 소통하는 영상번역가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김종인 "윤 대통령 경제에 문외한...민생 파탄나면 정권은 붕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