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기념일, 보수세력은 왜 이리 무리할까

미국 건국기념일이 주는 교훈

등록 2017.08.16 11:07수정 2017.08.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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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며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건국일을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불거졌던 '건국절(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규정)'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 연합뉴스


미국 건국기념일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1776년 7월 4일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그 날이 무슨 날이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의외로 적은 것 같습니다.

이 날은 미국 북동부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날이며,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는 명칭이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날입니다. 그 성격만 놓고 보자면 3.1 독립선언문이 선포되어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한 것과 비슷하죠.

'행복추구권'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미국 헌법의 기초를 닦기 위한 필라델피아 제헌회의가 소집된 것은 이보다 한참 뒤인 1787년이며, 여기서 제정된 미국 헌법에 따라 초대 선거가 실시된 것이 1788년, 그리고 그 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취임하여 정부를 구성한 것이 1789년입니다.

제가 이와 같은 미국의 역사를 재론하는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건국기념일 논란에 대해 다소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보수 세력이 주장하듯이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이 되는 것이 맞는다면 미국의 건국기념일 역시 1788년 혹은 1789년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에 맞서 미국 대표들이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이야말로 실질적으로 건국이 시작된 날이라는 '정체성'(Identity)과 '상징성'(Symbolism)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거지요. 왜냐하면 건국은 의지와 정체성이 중요한 것이지 기계적인 절차와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건국하겠다는 의지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과 상징성을 처음 표방한 때가 언제일까요? 이것은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너무나 분명한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3.1절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3일이지요. 3.1운동에서 시작하여 임시정부 수립으로 완성된 것이 바로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라고 보는 것이 맞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니, 대한민국 헌법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겠다고 했으면, 당연히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가 임시정부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연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보수 세력의 현주소입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헌법도 얼마든지 외면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비상식의 극치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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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은 15일 당사 브리핑에서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며 “국가라는 게 성립하려면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듯 국민, 영토, 주권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에서 1948년 건국은 자명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 남소연


지금 보수 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기념일' 제정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심각한 역사적 퇴행입니다. 우리 스스로 일제의 폭압에 굴하지 않고 독립선언문을 선포했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며 높은 기개와 자부심을 대내외에 과시했다가, 느닷없이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덮으면서 스스로 일제 식민지 지배를 기정사실화하며 무려 30년 가까이 지난 1948년으로 우리의 자주성을 퇴보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요? 건국의 공로를 특정인물과 세력의 것으로 독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1948년을 건국기념일로 제정하게 되면 이승만 이전의 모든 독립운동과 건국추진 활동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삭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공로를 이승만과 박정희 오직 두 사람이 사이좋게 나눠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김구, 김원봉, 김규식, 여운형 등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공로를 가로채어 온전히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죠. 정말로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그토록 역사 교과서 개정 문제에 집착했던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보수 세력은 신 군국주의를 표방하는 아베 총리에 대해 역사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우리 스스로의 자주적 역사를 퇴행시키면서까지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일본 극우세력과 무슨 본질적 차이가 있습니까?

1,000만 관중을 돌파한 영화 '암살'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잊혀지겠죠?"라고 말한 약산 김원봉의 독백, 그리고 "3000불, 우리를 잊으면 안 돼"라고 했던 무명 투사의 간청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들의 자조섞인 말들이 귓가에 맴돌면서 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 당당하지 못할까?

광복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될 수 없듯이, 건국도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두운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따사로운 한 줄기 빛을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만났듯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 또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수고해서 이룬 것이지요. 그래서 광복에는 우파도 좌파도 없고, 건국에도 우파와 좌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진우 기자는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입니다. 이 글은 이진우 기자 페북에도 실렸습니다.
#건국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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