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 우리는 남이다

광복절에 생각하는 친일, 부역의 청산

등록 2017.08.17 10:52수정 2017.08.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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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포커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격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언론포커스'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김동민(단국대 외래교수),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평호(단국대 교수),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박태순(민언련 정책위원), 신태섭(동의대 교수),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이용성(한서대 교수),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이정환(미디어오늘 대표),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연우(세명대 교수),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간디와 영국인 판사

1922년 3월 18일, 간디는 영국제국에 맞서 비협조운동을 선동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간디는 유죄를 인정한다면서 브룸필드 판사에게 인도에 적용하고 있는 영국의 법 체제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법정최고형을 내려달라고 말한다. 브룸필드는 간디에게 자신이 재판한 어떤 사람과도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며, 징역 6년을 선고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감형이 된다면, 자신보다 더 기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간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위대한 간디도 간디지만 영국 판사인 브룸필드가 기억에 남았다.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적인 판사. 제국이지만 여러 왕의 목을 치면서 쟁취한 시민주권과 제대로 된 시스템의 무게를 느꼈다.

친일과 부역자,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광복절이다. 1945년부터 72년이 흘렀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친일파의 후손과 부역자의 자식들이 대를 이어 영화를 누리고 있다. 그 추악한 부를 유지하고자 하는 악의 고리는 끈끈하다. 새로운 부역자들이 그들의 세계에 끼어들기 위해 아부하고 있다. 더러운 민낯이 공개되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광복 후 72년을 버텨왔듯이 또 버텨낼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의 연대는 뿌리가 깊다. 국가정보원의 댓글부대가 3천5백 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삼성 미래전략실의 장충기에게 보낸 낯 뜨거운 구걸의 문자가 드러나도, MBC 카메라기자들에게 등급을 매긴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어도, 그들은 아직 뻔뻔하다. 문재인 정부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국정원, 사법부, 검찰, 경찰, 군대, 언론 모두 개혁의 대상이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다. 모두 나라의 중심을 잡아야 할 조직인데 개혁의 대상이다. 광복 72년인데, 정부를 세운 지 72년이나 되었는데, 개혁이 필요하다. 식민지로 살아온 시간보다 두 배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진정한 광복은 오지 않았다. 반민특위의 좌절이 가슴 아픈 광복절이다.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청산, 독일의 나치 부역자에 대한 무관용 처벌이 부러운 광복절이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만든 작품이다.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적폐를 청산하기를 원한다. 작업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위태롭다. 친일과 부역의 뿌리는 깊고 그 단물을 빨아먹던 자들이 아직 권력기관의 요직에 있다. 대통령 선거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빠르게 문재인 지지로 돌아선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청산해야 할 처세의 달인들이 현 정부의 지지자로 경력세탁을 한 것이다. 이런 자들은 감투와 완장 앞에서 철면피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내부의 적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적도 적폐다. 황우석 논문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으면서 10년 넘게 사과 한마디 없다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하겠다고 나섰던 박기영을 보자, 촛불 시민들의 반발로 사퇴하지 않았더라면 큰 문제가 될 인사였다.

언론이 먼저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은 친일에서 친러, 친미로 변신하며 평생을 잘 산다. 부역자의 초상이다. 1992년 12월 김기춘은 부산 '초원복국'에서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한다. 14대 대통령 선거 일주일 전이었고 김기춘은 법무부장관이었다. 패거리 권력의 표상이다. 이런 부패하고 천박한 자들이 국정원, 사법부, 검찰, 경찰, 군대, 언론, 국회에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기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휘둘렀다. 권력과 재벌, 언론이 모두 협잡꾼이었다.

그들의 짬짜미가 정치행위, 처세술, 인맥관리 따위의 말로 가려지면서 72년이 흘렀다. 친일부역자가 아직도 국립묘지에 묻혀있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두환은 뻔뻔하게 회고록을 썼다. 청산의 길은 멀다. 청산해야 할 적폐의 습관이 사회 전반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재벌, 언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엮여있는 악의 사슬을 끊어야 하는데 어렵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라 '우리는 남이다'란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자신의 직업을 직업답게 하고자 하는 자존심이 문화가 되어야 한다.

공영방송 MBC와 KBS의 기자, PD들이 제작을 거부하고 있다. 곧 파업을 할 것이다. MBC는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가자마자 경력기자 채용공고를 냈다.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타협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한 방식과는 달리하려니 어렵다.

그러나 내부에서 10년 동안 싸운 두 공영방송은 희망이 있다. 개혁은 내부에서부터 이뤄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두 공영방송사 내부에서는 해고와 징계, 부당전보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그 고난이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언론이 먼저 패거리 협잡의 고리를 끊고 다른 권력기관의 개혁을 부릅뜬 눈으로 감시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저자는 안성일(전 문화방송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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