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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정말 '박정희 명예훼손'? 한국 영화 수난사

[기획] 기록으로 본 개봉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사례들... 왜 대부분 패소했나

17.08.19 09:42최종업데이트17.08.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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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범자들' 김장겸은 물러나라! 공영방송 몰락시를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이 MBC 측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 기각으로 17일 정상 개봉했다. 사진은 최승호 감독, 김민식 MBC PD, 김연국 MBC 기자(좌측부터). ⓒ 이정민


"(MBC) 임원들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강해지고 과거 행적이나 발언이 재조명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언론인인 임원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략) 언론의 공공성과 공익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다." - 영화 <공범자들> 상영금지가처분 신청(2017카합81063)에 대한 판결문 중에서

결과적으로 영화 <공범자들>은 17일 예정대로 개봉했다. MBC 전·현직 임원 등이 영화사 측에 제기한 명예훼손 및 퍼블리시티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상식적인 판결이었지만 개봉을 목전에 둔 영화에 대한 소송에 관계자들의 애가 탔을 터, 동시에 한편에선 "MBC 사장이 소송을 통해 제대로 영화를 홍보해준 셈"이라며 "마케팅 비용으로 치면 수억 원에 달하는 홍보 효과를 누린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돌아보면 국내 개봉 영화들의 상영금지가처분 사례가 꽤 많다. 일반 소송의 경우 한번 판결이 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기에 시간을 다투는 이런 분쟁은 민사소송법에 따른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확정판결 전 청구자의 요청이 상당히 인정되면 바로 상황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본안 소송 전까지 재판부도 가처분 신청은 되도록 1개월 이내에 결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정작 영화 개봉 관련 상영금지가처분에 있어선 청구자가 승소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왜일까. <오마이스타>는 <공범자들> 개봉을 기점으로 국내 개봉 영화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 사례를 분류해봤다. 황당한 이유도 있었고, 나름 납득할만한 이유도 있었다. 어떤 영화들이 이런 수난을 겪었는지 온라인상 검색 가능한 기사를 기준으로 찾아봤다.

[사례 ①] 이 영화는 누구 것? 

영화 <애마부인>과 <리베라 메>는 모두 저작권 문제로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에 말렸다. ⓒ 연방영화, 드림써치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의 상당수가 바로 저작권 문제와 관련됐다. 단순 검색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오래된 사례로 1991년 4월경 <애마부인> 원작자 조수비씨가 낸 가처분 신청이 있다. 조씨는 "내 승인을 받지 않고 <애마부인> 속편을 영화사 쪽에서 제작하고 있다"며 영화사를 상대로 상영제작 배포 상영 등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당시 법원은 "소설과 애마부인 속편 등이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0년에 개봉한 재난 영화 <리베라 메>는 공동 작업을 하다 헤어진 한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가 자신의 것을 표절한 것"이라며 낸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당시 법원은 "시나리오를 베껴 만든 영화인지 아닌지가 분명하지 않은 데다 단지 시나리오 문제로 개봉을 앞둔 영화의 상영을 금지할 수 없다"는 취지로 역시 기각했다. 하지만 이듬해 2월 검찰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영화사 등을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하면서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국내 관객에게 친숙한 조폭 시리즈물인 <조폭마누라>도 이런 분쟁이 있었다. 서세원 프로덕션은 당시 개봉을 한 달 앞 둔 <조폭마누라2: 돌아온 전설>에 대해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촬영에 들어갔으니 공동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약 2주 만에 "전개과정을 볼 때 전편의 2차적 저작물로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속편이 전편의 2차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해도 서세원 프로덕션을 공동 저작권자로 인정할 수 없어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의 이유가 없다"며 제작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도 저작권 분쟁을 겪었다. 한 소설가가 영화에 등장하는 쌍둥이와 한국은행 털기 등이 자신의 작품 기법을 도용한 것이라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해당 모티브가 다른 기존 작품에서도 이용됐기에 독창적 창작이라 보기 어렵다. 영화 설정 자체에도 소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면서 기각했다.

2012년 연말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 <나는 살인범이다>도 한 작가가 자신의 초안과 만화를 모방했다며 상영금지가처분 걸어 분쟁을 겪었다. 당시 작가는 영화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한 2차 저작물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 개봉 3주 후 작가가 제작사에 사과의 뜻을 밝히고 소송도 취하했다.

[사례 ②] 혹시 이건 무리수?

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한 장면. 개그맨 김용은 이 영화가 자신의 소설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 UPI코리아


본안 소송보다 간편해서일까. 일부 사례는 객관적으로 봐도 무리수로 보일 여지가 컸다. 저작권 침해나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청구인이 덧붙인 이유를 보자.

강풀 작가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아파트>가 2006년 개봉했다. 당시 배우 고소영이 <이중간첩> 이후 4년 만에 복귀한 작품이라 화제가 됐고, 공포 장르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도 꽤 컸다.

문제는 영화를 촬영한 그 장소에서 생겼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이 자신들의 동의 없이 영화가 촬영됐고, 평온할 권리 등이 침해당했다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 당시 재판부는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두고 "세 곳에서 촬영한 만큼 특정 아파트임을 알 수 없고, 촬영 당시 아파트 주민들이 입주 전이었기에 시공사로부터 허가를 얻는 게 맞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패기 넘치는 소송도 있었다. 2005년 11월엔 개그맨 김용이 할리우드 배급사인 UPI 측을 상대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한 것. 11월 4일 개봉 예정이던 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가 자신의 소설 <죽을 때까지 한번도 못한 남자, 한번만>과 거의 흡사하다는 이유였다. 국내 유명인이 할리우드 영화사를 상대로 낸 첫 소송 사례로 볼 수 있다. 김용은 "영화 예고편을 보니 내 소설과 대사와 장면이 아주 흡사했다"고 소송의 변을 밝혔는데 정작 UPI코리아 측은 '노코멘트'로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당시 시나리오작가협회와 <개콘> <웃찾사> 동료들이 이 의혹 규명에 동참해 성명서를 냈고, 김용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공세를 취했으나 법원은 그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이듬해 1월 김용은 UPI코리아를 상대로 "표절을 입증할 완벽한 근거를 확보했다"며 100억 원대 손해배상소송을 다시 제기했으나 역시 패소했다.

2006년엔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다빈치 코드>를 두고 국내 기독교단체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영화가 예수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작 소설과 영화는 허구임이 명백하고 실화를 극화한 것임을 표방하고 있다고 단정할 자료가 없는 이상 신청인들의 사회적 명예에 변경을 가져온다고 볼 수 없다"며 기각했다.

판결문엔 "일반적으로 종교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인격권 등은 최대한 보장돼야 할 것이지만 이 사건 같이 영화 중 일부의 삭제 또는 자막의 추가를 명하는 가처분을 발령하는 경우라면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적지 않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문구가 담겨있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재판부의 의식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종교 논란에 이어 때아닌 성차별 논란이 있기도 했다. 2011년 11월 남성연대는 영화 <너는 펫>이 "여성에게 애완동물처럼 남성이 복종하는 것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법원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일종의 성차별이자 공존의 이유를 해친다는 의미였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영화 <너는 펫>의 포스터. 당시 장근석의 첫 주연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례 ③] 영화계에 기름 부어버린 소송들

어떤 소송은 영화 자체를 넘어 그 산업군과 나아가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주곤 했다. 앞서 언급한 <공범자들>과 비슷한 사례로 단순히 사적 이익을 넘어 표현의 자유 내지는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까지 넘어간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흥행작 <실미도>는 훈련병 유가족들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낸 상영 및 수출금지가처분 신청으로 잠시 몸살을 앓았다. 영화의 묘사가 당시 실존했던 사람들을 범죄자로 오인케 했다는 건데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7년 실제 아동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한 <그놈 목소리> 역시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당시 피해 아동을 양육한 청구인이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다. "영화로 인해 16년 전 악몽이 떠올라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청구인 주장에 법원은 "인격권 침해는 인정되지만, 상업 영화의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없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하며 청구를 기각했다.

근 10년 중 가장 뜨거웠던 상영금지가처분 소송 건은 단연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4)이었다. 10·26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낸 것. 박씨 측은 '사실 왜곡' 등을 들며 강하게 법원에 상영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동시에 극 중 가수 송금자(사실상 심수봉)를연기한 가수 김윤아가 극 중 엔카를 부르는 장면으로 의도치 않게 왜색 논란도 덧붙여졌다.

이에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단체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며 우려를 표했다. 당시 민언련은 "영화화된 사건의 시선과 그 해석은 창작자의 몫이고, 그 표현의 자유는 억압돼서는 안 된다. 공개되지도 않은 영화 시나리오만으로 장면 삭제와 수정을 요구하는 건 위험한 것"이라 반박했다.

당시 법원이 판결을 앞두고 영화 시사회를 취소하라고 권고했으나 제작사는 강행했고, 이후 법원은 박지만씨의 청구를 일부 인용해 세 장면을 삭제해서 상영하라고 판결했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 현장 스틸. 임상수 감독(우측)은 박지만씨가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 싱청에 강하게 반발하며 "영화의 부분 삭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당시 밝히기도 했다. ⓒ MK픽쳐스


판결이 나자마자 영화인들이 행동에 나섰다. 곽경택, 김지운, 류승완, 봉준호, 박찬옥, 이정향, 장진, 허준호 등으로 구성됐던 젊은 영화감독 모임인 디렉터스컷은 법원의 판결을 사전검열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는 성명서를 냈다. 제작사 측도 이의 신청을 냈고, 박지만은 본안 소송과 함께 5억 원의 손배소를 제기하며 사건은 장기화 됐다.

가처분청구 일부 인용으로 3분여 가량의 장면이 검게 처리되는 식으로 영화는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후 본안 소송에서 재판부는 손해배상 소송 금액 5억 원 중 1억 원을 박지만에게 배상하라면서도 영화상영금지 청구는 기각했다. 이 때문에 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원래 버전의 영화가 상영될 수 있었다. 영화는 제 모습을 찾았지만, 법적 분쟁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2008년 2월에 이르러서야 법원의 조정을 양측이 받아들여 소송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밖에도 특기할 만한 분쟁이 있다. 2011년 MBC 등 맛집 소개 프로의 비윤리성을 고발한 <트루맛 쇼>는 방송사 측으로부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당했으나 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됐고, 천안함 침몰 사건 결과에 의문을 제기한 정지영 감독의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군 당국과 유가족들에게 같은 소송을 당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됐다.

상영금지가처분 사례가 잦았다고 해도 대부분 표현의 자유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좋은 판례로 남은 셈이다.

공범자들 MBC 이명박 박정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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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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