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대통령 쫓아가려면 공부 많이 해야겠다"

문 대통령 취임 기자회견 뒷이야기... "부유세" 실수 정정은 '옥에 티'

등록 2017.08.17 20:00수정 2017.08.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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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미소짓고 있다. ⓒ 연합뉴스


기자들은 열의가 넘쳤고 대통령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각본 없는 기자회견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기자들은 질문권을 얻기 위해 먹이를 물고 온 어미를 맞는 아기새처럼 손을 들고 사회자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애절하게 바라봤다. 그동안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난을 들었던 지난 정부의 기자회견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계속됐던 긴장감, 흔들리지 않았던 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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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취재진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수석은 회견을 시작하며 "오늘 기자회견은 기자들이 자유롭게 묻고 자유롭게 답하는 토론방식으로 진행된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청와대와 기자단 간의 질문 주제와 순서만 조율하고 질의 내용과 답변 방식은 사전에 정해진 약속이 없었음을 알려드린다"라며 "따라서 대통령은 여러분이 어떤 질문을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님 긴장되시죠?"라고 말했다.

기자들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일동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윤 수석의 말대로 이날 회견에 사전 준비가 된 것은 질문 주제와 각 주제별 질의 순서뿐이었다. 외교안보 분야, 정치 분야, 경제 분야, 사회문화 분야, 자유 주제 순으로 2~3개의 질문을 하기로 했고, 각 주제별 질의 내용과 방식은 온전히 출입기자단에 맡겨졌다. 그 가운데 <오마이뉴스>가 속한 '뉴미디어기자단'은 사회문화 분야 질문을 맡았다.

방송사, 종합일간지, 지역언론 등 각 그룹별 기자단은 기자회견 며칠 전부터 각자에게 주어진 주제별 질문을 짜기 위해 수차례 토론을 거쳤다. 뉴미디어기자단에 속한 14개 언론사 기자들 역시 토론을 통해 문 대통령의 탈핵정책과 평창올림픽 관련 질문을 준비했다. 누가 지목 될지 모르기에 구성원 모두 질문 요지를 숙지했다. 물론 자유 주제에서 '간택' 될 때를 대비해 개별 질문도 따로 준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내 언론사 기자는 189명, 외신 기자는 27명으로 200명이 훌쩍 넘었다. 각 주제별로 질문하는 매체 수는 그보다 적었지만 윤 수석이 질문자를 지명할 때마다 수십 명이 손을 드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자신이 담당하는 주제 질문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기자들은 짧은 탄식과 함께 힘없이 손을 내렸다. 이러한 진행방식으로 인해 기자회견 내내 장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문 대통령은 최근 가장 민감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외교안보 분야의 북핵 문제, 남북 관계 관련 질문에 답을 할 때는 차분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기자들도 가벼운 신변잡기적인 질문을 피하고 민감한 현안 중심의 질문을 던진 만큼 문 대통령도 진지한 자세로 답변했다. 중간에 위트를 섞은 기자의 질문과 윤 수석의 유머에도 가볍게 웃어 보일뿐 주제에서 벗어난 답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 대통령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슈퍼리치 증세 정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부동산 대책 등과 관련한 질문에 답을 할 때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졌다. 복지정책에 예산 조달 방안이 부실하다는 지적에는 "현재 정부가 발표한 여러 복지정책은 지금까지 발표한 증세방안만으로 충분히 재원 감당이 가능하다"라고 적극 반박했다. 또 부동산 관련 질문에 답변하기 앞서서는 5초가량 침묵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장 긴장감이 높아졌을 때는 일본 NHK기자가 한일 위안부 협상 재검토와 강제징용 보상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의 의견을 물었을 때다. 두 사안에 대한 국민적 정서,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가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라며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도, 그와 관계없이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겠다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문 대통령은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몰랐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회견 내내 각 질문마다 대체로 매끄럽게 답변했다. 이전 정부 때 필수적이었던 '통역기'는 필요 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오마이뉴스>가 했던 낮은 노조조직률과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관련 질문은 사전 조율에서 정해진 주제 밖의 질문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노조 막는 사용자 부당노동행위는 엄벌할 것"이라며 거침없는 태도를 보였다.

회견에 참석했던 기자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질문을 사전에 모르는 상태인데 대통령의 답변이 생각했던 것보다 잘 정리돼서 나온 것 같다"라며 "크게 새로울 것 없는 답변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주제에 대통령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는 게 느껴졌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이 대통령을 쫓아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200여명 기자에게는 너무 짧은 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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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러 가지 면에서 전 정부와 비교되며 좋은 평가를 받은 기자회견이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우선 청와대 측은 기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지만 200명이 넘는 기자들에게 60분은 결코 충분치 못했다. 결국 앞서 탈핵정책과 평창올림픽 등 사회문화 분야의 질문을 준비한 뉴미디어기자단에는 질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윤영찬 수석은 경제 주제 질문 이후 곧바로 자유주제로 순서를 변경했다.

이와 관련해 윤 수석은 "콘티 없이 지명하다보니 생중계라는 무언의 압박에 쫓기는 부분도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맞추다보니 사회문화 부분에 명확한 어나운스를 하지 못했다"라며 "매체를 고르게 배려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소홀해진 매체군도 있다. 다음 기자회견엔 꼭 반영하도록 하겠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 각 언론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측이 문 대통령의 실수를 억지스럽게 바로 잡으려 한 것도 이번 회견에 '옥에 티'로 남는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 관련 보유세 도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부유세'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공평과세라든지 소득재분배라든지 또는 더 추가적인 복지재원의 확보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정부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으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음은 분명 '부유세'였고, 내용 역시 '추가적인 복지재원 확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부과 세금이 아닌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의미했다. '사회적 합의'를 언급한 부분 역시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방안으로 검토할 수 있는 보유세와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회견 이후 "경제분야 질의 답변중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보유세'다. '부유세'가 아니다"라고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이 같은 조치는 대통령의 발언을 소위 '마사지' 한 것으로, 대통령의 작은 실수도 노출하지 않으려는 강박으로 읽힐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참여정부 때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보유세 도입 과정을 지켜봤다. 해당 발언도 문 대통령이 보유세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기보다는 단지 질문을 잘 못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수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실수 할 수 있는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위험할 뿐이다.
#문재인 #기자회견 #취임 100일 #청와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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