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집 DJ 옆에 있던 이 여성을
"문 대통령 덕분에 다시 만났습니다"

[나의 찌질한 20대②] "나는 김대중 덕후" 김현성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록 2017.08.18 14:54수정 2017.08.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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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20대는 어땠나요? 반짝반짝 찬란했나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암울했나요. 어떤 하루를 보냈건, 누구나 공평하게 10년 동안 20대를 살아내죠. 그렇다면, 금수저 물고 태어났을 것만 같은 정치인들의 20대는 어땠을까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지금 그 자리에 있을까요. <오마이뉴스>가 정치인들의 20대, 청춘 한 자락을 들춰봤습니다. [편집자말]

1997년 12월 14일자 <한겨레>. 김대중 전 대통령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영미 전 은평두레생협 전 이사장의 20대 모습이다. 김현성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당시 현장에 있었으나 늦게 도착해 앞자리에 앉지 못했다"고 한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프롤로그] 닭갈비집에 있던 친구와 20여 년 만에 만나다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딱 들어왔다. 인터뷰 내용 확인을 위해 1997년 대선 당시 신문 기사들을 뒤져보던 중이었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서울 연세대 앞 닭갈비집을 찾아 대학생들과 대화하던 도중 박수를 받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한겨레>에 실려 있는 사진이었다. '혹시?'하는 마음에 '카톡'을 날렸다.

- 혹시 아는 얼굴 있으신지?
"이 친구가 대통령 바로 옆에 있네요(ㅋㅋ)."

김현성(45) 민주연구원 부원장도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 장의 사진을 대화창에 띄웠다. 중년 남녀 여섯 명의 얼굴, 그 중 김 부원장은 한 사람을 지목했다. 닭갈비집, 김대중 전 대통령 옆에서 손뼉을 치며 활짝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이 친구"라고 했다. 얼마 전 20여 년 만에 만났다고 했다. 두 사람, 아니 이들 여섯 명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김대중 후보' 지지를 호소하며 거리를 누비고 다닌 대학생들이었다. 역시 20년 후인 지금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된 '윤영찬 기자'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20대를 투표장까지 끌어오기 위해 김민석, 추미애, 김영환 의원 등 참신한 의원들과 젊은이와의 만남을 추진 중이다. 정치가 우리의 삶과 밀접하다는 것을 강조, 투표를 호소하기 위해서다... 국민회의는 또 1천여 명의 대학생 모니터 요원을 모집, 적극적으로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모니터 요원들은 컴퓨터 통신에 뜨는 젊은 층의 목소리를 김 후보에게 전달하고 당의 홍보 논리도 전파하고 있다." (1997년 11월 26일자 동아일보)

"나는 DJ 덕후" 아직도 생생한 그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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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민주연구원 부원장 ⓒ 남소연


김대중 전 대통령(1997년 당시 대선 후보)과 청년들의 만남. 김현성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성균관대에서 있었던 행사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김 부원장은 청년 패널로 참석했다고 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날렵한 외모가 눈에 띈다. 사진 왼쪽이 김 부원장. ⓒ 김현성 제공


김현성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났다. 민주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연구소로 자유한국당의 여의도연구소처럼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곳. 이곳에 오기 전까지 김 부원장은 공공 커뮤니케이션, 정치적 메시지를 시민에게 전달하는 '통로'에서 자신의 이력을 쌓아올린 인물이다. 좀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지금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하는 것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했다.


금강기획에서 그런 역할을 하면서 내공을 쌓았고, 김 전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PI(President Identity, 이미지 전략 활동)의 컨설팅도 '잠깐' 담당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최초의 디지털 보좌관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으며,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에서 국민주권선대위 공보단 부대변인으로 일했다.

이러한 이력의 출발점에는 '김.대.중'이란 이름 세 글자가 박혀 있다. 그는 스스로를 "DJ 덕후"라고 표현했다. "수업을 땡땡이 치고 3시간 이상을 기다려 먼발치에서 들었던 김대중 선생의 사자후 같은 유세"가 1987년 당시 중학생의 가슴에 일찌감치 박힌 모양이었다. 그렇게 '김대중'에게 매료된 소년은 '덕후질'을 통해 일찌감치 사회에 눈을 떴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보다 전교조 해직 교사들의 구명운동에 더 열심이었다.

1992년은 그래서 그에게 "마음의 빚"을 남긴 해다. 김 부원장은 "그 때 대학 재수하고 있지만 않았으면 열심히 도왔을 것"이라며 "대선에서 패배한 DJ의 정계 은퇴 발표를 TV로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랬으니 'DJ 덕후'의 눈에는 앞서 정계 복귀를 선언한 '김대중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을 것이다. <나의 길 나의 사상>이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등을 읽으며 "그 분과의 만남"을 고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대선이 다시 돌아왔다. 국민회의 대학생 모니터 요원 모집, 한창 팔팔하던 20대 청년 김현성으로서는 좌고우면할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발대식에서 김대중을 마주하게 된다. 1996년 하반기, '덕후질'을 한 지 약 9년 만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정말 뭉클했어요. 내 앞에 있는 분이 그 분이 맞나... 연예인을 별로 안 좋아해서, 아이돌 팬들의 느낌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엄청 연예인 같은 분이었다고 할까? 덕후였죠, 덕후. 'DJ 덕후'. 1987년부터 그런 사랑이 이어졌으니까, 뭐 하실 때마다 '팬질'을 열심히 했었으니까. 그랬던 분이 내 앞에서 얘기도 하시고 하니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감격적이었죠. 감동적이기도 했고. 떨리기도 많이 떨렸고, 땀도 막 나고 그랬죠."

바람잡이? 우리는 'DJ사모'였다

앞서 소개한 대로 이들 대학생의 임무는 "젊은 층 목소리를 전달하고 홍보 논리도 전파"하는 것이었다. 허나 김 부원장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업(Up) DJ 플랜'이란 걸 만들어 발표했다고 했다. "올드한 이미지를 바꿔야 하고, 인기가 아닌 지지를 만들어야 하며,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는 내용으로 신문에 소개됐다고 한다. 역시 'DJ 덕후'였기에 가능했을 농익은 제안이었을 게다.

그래서인지 김 부원장은 당시 대학생 모니터 요원 조직을 "바람잡이" 정도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신촌 닭갈비집 같은 곳에서 후보가 무슨 행사를 한다"는 식으로 '정보'를 당에서 물론 먼저 알려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갈 수 있는 사람이 가는 것"이지 '동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한 최초의 팬클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 발대식 때만 해도 100여 명이었던 조직이 대선을 앞두고는 1000명 규모로 확대됐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대학생 선거운동 조직 아니었나요?
"팬클럽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과 1997년 대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학생 모니터 요원들. 이 사진에서도 김 전 대통령 옆을 지키고 있는 김영미 전 은평두레생협 이사장 모습이 눈에 띈다. ⓒ 김현성 제공


- 돈 안 받았나요?
"전혀 없었어요. 진짜로. 차비도 안 줬어요. 간혹 밥 사주기는 했지만, 유일하게 나왔던 돈은 그때 만들었던 '아침새'라는 대학생 모니터단 소식지 제작 비용, 이런 건 실비로 받았죠. 그 외에는 다 자비로.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런 힘들이 DJ를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예전 노사모처럼. <노무현입니다> 보면, 진짜, 사람들 '미쳐있는' 거 같잖아요. 우리도 그냥 (DJ가) 좋은 사람들이 모였던 거죠."

그러면서 김 부원장이 예로 든 것이 이른바 '구전 홍보단'이었다. 시장 같은 곳을 다니면서 그렇게 "라디오 틀 듯이" 소리쳤던 그 때,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려고 20여 년 전 했을 그 말들이 그의 입에서 막힘 없이 술술 흘러나왔다.

"든든해요, DJ. 지금 IMF로 경제가 어렵고 힘들지 않습니까. 사장이라도 해 본, 구멍가게라도 해 본 DJ가 대통령이 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김 부원장은 "그 분의 모든 것이 제 모델"이었다고 했다. 그립다고 했다. "젊은이들과 간담회 때 늘 유머를 통해 거리를 좁히려고 했던 모습"이나 "보는 사람의 식욕을 자극할 정도의 '먹방'" 등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DJ 덕후'가 풀어내는 그리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정치력, 그의 해박한 지식 등에 대한 DJ 자랑이 이어졌다.

[에필로그] 만약 정권 교체가 안 됐다면... 이 사진은

김현성 민주연구원 부원장(사진 오른쪽)은 1997년 대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학생 모니터 요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김영미 전 은평두레생협 이사장과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났다. 김 부원장은 이지웅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김 부원장 맞은 편)와 함께 이 날 모임을 주선했다고 한다. ⓒ 김현성 제공


닭갈비집, 김 전 대통령 옆에서 활짝 웃었던 친구와 20여 년 만에 만나게 된 사연을 소개할 차례다. "문화로 융성하는 대한민국 만들겠다는 말씀이 마음에 콱 박혀서", "서태지한테 관심도 주셔서" 20여 년 전 DJ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뛰어다닌 친구였다. 그 친구의 이름은 김영미, 서울 은평두레생협 전 이사장이다. 서로 세월에 깎인 외모, 오랜만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을까.

김 부원장은 "세월의 벽이 전혀 안 느껴졌다"며 "엊그제 만난 사람 같았다"고 했다. "DJ가 대통령이 되면 뭔가 세상이 완전히 바뀔 것 같아 열심히 했던" 기억의 힘 때문일까. 아니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또 크게 바뀌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아쉬움" 또는, "대통령 당선 후 각자 파편화 됐다는 반성"에 서로 공감하기 때문이었을까. 김 부원장의 결론은 이렇게 내려졌다. "DJ 덕후들이니까"로.

그렇기에 만약 대통령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들의 만남 역시 성사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김 부원장도 "그 날 정치 이야기 많이 했다"면서 동의했다.

"그렇죠. 정권 교체가 안 됐다면 아마 이렇게 모이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동안 간간이 만난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친구 김영미는 문 대통령 덕분에 만났다고 생각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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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민주연구원 부원장 ⓒ 남소연


김대중과 문재인이 닮은 점, 문재인이 노무현과 다른 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력, 그의 해박한 지식 등에 대한 DJ 자랑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이었다. 그러다 귀가 활짝 열린 이야기는 PI 전문가로서 대통령들을 평가한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PI에 대해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적인 인식을 갖고 계셨어요. 그전까지 대통령이 졸업식 간다고 하면 서울대 가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DJ는 방통대 졸업식 가셨죠. 아니면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한다든가, 노벨 평화상 수상하실 때 연세대 의대에 최연소로 들어간 학생, 노벨상을 받는 게 꿈이라는 그 학생을 데려간다든가. 국민과의 대화도 매우 잘 활용하셨던 대통령이죠."

- 얼마 전 문 대통령이 성모병원에 갔던 일이 생각나네요. 대통령이 하는 말, 대통령의 행동, 대통령이 가는 곳 등 이런 결정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 PI를 이런 식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죠. 대통령이 스스로를 공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모아서, 자연인으로서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는 거죠. 내가 하는 말이나 일정, 이런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에 문 대통령이 동의하신 걸로 보여요.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입니다."

- 노 전 대통령은 권위 의식을 내려놓았습니다.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지금 부원장님 말씀이 한편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노 대통령과 조기숙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어떤 행사 참여 여부를 놓고 논쟁한 적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그럴 시간에 국민을 위한 정책 하나 더 만들겠다는 분이었다고요. 노 전 대통령은 PI적으로 봤을 때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자신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본인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셨죠.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지, 이런 식으로.

그래서 PI 쪽으로는 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과 잘 통한다고 생각해요. 문 대통령은 지금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도구나 수단들을 거의 모두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스피커의 출력이 있어요. 지금 그걸 문 대통령은 최대한 사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설득력이나 도달력이 그래서 높은 겁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잘하고 있다고 봐요."

[관련기사] 조기숙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독"


#김현성 #민주연구원 #김대중 #김민석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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