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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사 논란' 배구협회, 김연경 등 월드챔피언스컵서 제외키로

[단독] 비난 일자 주전 선수 6명 엔트리서 빼... 형평성 논란 여지도

17.08.18 12:17최종업데이트17.08.1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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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 박진철


배구협회가 오는 9월 여자배구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에서 김연경 등 장시간 경기를 뛰어온 선수들을 제외키로 했다. 언론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국가대표 주전 선수들만 혹사시킨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급히 방침을 바꾼 것이다(관련기사: '살인적 스케줄' 김연경, 또 뛰어라? 배구협회 '혹사' 논란).

배구협회는 다음 달 5일~10일 일본에서 열리는 '2017 여자배구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에 출전할 최종 엔트리 14명 명단을 확정해 지난 14일 각 소속팀에 통보했다.

복수의 프로구단 감독이 확인해 준 최종 엔트리 명단을 살펴보면, 그동안 모든 국제대회에서 주전으로 뛰어 체력 저하와 피로도가 심각한 선수들이 주로 제외됐다.

지난 6월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 7월 월드그랑프리, 8월 아시아선수권 대회까지 모두 출전했던 선수는 김연경(30세·192cm), 박정아(25세·187cm), 김희진(27세·185cm), 김미연(25세·177cm), 양효진(29세·190cm), 김수지(31세·186cm), 한수지(29세·182cm), 염혜선(27세·177cm) 등 총 8명이다.

이중 김연경, 박정아, 김희진, 김미연, 양효진, 염혜선 등 총 6명의 선수가 이번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배구협회는 당초 이번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도 주전 선수 대부분을 출전시킬 예정이었다. 유경화 ​배구협회 여자 경기력향상이사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김연경 선수를 따로 불러내 "출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득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는 9월 5일부터 6일까지 2일 연속, 다시 8일부터 10일까지 3일 연속 경기를 펼쳐야 한다.

세계 강팀과 아시아 강호들이 도쿄 올림픽 출전권과 메달 획득을 목표로 철저하게 주전 선수 휴식과 유망주 발굴·육성에 초점을 맞춰 대표팀을 구성·운영하는 방식과는 대조적이다. 배구협회가 여자배구 선수들을 혹사시킨다는 비난이 인 것도 이 때문이다. 참다못한 김연경 선수는 기자들 앞에서 배구협회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결국 '폭발한' 김연경, 진짜 문제는 배구협회다).

똑같이 혹사했는데... 김수지·한수지는 또 출전

다만, 김수지·한수지 선수 등 나머지 2명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명단에도 포함돼 국제대회에 4회 연속 출전하게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똑같이 혹사했는데 왜 이들만 계속 더 경기를 뛰어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김수지 선수는 주장 역할을 할 고참 선수의 필요성 때문에 차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지·한수지 외에도 기존 대표팀 선수 5명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그대로 이어 출전하게 됐다. 월드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에 모두 출전했던 황민경(28세·174cm)과 김연견(25세·162cm), 아시아선수권에 합류했던 이재은(31세·176cm), 김유리(27세·182cm), 나현정(28세·163cm) 등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새로운 선수 7명이 승선하게 됐다. 흥국생명의 이재영(22세·178cm·레프트)과 정시영(25세·180cm·센터), 한국도로공사의 하혜진(22세·181cm·라이트), 전새얀(22세·178cm·레프트), 유서연(19세·174cm·레프트), KGC인삼공사의 최수빈(24세·175cm·레프트), IBK기업은행의 이고은(23세·170cm·세터)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는 기용하지 않았다. 여자배구 강국들은 전략적으로 19~21세 나이대의 장신 유망주를 국가대표로 발탁하고 있다.

배구계에서는 '급하게 주전 선수들을 교체하다 보니 그런 부분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애초부터 국제대회의 비중에 따라 팀을 나눠서 운영했다면 혹사 문제에 따른 형평성 논란, 유망주 발탁 문제들이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 방송사 배구 해설위원은 18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배구협회가 올해 초부터 국가대표팀의 1년 일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중요한 대회와 비중이 떨어지는 대회를 구분해서 대표팀 선발을 이원화하는 등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라며 "그랬다면 주전 선수 혹사 논란과 유망주 발굴·육성을 외면한다는 비난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배구협회가 비난 여론을 의식해 주먹구구식으로 '날림 대표팀'을 선발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은 일본이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대회다. 세계랭킹 점수는 주어지지 않는 이벤트성 대회지만 출전국은 세계 최정상급 팀들이다. 이번 대회에는 중국(세계랭킹 1위), 미국(2위), 브라질(4위), 러시아(5위), 일본(6위), 한국(10위) 등 6개국이 출전한다. 각 팀이 5경기씩 풀리그를 펼쳐 최종 순위를 가린다.

여자 프로구단의 A 감독은 "대회 비중과 선수들의 피로도를 고려한다면, 아시아선수권에는 중국처럼 어린 유망주들로 대표팀을 구성하고,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과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는 정예 멤버를 출전시키는 게 맞다"며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는 세계 최강팀들이 나오는데, 큰 망신을 당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배구협회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6월 말까지 무려 6개월 동안 집행부 해임과 파벌 싸움 등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전 집행부 해임을 주도했던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대의원들이 남녀 국가대표 감독 선임 등을 주도했다. 배구협회 수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국가대표팀 운영에 대한 주도면밀한 전략과 장기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웠다.

일각선 '도쿄올림픽 출전 실패' 우려도

20대 초반 '공격 삼각편대'... 무섭게 성장하는 태국 여자배구 ⓒ 아시아배구연맹


한국 배구의 지상 과제인 '도쿄 올림픽 남녀 동반 출전'이 풍전등화에 놓였다는 시각도 있다. '올림픽 출전'은 무난할 것으로 여겨졌던 한국 여자배구가 혹사 문제로 난관에 봉착한 데 이어 경쟁 상대인 태국의 어린 유망주들이 급성장하면서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한국이 2019년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국제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따지 못할 경우, 마지막 단계인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본선 티켓 1장을 놓고 태국과 '끝장 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태국을 이기지 못한다면 도쿄 올림픽 출전조차 못할 수도 있다.

태국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현재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공격진의 세대교체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월드그랑프리 대회 1그룹에서 아차라폰(23세·178cm), 핌피차야(20세·178cm), 찻추온(19세·178cm) 등 어린 선수들이 주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세계 강호인 브라질, 이탈리아, 터키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아시아선수권에서도 태국은 일본과 풀세트 혈전 끝에 우승을 놓쳤지만, 한국에는 완승을 거두었다. 어린 선수들의 기량과 조직력이 한층 무르익을 3년 뒤에는 그 위력이 배가될 수 있다.

배구협회 지도부가 현재와 같은 사고방식과 국가대표팀 운영 방식을 계속 고집한다면, 남녀 모두 도쿄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는 '비극'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게 배구계의 우려다.

배구팬들이 배구협회를 향해 '인물과 조직 등 모든 면에서 근원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며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 김연경 등 이번에 제외된 주전 선수들은 짧은 휴식 후 오는 9월 20일부터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열리는 경기 중 가장 중요한 국제대회로,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맞대결도 예정돼 있어 화제성 면에서도 단연 최고다.

김연경 선수 본인도 그동안 많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세계선수권 예선전이 올해 가장 중요한 대회"라며 "그것을 마친 뒤 (소속 팀인) 상하이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말해왔다.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B조)은 홈팀인 태국, 대한민국, 북한, 베트남, 이란 등 5개 팀이 출전해 풀리그를 펼친다. 상위 2팀이 2018년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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