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유언, 문재인 정부 탄생으로 이어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에 다시 보는 2009년 6월 11일 그의 마지막 연설

등록 2017.08.18 21:34수정 2017.08.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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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8주기가 되는 날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며 서거한 이후에도 여전히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인물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 현대사 전개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의 기일을 맞이하여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매우 많다.

그 중에서도 정권교체 이후 처음 맞이하는 기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 글에서는 그를 상징하는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그 이유는 2 가지다. 첫째, '행동하는 양심'은 그의 정치적 유언이었다. 둘째, 이것은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탄생을 통해서 현실 속에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행동하는 양심'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이 이것을 정치적 유언으로 남긴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시의적절하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투쟁 속에서 나온 '행동하는 양심'

원래 '행동하는 양심'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장에서 나온 것으로 '인동초'와 함께 민주화 운동 시기 그를 상징하는 표현 중의 하나였다. 김 전 대통령이 이것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을 전개했을 때부터였다.

이 표현에는 당시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그의 고뇌와 전략이 담겨져 있다. 1970년대 그는 한국 군사 독재 정권의 힘은 매우 강력하고 군사 독재 정권 스스로 민주화 조치를 실행할 가능성은 없다고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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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의 모습 민주화 투쟁을 이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그래서 한국에서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민중항쟁을 통해서 군사 독재 정권을 패퇴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했다. 197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 세력이 2가지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하나는, 민주화 운동 주도 세력이 너무 약하다는 사실이었다. 또 하나는 국민들의 수동적 태도였다. 그렇다 보니 민주화 운동이 나타나도 박정희 정권이 물리력을 동원해서 억압하면 민주화 운동은 곧 약화되어 정권에 위협을 주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인식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와 같은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 민주화 운동 주도 세력의 자기희생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목숨을 건 투쟁을 촉구한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는 민주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민주화 운동 주도 세력이 말로만 그치지 말고 '행동하는 양심' 되어 자기 목숨을 내걸고 투쟁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민주화 운동 주도 세력들이 독재 정권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와 같은 희생을 통해서 수동적이던 국민들을 각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과정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국민들 사이에서 집합적 열정이 형성되면 대규모 민중항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민주화 운동 시기 '자신은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내(김대중)가 죽으면 제2, 제3의 김대중이 나와 민주화 투쟁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화 운동 주도 세력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강조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이와 같다. 사실 '행동하는 양심'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모르고 보면 이 말은 왠지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의 실체 내용은 매우 비장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행동하는 양심'은 한동안 잊혀졌었다. 무엇보다 민주화가 진전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과거형이 되었다. 그래서 '행동하는 양심'은 과거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했던 민주화 투사 김대중의 활동을 잘 아는 그의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표현이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는 그의 마지막 공식행사가 된 2009년 6월 11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라는 주제를 통해 이 표현을 다시 사용한 것과 관련이 깊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라는 주제의 이 날 연설은 그의 생전 마지막 연설이었으며 마치 죽음을 앞둔 것처럼 매우 비장한 어조였다. 그리고 강연 내용도 정치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게 있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면 그 당시 그는 왜 '행동하는 양심'을 다시 강조했을까?

이명박 집권 1년 4개월만에, 이명박 정권을 독재라고 인식한 김대중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초기 모습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독재화를 우려했다. 특히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자 김 전 대통령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초기를 지켜보면서 이미 큰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까지 겹치게 되자 매우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 정권을 사실상 독재라고 규정하면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반독재 투쟁을 촉구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6월 11일 연설 내용을 보자.

"저는 오랜 정치 경험과 감각으로,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과 같은 길로 계속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면서 … "

"4700만 국민이 모두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비판하고 격려한다면 어떻게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다수 사람들이 힘든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여기에서 보듯 당시 그는 이미 이명박 정권의 퇴행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특히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라는 표현에서 보듯 이명박 정권이 독재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었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하나는, 이명박 정권 초기인 1년 4개월 정도를 지켜본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을 독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이어지게 된다면 이명박 정권과 국민 모두가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나온 여러 사실들만 보아도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사이의 높은 연속성은 확인된다. '이명박근혜' 정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두 정권의 속성과 본질은 매우 유사하다. 그렇게 보면 이명박 정권을 독재라고 인식한 김 전 대통령의 통찰력은 매우 뛰어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독재 세력의 본질에 대해 과거부터 매우 뛰어난 통찰력과 예측력을 보여준 바 있다. 1967년 7대 총선에서 박정희 정권이 엄청난 부정선거를 자행하자, 이것을 3선개헌을 위한 음모라고 지적한 바 있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사실(박정희 정권이 1969년에 3선 개헌을 강행)로 드러났다.

또한 1971년 7대 대선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승리하게 되면 선거가 없는 총통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었는데 이는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해서 사실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인 감으로 그는 당시 이명박 정권을 독재라고 규정한 것이다. 지금 보면 매우 정확한 진단이었다.

2009년 6월, 왜 김대중은 다시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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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1일 연설 모습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이명박 정권을 향해 투쟁할 것으로 촉구했다. 그냥 비판과 반대 수준을 넘어서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촉구한 것은 그만큼 이명박 정권을 포함한 신권위주의 세력을 매우 위험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불어 여러분께도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 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든지 양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 줄을 알면서도 행동하면 무서우니까, 시끄러우니까, 손해 보니까 회피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세상을 뜨고 여러 가지 수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를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우리 양심에 합당한 일입니까."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표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박정희 정권과의 투쟁 속에서 나온 '행동하는 양심'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자기희생적 결단을 촉구하고 이것이 민중항쟁으로 이어져 한국의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인식과 전략을 함축한 용어였다.

김 전 대통령은 독재화의 길로 치닫는 이명박 정권에 대항해 승리하기 위해서도 비슷한 정도의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의한 정신적 충격, 그리고 영결식장에서의 무리 등으로 인해 2009년 6월부터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은 더 이상 늙고 병들어 직접 나서기 어려우니 후배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2009년 6월 1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셨던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 안희정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마련한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후배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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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김 전 대통령 묘역에 분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때 그의 말을 듣고 정치 참여를 결심하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는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촉구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언에 부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한국 신권위주의 세력은 결국 민중혁명인 촛불혁명에 의해서 물러나게 되었다.

2009년 6월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전개 과정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언인 '행동하는 양심'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는 민주주의와 평화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쟁취해야 하는 가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한국의 평화 민주 세력은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탄생을 통해서 이를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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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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