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급전소 침수, 전력거래소의 수상한 침묵

[주장] 7월 16일 전력시스템 고장 뒤늦게 알려져... 사태 심각성 무시한 것

등록 2017.08.20 13:05수정 2017.08.2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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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만 대정전 사태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계기로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6일 한국전력거래소 천안 전력관제센터(급전소) 수해로 EMS 시스템이 고장났는데도 1주일이 지난 뒤에야 언론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전력거래소 시장운영본부장을 지낸 김영창 전 아주대 에너지학과 겸임교수가 전력거래소 EMS 관리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 한국전력거래소쪽 반론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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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내린 폭우로 천안의 한국전력거래소 중부지사 상황실에 토사가 밀려들면서 쌓여 있다. 이곳은 비수도권 지역 154㎸ 송전선 관리와 비상시 국내 전력을 관제하는 곳이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16일 중부지방 폭우에 따른 천안급전소(한국전력거래소 천안관제센터) 침수 현장이 일주일 정도 지난 22일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매년 여름이면 예비력 부족이라고 요란을 떨었다. 그런데 국가보안시설에 해당하는 전력거래소의 천안 관제센터가 침수되어 전력시스템이 고장났는데도 언론은 너무 조용하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전력거래소의 급전 업무를 중심으로 천안급전소의 침수사건의 심각성을 논하려고 한다. 몇 가지 전력사고를 예로 들어 전력시스템 운용의 측면에서 시스템 붕괴라는 재앙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전력시스템운용 등의 용어에 생소한 독자를 위해 간략한 소개를 해 보면, 전력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속도로와 자동차에 비유해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만 자동차의 운행속도가 빛의 속도라고 생각하고 고속도로는 산에 건설되어 있는 높은 송전탑과 송전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동차 운전자는 도착지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전기도 송전망에서 이동할 때에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택하여 이동한다.

이 정도의 상상력으로 전력시스템운용을 머릿속에 넣고 에너지의 흐름을 이해하면 족하다. 직류가 무엇이고 교류가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전력시스템의 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력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는 사고가 일어날 성향 또는 확률을 갖고 있다. 사고발생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최대한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력사고가 전체 시스템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안전도 유지'를 하는 것이 전력거래소의 중요한 과제다.


예비력의 확보는 발전기의 고장 발생에 대비하여 주파수를 유지하고 소비자의 전력 사용을 적절하게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예비력은 전력시스템의 안정적 운용을 통해 확보되는 것인데, 막연히 소비자가 절전한다고 확보된다고 주장한다면,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줄 뿐이다.

시스템 운용자가 사전 계약에 의해 확보한 부하차단 우선순위에 의하여 필요한 양만큼의 부하를 차단하여 예비력을 확보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예비력의 변동을 5분마다 계측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실행하려면 전력거래소가 컴퓨터에 의한 시스템운용을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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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걸린 한전 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발생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직원이 분준히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2011년 9.15 순환정전 사고 이후 전력당국은 예비율 두 자리 수가 확보되지 않으면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한다' 또는 '수급대란이 일어난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산업체와 각 가정에 절전을 강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일치단결해 저녁 6시에 동시에 전기를 끄면 오히려 전력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다. 국민이 이렇게 절전을 확실히 해도 되는 것인가? 교류전력의 주파수는 시시각각 60헤르츠(hz)를 유지해야 하는데 균형을 잡고 있는 저울에서 양쪽의 무게추의 차이가 갑자기 커지면 저울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전력시스템에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전력계통운영시스템 제대로 운용해야 정전사태 막을 수 있어

전력거래소는 예비율 정도에 따른 각종 경보만 발령하고 있다. 전력시스템을 운용하는 주체인 전력거래소는 과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예비력을 5분마다 파악하고 있는가? 일반 국민들에게 수급대란 경보만 알려주면 그만인가? 경보를 울려 국민들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전력거래소가 전력시스템 운용을 통해 전력수급운용을 안정화시켜야 하는데도 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야기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가? 전 세계 어떤 전력회사도 예비율에 따른 경보를 국민에게까지 알리는 곳은 없다.

전력거래소는 천안급전소가 물에 잠겼으니 '이때다'하면서 경인급전소의 필요성만 강조할 것인가? 전력거래소는 제3의 급전소를 경인 지방에 건설했다. 전남 나주 중앙관제센터에 설치되어 있는 EMS(전력계통운영시스템) 컴퓨터 프로그램은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있는가?

천안급전소는 나주 중앙급전소의 컴퓨터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EMS를 사용할 수 없을 때 해당 시각에서의 전력시스템 상태를 전수받아 급전 업무를 계속하기 위한 후비급전소이다.

발전기에게 출력을 지정해 주는 것을 급전이라고 한다. 사람이 출력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가 발전기에 출력 지시를 하는 것이다. 전기는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사고발생의 여파도 빛의 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송전선로 사고가 다른 송전선로에 파급되면 과부하로 인해 선로의 연쇄탈락이 일어나 전체 송전망이 붕괴된다.

이에 따라 수백 개의 발전기가 모두 탈락하는 현상은 8~10초 사이에 일어난다. 미국의 두 차례 대정전에서 이렇게 사고가 발생하였다. 시스템 붕괴 예방은 오직 EMS 컴퓨터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력거래소에서는 과연 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전력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오직 EMS의 정상 운용뿐이다. 그런데 수재로 인해 천안 급전소의 EMS가 고장났는데도 전력당국은 아무런 비상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국가보안시설이 물에 잠겨 시스템이 고장이 났다면 재빨리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 천안급전소의 EMS가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천안급전소의 수재(水災)는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니다. 이는 국가보안시설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는 엄청난 재난사건이다. 아무도 급전소의 EMS 컴퓨터 시스템이 침수되어 작동하지 못함으로 인해 어떤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전력당국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인지, EMS 각종 문제를 감추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지 이번 기회를 통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의 기고문에 전력거래소에서 반론이 있다면 지상 토론에 나서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영창 전 아주대 에너지학과 겸임교수는 한국전력 출신으로 지난 2003년 한국전력거래소 시장운영본부장을 지냈고 현재 IAEA(국제원자력기구)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천안급전소 #대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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