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미팅 요청까지 받는 유튜버 "세상엔 퀴어 많아요"

[인터뷰 100 ③] 퀴어 유튜버 ‘수낫수(soo not sue)’

등록 2017.08.22 14:14수정 2017.08.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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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기도 어렵고, 재밌게 살긴 더 어려운 요즘. 하루하루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의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하며 사는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재미있게 살고 있는지,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도 밥은 먹고 살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앞으로 기획 <인터뷰 100>을 통해 행복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동료인한테 우리 모임이 어디에 있다 얘기해주면 어떻게든 찾아와. 이런 사람이 자기 혼자인 줄 알았는데 또 있으니까. 육순, 은혼식 이런 때 부르면 다 와." - 영화 <불온한 당신> 중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불온한 당신>은 1945년생 이묵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70대 성소수자다.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를 '동료' 내지는 '선배', '후배'라고 부르는 이묵씨의 삶은 영화 안에서 혐오세력들의 고함과 교차된다. 카메라는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성소수자들의 삶과 '동성애자=종북세력'이라는 이상한 등식이 성립하는 혐오의 현장을 나란히 보여준다.

"저는 그 영화를 울면서 봤어요. 가슴을 두드리면서... 혐오세력들 보고 정말 화가 났거든요. 포비아들의 행동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걸 그려야 하나 생각했죠."

퀴어 유튜브 채널 '수낫수(soo not sue)'를 운영하는 수(27)는 영화를 보고 "너무 화가 났다"며 가슴을 쳤다. 2015년 8월부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있는 그는 '퀴어 콘텐츠 제작자'이다. 이묵씨의 삶에 생채기를 냈던 혐오세력들은 그의 '후배'인 수의 마음에도 상처를 남기고 있다.

"퀴어 유튜버로 활동하다 보면 악플도 달리고 협박도 받아요. 제 개인에 대한 것뿐 아니라, '성소수자들, 퀴어문화축제 하면 칼로 찔러 죽이겠다' 이런 얘기도 해요. 같이 영상 작업하는 분들 얼굴 평가를 하고, 정신병자라고 말하기도 하죠."

혐오세력들의 큰 반발과는 반대로 그의 영상은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연대의 목소리가 되고 있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랑 똑같은 사람이 있네,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는 이들이 많다. 이런 반응들은 혐오세력의 악플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튜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제 18회 퀴어문화축제 홍보대사로도 활동한 퀴어 유튜버 수를 지난 16일 상수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도란이들 만 명 모이면, 약속대로 정모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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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유튜브 채널 '수낫수'를 운영하고 있는 수(27) ⓒ 수


"지금 도란이들이 9000명이에요. 만 명 모이면 약속한대로 정모해야죠. 이미 지역에서 도란이들끼리 많이 만나고 있어요. 자기들끼리 서로 친해져서 얼마 전에는 계곡으로 여행도 같이 갔다고 하더라고요. 점점 제가 소외당하고 있죠. (웃음)"

수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이들을 '도란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도란도란' 서로 정답게 얘기한다는 데에서 따왔다. 도란이들은 "수님의 전국투어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할 만큼 그의 활동을 열렬히 지지한다. '연예인들이 받을 법한' 이름 판넬을 선물해주고, 수의 사진을 이용해 '웃긴 짤'들을 만든다. 트위터에는 '팬심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팬 계정도 생겼다. 이런 도란이들에게 수는 '만 명이 모이면 만나자'고 약속했다.

아직 정모 전이지만, 수와 도란이들의 활동은 이미 온라인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퀴어문화축제 때에는 50만 원을 함께 후원하기도 했다.

"제가 같이 하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어요. 도란이들이 모은 돈에 제 돈을 더해 50만 원을 후원했어요. 단체로 후원하면 책자에 광고를 해주는데요. 유튜브 채널 광고가 실리니까 '내년에도 또 하자'며 도란이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같은 채널을 보는 분들이 같은 마음으로 한 거죠. 후원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한 어린 독자분들도 계셨어요."

'수낫수' 채널을 구독하는 도란이들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인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고민없이 바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수 있는 이들에게 그의 방송은 큰 힘이 되고 있다.

"'내가 동성을 좋아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울 때 할 수 있는 최선이 인터넷 검색이잖아요. 그렇게 유튜브에 찾아와서 영상을 보고는 '나랑 똑같은 사람이 있네,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위로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퀴어문화축제 때에는 한 분이 오셔서 제 손을 꼭 잡으시더라고요. 자기가 좀 늦게 알게 돼서 더 힘들었는데, 영상을 보고 마음 편히 정체화했다고 하셔서 저도 감동 받았어요."

"유튜브에 커밍아웃, 두려웠지만 꼭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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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제 18회 퀴어문화축제 부스에 참여한 모습. 그는 축제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 수


수가 처음부터 '퀴어 유튜브' 채널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다. 영상을 찍고 공유하는 걸 좋아해 유튜브를 시작했고, 초반에는 게임을 해서 올리는 '챌린지 영상'을 주로 찍었다. 챌린지 영상을 찍을 땐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나지 않아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퀴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겁이 났다". 유튜브에 올리는 퀴어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친구들은 '왜 그런 걸 찍느냐'고 묻기도 하고, 눈치 빠른 이들은 묻지 않고 수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 지난 7월 7일 수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커밍아웃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나는 27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여성 수라고 해." 그는 영상에서 잔잔한 목소리로 커밍아웃을 했다. 수에게도 "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도 엄청 두려웠어요. 그런데 퀴어 콘텐츠를 찍을 때부터 너무 하고 싶었어요. 커밍아웃을 하고 작업을 해야 맘이 편할 것 같더라고요."

"오랜시간 고민하고 끊임없이 주저하다"한 커밍아웃에 도란이들은 "응원을 받은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며 "용기 내줘서 고맙다"는 응원댓글을 달았다. 수는 '그동안 만들지 못했던 영상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유튜브 채널에 "게이들은 원나잇을 많이 하나요?"와 같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영상들을 많이 올리고 있다. '극단적인 커밍아웃 리액션' 영상의 경우 200명가량 퀴어들의 '최악의 커밍아웃 경험'을 모아서 만들었다. 그는 영상을 만들면서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 하는 작업이 또 다른 편견을 만들지 않기 위해" 더욱 신경 쓴다. 한편으론 논모노섹슈얼(Non-Monosexual, 하나 이상의 성별에 성적 끌림을 느끼는 사람)과 같이 성소수자 중에서도 덜 가시화된 이들의 얘기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퀴어 유튜버로 활동한 지 1년가량 됐지만 아직 유튜브로 큰 수익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그는 병원에서 일하다 지금은 작은 회사를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 유튜브에서는 지금까지 2번, 작은 금액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경제적인 부분에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퀴어 유튜버 활동을 통해 그는 많은 것을 얻었다.

"저에 대한 프라이드와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누군가 이 이슈에 대해 얘기할 때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고요. 무엇보다 바쁘게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

그는 앞으로 커밍아웃과 관련된 영상이나 단편영화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커밍아웃을 많이 다루지만 "속상한 것만 많이 보여준다"는 거다. "커밍아웃에는 좋은 부분도 있고 나쁜 부분도 있는 게 현실"인 만큼,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은 영상을 보여주고 싶단다. 그는 다가오는 10월 '커밍아웃 첫 번째 에피소드'를 다룬 단편영화를 유튜브에 올릴 예정이다.

"성소수자여도 괜찮아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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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첫 퀴어퍼레이드 참가는 2011년도 샌디에고에서 였다. 당시 찍은 사진. ⓒ 수


수는 19일 영화 <불온한 당신> GV 사회를 맡았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이묵의 얘기를 보고 한 외국인은 '영화가 너무 비극적'이라 평했지만, 그는 "오히려 희망적이라 생각했다".

"이묵 선배님도 후배들이 살 세상이 예전보다 좋아졌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하고 그런 작업을 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퀴어문화축제를 봐도 참여하는 연령대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요,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부모님 세대에서 바뀌기는 힘들겠지만 저희 세대가 어른이 돼 가면서는 조금씩 바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수치 역시 느리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동성애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2010년 15.8%에서 2014년 23.7%로 증가했다. '동성결혼에 대한 지지' 역시 같은 기간 16.9%에서 28.5%로 증가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성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성소수자에게 연대의 말을 전했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무서워하는 마음도 이해하고, '평생 커밍아웃 못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이해해요. 저도 얼마 전까지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본인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 존재 자체로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 말을 해주고 싶어서 이런 콘텐츠 작업을 하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자기 자신을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퀴어들이 있답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수낫수 #퀴어 유튜버 #인터뷰 100 #청년 인터뷰 #인터뷰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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