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문재인'과 국정원 댓글공작의 결정적 차이

[주장] '고마워요 문재인'이 여론조작이라고? 진짜 여론조작은 '댓글공작'이다

등록 2017.08.18 17:57수정 2017.08.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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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취임 100일을 맞아 '고마워요 문재인'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었다. 이 일을 두고 말들이 많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에서는 곧장 그것이 여론 조작이라면서 들고 일어났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지지 세력의 선동에 포털 검색어 순위가 순식간에 점령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럼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는 정말 여론 조작일까.

요즘 정국의 핫이슈로 떠오르는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에겐 미안하지만) 상식인이라면 누구나 국정원 댓글 공작은 여론 조작인 반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는 여론 조작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분명 그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하나는 여론 조작이고, 다른 하나는 여론의 발현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1. 댓글 알바는 돈을 받았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은 돈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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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교수,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퍼포먼스 지난 2013년 8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규탄 시국선언 교수 대학별 대표자 기자회견'에서 한 교수가 국정원의 범죄행위를 알리는 행위를 보여주자, 국정원 요원 역할을 맡은 교수들이 나타나 이를 감시하며 탄압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국정원TF의 발표에 의하면 댓글 알바는 인터넷에 댓글을 쓰는 대가로 국정원으로부터 알바비를 받았다 한다. 하지만 문재인 지지자들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돈을 주거나 받지 않았다. 이것이 두 경우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실제로 마이클 샌들(Michael Sandel)은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미국 사회가 애초의 건강한 시장 경제 사회(society of market economy)에서 시장 사회(market society)로 변질됐고, 그 저변에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시장 경제 사회에서도 시장에서 거래되지 말아야 할 가치들(사랑, 우정, 기본권, 학점, 장기 등)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삶의 점점 더 많은 측면들이 상품화(commodification)돼 가는 현실이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가, 우리가 사회와 맺는 관계가 타락해 가는 것을 보여준다고 개탄한다.


샌들의 관점에서 댓글 공작 사건을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와 구분하면서, 댓글 공작 사건을 여론 조작으로 비판하는 것이 가능할까? 분명 댓글 알바는 댓글을 국정원에 팔았고 국정원은 그것을 샀다. 반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에서는 그러한 매매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그 둘의 핵심적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왜냐하면, 인터넷 댓글과 같은 정치적 의견을 담은 글이 시장에서 매매되지 말아야 한다고 볼 근거가 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공공연히 정치적 의견을 담을 글을 시장에서 매매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도 많은 칼럼 기고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담은 칼럼을 주요 미디어에 기고하면서 원고료를 받는다. 그 칼럼기고자들과 미디어 회사 사이에서 글에 대한 매매가 이뤄진다는 말이다. 이처럼 칼럼에 대한 상품화가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칼럼이 여론 조작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댓글 알바가 댓글 작성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댓글 공작을 여론 조작 사건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2. 정치적 소신 표현과 지침에 따른 댓글 작성

지난 2007년 8월 10일 오후 한나라당 대선 후보선출 전북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린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당원들에게 인사한 뒤 나란히 자리에 앉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댓글 공작 사건은 국정원이 댓글 작성을 댓글 알바들에게 외주하청 준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때 특정한 정치적 논조, 즉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옹호하는 논조의 댓글을 작성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을 것이다.

이처럼 댓글 알바가 작성한 게시물의 논조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무관하게 국정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에 반해서 문재인 지지자들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에 참여한 것은 개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댓글 알바의 경우와 다르다. 바로 이 차이가 왜 댓글 공작은 여론 조작인데 반해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는 그렇지 않은지를 설명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댓글 알바들은 국정원 퇴직자들이나 이명박 지지자 단체의 회원들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댓글 알바들의 평소 소신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고, 그들의 게시물은 그러한 소신을 밝히는 글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지지자가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댓글 알바 역시 게시물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신념을 표했는지 여부를 통해서 그 둘을 구분할 수는 없다.

3. 표현의 자유가 발현됐는가, 발현되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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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알바에게는 중요한 게 하나 없었다. 바로 '선택권'이다. ⓒ pexels


먼저 자유(freedom)라는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자.

항상 군인이 되는 것을 동경해 온 철수가 마침내 입대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분명 철수가 입대를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다. 그럼 철수의 입대는 철수의 자유로운 행위라 말할 수 있는가? 적어도 국방의 의무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비록 철수가 기쁜 마음으로 입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수의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란 말이다.

철수의 입대가 자유로운 행위가 되기 위해선 철수가 입대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철수에겐 그런 선택권이 없다. 설사 철수가 마음을 바꿔 입대를 거부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는 국방의 의무 때문에 입대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철수가 입대 여부에 대해서 선택권을 갖지 않는 이상, 설사 그가 기쁜 마음으로 입대한다 하더라도, 그의 입대는 자유로운 행위가 되지 못한다. 적어도 '자유'에 대한 전통적 철학 이론에 따르면 그러하다.

문재인 지지자들이 '문재인 고마워요'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행위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그 이벤트에 참여할지 말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들의 참여가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를 발현하는 것인 만큼 그 이벤트는 진정한 민의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럼 댓글 알바의 게시물은 어떤가? 이명박·박근혜 지지자로 이뤄진 댓글 알바들은 게시물에서 자신들이 평소 신봉하는 정치적 신념을 드러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그들이 국정원의 지시를 받고, 국정원으로부터 알바비를 받은 이상, 그 게시물은 표현의 자유가 발현된 결과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댓글 알바들은 그 게시물의 논조에 대한 '선택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으로부터 이명박·박근혜를 지지하는 게시물을 작성하라는 지침과 함께 알바비를 받은 만큼, 설사 댓글 알바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바꿔 이명박·박근혜를 비판하는 게시물을 작성하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는 철수가 자신의 바람대로 입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생각을 바꿔 입대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철수의 입대가 그의 자유로운 행위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비록 댓글 알바가 게시물에서 자신의 평소 정치적 신념(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하는 신념)을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그 게시물은 표현의 자유가 발현된 결과물이 아니다. 국정원으로부터 게시물 작성 지침과 함께 알바비를 받으면서 댓글 알바는 표현의 자유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 점은 댓글 알바를 언론매체의 칼럼기고자와 비교해 보면 한층 분명하다. 칼럼기고자들이 미디어 회사로부터 원고료로 받는 돈은 엄밀히 말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대한 대가다. 그 원고료가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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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들의 칼럼은 표현의 자유가 발현된 결과물이고, 그에 따라 그것은 정당한 여론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 이에 반해 댓글 알바가 알바비로 받은 돈은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고 국정원의 지침에 따라 게시물을 작성하는 것에 대한 대가다(이 지점에서 국정원과 댓글 알바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매매함으로써 그것의 가치를 타락시켰다는 마이클 샌들식의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게시물은 표현의 자유가 발현된 결과물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필자가 다른 기사에서 댓글 알바의 게시물을 '좀비 언어'라 불렀던 이유이다(관련 기사 :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 '내란죄'로 단죄해야 한다). 

공론장 개념을 발전시킨 숙의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공론장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적이고 이성적인 논의의 장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공론장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그 참여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갖는 자유로운 시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실제 표현의 자유가 없는 이들이 공론장에 참여해 토론하고 숙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댓글 알바들이 인터넷 공론장에서 타인들과 함께 토론하고 숙의하는 것인양 행세하며 특정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좀비 언어를 생산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댓글 공작이 여론 조작인 이유이고 '고마워요 문재인' 이벤트가 여론 조작이 아닌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작성한 최성호님은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입니다.
#고마워요 문재인 #국정원 #댓글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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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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