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우표' 대기행렬 앞 1인시위, 그들의 속사정

집배노조, 전국 우체국 동시다발 1인시위... "일하다 죽는다, 국민조사위 구성 절실"

등록 2017.08.19 20:12수정 2017.08.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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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전국집배노조 소속 집배원이 고양일산우체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판매 첫날이었다. 우표를 사러 우체국 앞에 줄을 서 있던 한 시민이 집배노조 소속 집배원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 허소연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를 사기 위해 일찍부터 우체국 앞에 줄을 선 시민들, 그들의 시선이 대기행렬 앞 1인시위 피켓 앞에 멈췄다. 모자와 조끼를 입고 있지 않아 어색하지만,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전국집배노조 소속 집배원이었다.

피켓에 적힌 문구는 "국민진상조사위원회 구성으로 우정사업본부 적폐 청산하자." 집배원들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건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지만 국민진상조사위원회는 무엇인지, 우정사업본부 적폐는 또 무엇인지, 많은 시민들이 물어왔다. 궁금증이 다 해소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지면을 통해 국민들에게 왜 집배원들이 나서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지 알리고자 한다.

길 위에서 쓰러진 집배원의 이야기

"저, 저 집배원 계속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지난해 8월, 전라도의 한 마을. 집배원이 오토바이로 느릿느릿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길에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미동도 없는 그를 마을주민들이 하나둘씩 쳐다보며 다가온다. 불러도 의식 없는 그를 보고 놀란 마을 주민들이 급히 119에 신고했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결국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사진을 보니 맞네. 아이고 어쩌다가..."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진 뒤 한 할머니가 차마 빈소로 들어오지는 못한 채 밖에서 안타까운 탄식만 내뱉고 있었다. 할머니는 본인이 사는 곳 담당구역 집배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먼 길이지만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평소에 밝게 웃으며 친절하고 꼼꼼하게 자신에게 우편물을 손에 쥐어주던 그가 정말로 갑자기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담당구역의 집배원 사망소식에 장례식장까지 찾아오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그가 얼마나 성심성의껏 일했는지 알기에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해 사망한 한 집배원의 사연이다. 그는 친절했고 자신의 일을 사랑했으며 성실했다. 이렇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채 열심히 일만 하다 사망한 우정노동자가 올해만 12명이다. 과로사가 5명, 자살이 5명,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2명이다. 한 달에 두 명씩 늘어나는 숫자를 세고 있노라면, 또 사연 하나하나를 듣고 있노라면 우정사업본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 된다.

우정사업본부의 허울 좋은 이름표... '고객만족도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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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사업본부


"우리가 주로 해야 하는 일은 법을 지키지 않는 영세사업장 감독이예요. 왜 이렇게 역사가 오래되고 큰 기업에서 문제가 일어나는지 이해가 쉽지 않네요."

올해 초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하러 고용노동부에 갔다가 담당자에게 들은 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130년 역사에 직원 4만5000여 명, 1년 예산 110조 원의 거대정부기관이다. 우리나라의 우편송달업을 독점하고 있으며 보험·예금·쇼핑까지 겸하고 있는 그야말로 복합 기관이다. 고용노동부도 같은 정부기관인 데다 이렇게 큰 규모의 사업장을 감독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18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라는 우정사업본부의 허울 좋은 이름표 속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처참한 노동 조건을 알려내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전국집배노동조합이 연구소와 협업해 낸 연구보고서 한 부, 연이은 죽음과 우본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한 기자회견 20여 차례, 바쁜 배달업무에도 도움이 될까하여 밤 10시에 퇴근하면서 협조한 언론사 동행취재 인터뷰 80여 건, 전국 팔도에서 진행한 1인 시위 수백 건...

전국집배노동조합은 지난 2016년 4월 13일 설립 이래로 평균 5일에 한 번씩 언론에 나고 이틀에 한 번씩 1인 시위를 했으며 매일 같이 노동 조건이 나아지기 위한 방향을 고민하고 토론했다.

처음에는 응원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우체국 안에서는 홀대받지만 배달만 나가면 물부터 간식까지 챙겨주는 시민들 덕분에 주머니가 꽉 찼다. 그 후에는 수많은 언론에서 집배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쯤 되니 국회의원들도 하나둘 손을 내밀고 지난 6월에는 최초로 고용노동부에서 같은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 대해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6월 1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추경예산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집배원 과로사를 언급했다.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청와대부터 시민까지 모두가 우정사업본부의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통령도 언급한 집배원 과로사... 우정사업본부는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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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철옹성인 우정사업본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돌아가신 집배원들은 '개인적인 질병으로 죽은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다. 책임 회피를 넘어 고인을 두고 "한사람 몫을 못했던" 직원이라고 인터뷰한 관리자도 있었다. 이외에도 "집배원들은 괜히 일찍 출근한다" "초과근무수당을 고정수당처럼 여겨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등등의 발언을 하고 했다.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것이 우정사업본부의 가장 큰 적폐다. 이처럼 우정사업본부와 집배노조와의 갈등은 이미 개별 노사관계로는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집배노동자 과로사·자살방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집배원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지난 8월 10일 광화문 광장에서 공식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에 국민조사위원회와 집배원 대폭 증원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산업안전보건주간에 '대형인명사고의 경우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 집배노동자 조사위원회를 구성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전국집배노동조합은 대책위 공식 출범 이후 8월 14일부터 전국 우체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더 이상 집배원의 죽음을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정부의 책임 있는 개입과 조사위원회 구성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이 장시간 공화국의 오명을 벗고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일을 하다 정말 죽어버리고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으로 집배노동자에 대한 국민조사위원회 구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작성한 허소연님은 전국집배노동조합 선전국장입니다.
#집배원 #집배노조 #우체국 #우정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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