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을 10년째 떠나지 못하는 한국인들

수단 기생충 퇴치 위한 집단 투약, 9월부터 실시

등록 2017.08.23 19:59수정 2017.08.2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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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물을 한번이라도 마신 자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

사하라 사막의 끝이자 시작을 알리는 곳, 바로 수단의 대표적인 속담이다.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이 에티오피아와 남수단을 거쳐,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에서 비로소 완전한 나일강으로 합체되어 이집트로 흘러간다. 수단 주민들에게 나일강이란, 이들이 마시고, 씻고,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곳으로, 생명의 원천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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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일강 수단 알 자지라 주를 흐르는 청나일강이다. 한 가족이 강가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차승만


10년 전 나일강 물맛을 보고 아직까지 나일강을 떠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있으니, 수단기생충퇴치팀이 그들이다. 이 팀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 교실 홍성태 교수,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 교실 이영하 교수, 그리고 건강관리협회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홍성태 교수와 이영하 교수는 2008년부터 수단 기생충퇴치 사업에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고, 건강관리협회(회장 채종일)에서 세 명의 직원이 수단 현장에 사업관리자로 파견을 다녀왔다. 현재는 조대성 소장과, 이진무 과장이 사업 코디네이터로 수단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당 팀은 2008년 나일강의 두 지류 중 하나인 백나일강 유역에서 주혈흡충을 퇴치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여 10년 째 기생충 퇴치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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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일 강에서 물을 긷는 아이들 아이들은 물을 긷기 위해 백나일강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 주혈흡충에 감염된다. ⓒ 차승만


주혈흡충증은 대표적인 '소외열대질환'인데, 소외열대질환은 사하라이남과 동남아시아, 중남미 대륙에 속한 열대와 아열대지역 저소득국가에서 주로 발생하는 풍토병을 지칭한다. HIV/AIDS나 결핵은 지역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특히 고소득국가의 주민을 크게 위협하여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막대한 규모의 기금이 형성됐다.

이와는 달리 이들 열대풍토질환은 주로 저소득국가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서 주로 발생하고, 고소득국가의 주민을 위협할 가능성이 낮아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소외당하고 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WHO가 이를 빗대어 '소외열대질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창궐하는 질병


길이 끝나는 그곳, 그곳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바로 이곳에서부터 소외열대질환이 창궐하기 시작한다. '길이 끝나는 데서 시작하는 질병'이라는 표현 역시, 소외열대질환이 발생하는 지역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없을 만큼 외지고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을 두고 나온 말이다. 또한 저소득국가의 주민들이 오래 전부터 이들 질병을 이렇게 부르는 데서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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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뜨러 가는 아이 나일강에 접촉하면 주혈흡충증에 감염될 수 있는 것을 안다해도, 이 아이는 물을 접촉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가 없다. 취약지역의 여성과 아이들은 늘 주혈흡충증 감염의 위험 속에 살고 있다. ⓒ 차승만


이들 질환이 저소득국가의 취약계층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주거 및 생활 환경에 있다. 주혈흡충은 물 속에 서식하는 민물달팽이와 사람 사이를 계속 오가며 생존과 번식을 이어나간다. 이들이 이러한 전파고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이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대변과 소변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건, 이들이 마시거나 접촉하는 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들어있는 대변과 소변은 이렇게 나일강이나 또는 마을 내의 크고 작은 호수, 심지어 사탕수수 농장의 관개수로로 흘러 들어가고, 기생충의 유충은 다시 물 속의 민물달팽이로 스며들어 서식과 성장을 거친 후, 오염된 물에 접촉한 주민들의 피부를 통해 사람의 몸 속으로 침투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2억 5천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으며, 매년 최대 20만 명의 사람들이 이로 사망하고 있다. 피가 섞여 붉은 '피오줌'을 보기도 하며 빈혈 증상이 나타나고, 주혈흡충의 종류에 따라 방광암이나 간경화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이 질병을 예방 또는 치료하기 위해서는 매년 1~2회 프라지콴텔이라는 구충제를 복용하면 된다. 그리고 약값은 불과 1불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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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혈흡충(Schistosoma)의 생애 ⓒ Flickr.com


수단 주민들이 나일강에 들어가는 이유는 마실 물을 뜨거나, 빨래를 하거나, 가축에 물을 먹이거나, 목욕을 하거나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다. 또한 사람들의 대소변이 강물로 들어가는 주요 원인은 가구 별로 주민들의 대소변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고소득국가의 주민은 언제나 깨끗한 물과 위생적인 화장실에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 자체가 매우 낮다. 그러나 수단 주민들 특히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은 매일매일 생계를 위해서라도 나일강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을 수가 없다. 깨끗한 물과 화장실이 없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수단기생충퇴치팀은 한국정부(외교부, KOICA)의 공적개발원조사업으로 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08년 이후 2015년까지 수행된 1~2차 사업으로 수단의 백나일강 유역의 주혈흡충증 유병율을 사업 이전 대비 최대 75% 이상을 줄이는 큰 성과를 내었다. 지역 내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기생충 검사를 실시하고, 대규모 투약을 꾸준히 진행한 결과였다. 또한 주민들이 주혈흡충이 없는 깨끗한 물을 마시고 사용할 수 있도록 정화시설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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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정화시설 오염된 물을 접촉하는 기회를 줄이기 위해서 식수정화시설을 설치하였다. ⓒ 차승만


그런데 2016년부터 수행하고 있는 3차 사업은 사업의 영향력을 수단 전역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특정 지역에서의 일시적 기생충 유병율 감소효과는 자금 지원이 중단되고 나면 언제든지 다시 원래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위험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다. 그래서 전국단위사업에서는 기존 원조사업에서는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획기적인 활동을 수행하였다.

수단 전국민의 주혈흡충 유병율을 파악하기 위한 대규모 전국단위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이는 수단 전국민을 대상으로 기생충 유병율 검사를 실시하여, 이 결과를 바탕으로 수단 보건부가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WHO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수단 내 기생충 퇴치를 위한 공동의 협력을 요청하도록 하는 근거자료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대한민국 영토의 12배나 되는 드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전 국민의 기생충 유병율을 대표할 만 한 전국단위 조사를 한 원조사업 사례는 전 세계를 놓고 봐도 많지가 않다. 그만큼 매우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충분한 자금지원, 그리고 수원국 정부의 전적인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700만 수단 기생충 조사, 드디어 '일'을 내다

해당 팀은 지난 2016년 12월부터 수단 전역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하여 2017년 7월 전국단위 1차 조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수단 주민 3700만 명의 기생충 유병율을 지역별로 조사하기 위해 전국을 약 400여 개의 작은 단위로 구분하고 약 2천여 개의 초등학교의 초등학생 10만 명을 대상으로 대변과 소변 검사를 실시하였다.

이를 위해 700명의 인력과, 총 100여 대의 차량, 400여 대의 현미경과 원심분리기가 동원되었다. 한국의 원조사업으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대규모 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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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변 수집 전국단위 조사단 중 현장 검체 수집팀이 학생을 대상으로 대소변을 수집하고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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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관리 수집한 대소변을 본격적으로 검사하기에 앞서, 코딩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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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 도말 과정 대변검사를 하기 위해 슬라이드에 대변을 도말하고 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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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 검사 현미경을 활용 대소변 검사를 통해 주혈흡충 감염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 차승만


수단 최초 전국 단위 조사,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수단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전국 단위 기생충 조사의 성공은 이미 놀라운 후속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선 본 기생충사업팀의 조사를 바탕으로, 수단 내 전국민을 대상으로 구충제를 투약할 수 있는 자금인 150만 파운드(한화 22억 원)를 주혈흡충관리기구(Schistosomiasis Control Initiative/SCI, 아프리카지역 주혈흡충 문제 해결을 위해 빌게이츠재단과 USAID의 자금지원을 받아 2002년에 형성)에서 지원하기로 확약하였다.

이에 따라 수단 보건부는 KOICA 사업을 통해 금번 조사된 기생충 유병율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단위 집단투약을 이번 9월부터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조사팀의 조사결과가 아니었다면 전국단위 투약은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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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기생충퇴치팀 수단 보건부 무삽박사 및 나히드 박사 (맨 우측 및 좌측), 건강관리협회 조대성 소장 및 이진무 과장 (가운데)이 수단 전역 18개 주에서 700여 명의 조사팀이 태블릿 PC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데이타의 수집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 차승만


아울러 지난 8월 10일, 수단 보건부는 전국단위 조사의 성공과 주혈흡충 관리기구의 지원에 고무되어 WHO·월드뱅크 등 주요 국제기구와 원조기관을 초청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전국단위 기생충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수단 내 기생충 퇴치를 위한 공통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이 회의를 통해 월드뱅크와 주혈흡충 관리기구 등이 먼저 향후 4년 간 수단 내 소외열대질환 해결을 위해 3700만 불(한화 422억 원) 가량을 지원할 것을 확약하였다. 한국정부의 원조사업으로 전국단위조사 수행을 위해 약 10억 원 가량을 투입했으니, 세금납부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투자대비 45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내어 수단 내 가장 취약한 계층의 생존을 위하는 일에 재투자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매우 놀랄만한 성과가 아닐 수가 없다.

특히 아직 원조의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한국의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활약하여, 수원국 정부의 역량강화를 이끌어냈다. 아울러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을 견인한 것은 주목 받기에 충분하다. 본 사업은 한국원조사업의 주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홍성태 교수는 본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 공로를 10년에 걸친 한국대사관(전 이병국 대사, 현 이기석 대사)의 전적인 지원과 협조로 돌렸다. 

전국단위 기생충조사를 위해 현지에 파견된 조대성 소장은 이번 성과의 주요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흔히들 원조사업이라 하면 병원을 짓거나,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에게 플럼피 넛을 주는 것을 연상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때 전국단위 기생충조사라는 것이 실체가 없어 보여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WHO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전 세계의 기생충 지도를 그리는 것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고, 그를 위해 국가 단위의 기생충 조사를 가장 우선순위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동향을 미리 내다 본 건강관리협회와, 이 사업에 과감히 자금지원을 해준 KOICA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현지 정부를 설득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대사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수단 기생충 퇴치팀은 여전히 수단 전국을 누비며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일강 맛을 보았기 때문에, 이들은 나일강을 영원히 떠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수단의 모든 어린이들이 주혈흡충증 감염의 위험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이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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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나나 초등학교 아이들 구충제 투약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다. (백나일강 유역 케나나 초등학교의 학생들) ⓒ 차승만


덧붙이는 글 차승만 시민기자는 2016년 10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수단을 총 4회 방문, 약 70여 일을 체류하며 수단기생충퇴치팀의 전국단위 기생충 조사 현황을 취재했습니다.
#수단 #주혈흡충 #전국단위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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