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진짜 군인들의 이야기

- 여군은 초콧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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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혜영(challenge97)등록 2017.08.21 15:22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 표지 ⓒ 설혜영


"앞으로는 치마폭이나 눈물에 기대지 말고 초콧릿을 원하지도 말라. 자신이 여자인 것을 잊고, 절대 여자로서의 특혜를 기대지 말라." 

역사적인 여군단 해체 당시 육군본부의 인사참모가 여군단 주요 간부들을 모아 놓고 한 이야기다. 다시 태어나도 군인이 되겠다고 할 정도로 군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고 한 명 한 명의 동료, 후배 여군들과 사랑한 피우진 소령은 그냥 넘기지 않는다. 까라면 까는 사명하달 계급 문화에서 피우진 소령은 처절하게 싸워왔다. 결국 온 몸 바쳐 사랑했던 군에서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됐지만 결국 피우진 중령은 보훈처장으로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가장 파격적인 인사 중 하나였던 피우진 보훈처장.
특전사 중대장과 육군 205 항공대대 헬기조종사 등 남성 군인들도 감당하기 힘든 길을 걸어왔고 여성 첫 헬기 조종사. 최초의 여성 그리고 첫 여성 출신이자 첫 예비역 영관급 출신 보훈처장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피우진 보훈처장의 이력은 더욱 놀랍기만 하다.

우연히 보게 된 여군 장교 모집 포스터 보자마자 전기에 감전되듯 이게 내길 이라고 생각하고 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1979년 소위로 임관했다. 여군중 유일한 전투요원인 특전사 중대장 근무, 대한민국 1호 여군헬기 조종사 처절으로 d여군조종사의 길을 만들어 왔다. 여군 장교로 처음으로 국방참모대학 수료하고 합동참모본부 근무, 민군합동선수단 88사격단 중대장으로 86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 부당한 4군 장성의 요구에 맞서다 조직 내 왕따가 되다. 수모스런 최초의 항공단 소령 소대장,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단장 성희롱 사건 때 국방부에 근무하면서 과감하게 인터뷰에 응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1997년 국방참모대학 현지 훈련을 가는 길 ⓒ 설혜영


이렇게 남성중심의 군대 문화에서 유일, 최초로 여성의 자리를 개척해온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피우진 중령을 불편해하는 군대 내부의 배재로 인해 진급이 막혀 있을 당시 고맙게도 중령으로 진급할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다. 게다가 4성장군의 명령이었다. 밤 늦은 시간 나이트클럽 호출을 거부하고 부하 여군들을 낮술 자리에 보내라는 명령에 전투복을 입혀 보낸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사건이다. 능력이냐 치마냐라고 물을 정도로 여군은 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미스코리아를 뽑는 것도 아닌데 여군후보생 선발 면접은 단정함 이상의 미모를 요구했고, 일과 교육시간에도 스커트 정복을 입게 했다고 한다. 바쁜 후보생 시절 화장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맨얼굴에 똑같은 빨간색 루주를 돌려가며 바른 모습은 희극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피우진 소령은 괴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모습이 처절하게, 생생하게적혀 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진짜 군인들의 이야기
얼마 전 공관병 갑질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공관병에게 개인적인 잡무를 시키는 것도 얼굴에 음식을 던지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보도에 다시 한번 군의 명예가 또 한번 군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군에 대한 뉴스들은 대개 암울하다. 고질적인 군납비리, 고위직 유명인들의 군 입대 회피,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이자 고여 있는 집단으로 취급 받는 것이 우리나라의 군대 조직이다. 새로운 대통령, 국방장관이 국방개혁의 화두는 신뢰받는 군대다. 그럴 정도로 우리나라 군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군, 군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군인들이 생각하는 직업의식은 어떤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입대하여 국방부 시계는 어떻게든 흘러간다는 사병들의 한탄에 섞인 군대 이야기 말고 직업군인들이 생각하는 군대와 군인의 이야기는 거의 묻혀 있던 영역이다.

피우진 중령은 군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특전사 중대장 시절 피우진은 몸으로 전우애를 보여준다. 특전사는 4주간의 기본 훈련을 축하는 의미로 마지막 고공낙하에서 상급간부가 축하하는 의미로 함께 뛰어내리는 전통이 있다. 축하점프라고 하는데 위험부담이 큰 일이기 때문에 교대로 돌아가거나 되도록 회피하려고 한다. 소대장 정도가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보통 중대장은 축하점프에 함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피우진 중령은 본인이 가르친 훈련병이 아닐 때에도 축하점프에 함께 했다. 상급자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단체로 기를 끌어 모으며 함께 하는 분위기를 좋아한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것이다.

1995년 항공단 시절, 훈련 나가기 전 모습 ⓒ 설혜영


"나는 훈련에 참가하여 작전 브리핑을 들을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곤 했다. 용기가 필요한 자리, 온몸을 바쳐야 하는 자리들에서 나는 오히려 삶의 활력을 맛보고는 하였다. 영외에 있다가 비상이 걸려 택시를 타고 급히 출근할 때에도 기분 좋은 쾌감을 느꼈다. 겨울날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새벽에 순찰을 돌다가 총을 들고 우뚝 서있는 병사들을 보면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전우'라는 단어는 그렇게 늘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

이랬던 그가 처음으로 군인의 길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한 일이 있었다.

"병아리들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처참하리만치 오만과 오기로 가득 차 있는 그녀가 한심스럽다. 아직도 나는 군인이 덜 되었단다. 그런 것이 군인의 길이라면, 차라리 나는 군인의 길을 걷지 않으리라"

여군 훈련소 중대장으로 근무 당시의 피우진 중령의 일기다. 80년 여름 광주항쟁 직후 경직된 군대 분위기에서 군 창설기념일 행사용 태권도시범 지도를 맡게 되었다. 관심이 집중된 행사였기에 여군단장은 직접 연습 상황을 점검하러 왔다. 시범을 본 후 여군단장은 이따위 밖에 못하냐고 하면서 이정도밖에 안되니까 니들이 부사관이나 하고 있다는 식의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하고 학과 훈련을 전폐하고 태권도 교육만 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때 피우진 소령은 그 명령을 거부한다. 부사관 후보생들이 교육을 마치고 행정업무에 배치되었을 때 필요한 교육을 일회성 태권도 행사로 미뤄둘 수 없다는 이유였다. 태권도 시범이 엉망으로 끝난다 해도 수업을 전폐할 수 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오히려 태권도 연습을 중단시켜서 여군단장의 폭력적인 행위에 항의 했다.

목숨을 건 고공낙하를 흔쾌히 감당하고, 비상이 걸려서 출근할 때 쾌감을 느끼는 사람,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불합리한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는 모습, 자신의 이익에 관련한 것이 아니라 후배 여군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함께 아파하는 모습을 읽으며 내가 알던 군이 다는 아니구나를 생각하게 했다.

내가 읽은 책은 2017년 5월25일 발행한 초판 2쇄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임명된 날이 5월17일이었으니 따끈따끈한 책이다. 2006년에 펴낸 책이 이제 새롭게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피우진 보훈처장의 삶을 통해 군에 대한 이미지가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몰랐던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군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하고 그로 인해 국방장관의 일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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