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콩 사지 마" 치매 어머니의 '콩 할머니 사랑'

다른 사람 챙겨주던 어머니의 모습, 인생 교과서 됐다... 면보다 파가 많은 라면 먹기도

등록 2017.08.24 15:30수정 2017.08.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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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밖을 자꾸 내려다보시는 어머니를 보았다. 밖에 나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고관절 수술로 인해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하는 어머니의 한쪽 다리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어머니, 힘드시죠? 맛있는 거, 드시러 가실래요?"
"괜찮아. 아들 먹어. 배불러."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일석삼조의 행복을 누리기로 했다. 대형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시켜 드리고, 걸으며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대접하고 싶었다. 어머니를 차 앞자리에 앉혀드리고 천천히 아파트 정문을 나섰다. 신호등에 걸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 할머니 머리가 허옇다."
"누구요?"


어머니가 말씀하신 쪽을 보니, 아파트 정문 옆에서 장사를 하는, 채소와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이다. 언젠가 대화를 나누었는데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을 팔러 나온다고 하신 기억이 났다.

"노인네. 뭐해?"
"저 할머니, 채소 파세요."
"장사해? 음..."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상황 파악을 잘하시는 걸 보니 오늘은 왠지 어머니 상태가 좋아 보였다. '머릿속 지우개'의 활동이 약해진 것 같았다. 가출 사건 후 신경 써드린 보람이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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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직원이 어머니를 좋아했다 ⓒ 나관호


어머니와 장 보기

대형마트에 도착했다. 처음 와 보시는 곳이라서 그런지 신기하신 모양이다.

"아이고, 크네. 사람들 좀 봐."
"사람들 많지요?"
"아이고, 여기 주인은 부자네. 누구야? 참..."


어머니는 연발 감탄사를 내놓으신다. 시장하실 것 같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구경삼아 천천히 걷다가 제과 코너 앞에서 시식용 빵을 넣어드렸다. 다른 코너에 있던 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어머니에게 빵을 직접 넣어주었다. 고마웠다.

"음... 남에 것 주지 마. 배불러."
"할머니! 이것은 맛보라고 놓는 거예요. 더 드셔도 돼요."
"미안해. 음..."
"어머니가 치매로 고생 중이세요. 고맙습니다."
"그러신 것 같았어요. 우리 할머니도 치매세요."


치매환자 가족을 만난 것이다. 직원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사람들이 주변에 보였다. 어머니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봐 주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어머니를 소개했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세요. 예쁘시죠?"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도 따라서 박수를 치셨다. 사람들 앞에 어머니 상태를 내어놓고 사람들과 교제하도록 한 것 참 좋았다. 치매 환자 가족들에게도 관하고 싶다. 당당히 치매 어머니를 사람들 속에서 교제하시도록 하라고. 만남은 힘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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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매장에서 앞에서 ⓒ 나관호


두부 코너, 불고기 코너에서도 시식을 했다. 이제는 적응이 되셨는지 배부르신 것도 잊은 채 반찬 맛을 보고 싶다고 하신다. 쇠고기가 노인들 기억력에 좋다기에 장조림용으로 좋은 고기를 샀다. 자전거 매장 앞에서는 기념 촬영도 했다. 채소 코너를 지나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거 사지 마."
"안 살 거예요."
"그 할머니한테 사."


순간 어머니 마음속에 그 아파트 앞에서 장사하시는 할머니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사과장수 아주머니에게서 상한 사과만 사셨던 기억을 하시나 보다. 당신의 모습같이 늙은 그 할머니를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검은콩을 사려고 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콩 사지 마. 할머니한테 사."
"그 할머니는 채소만 팔아요."
"아니야. 콩도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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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가 선물해준 어머니 스케치 모습 ⓒ 나관호


콩 할머니에 대한 사랑

그 할머니들이 채소를 파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이유는 그 할머니가 집으로 가셨거나, 채소를 누가 다 사가면 어머니의 기쁨도 사라지는 것이기에 마음이 급했다. 서둘러 갔다. 다행히 그 할머니가 보였다.

"어머니, 채소 할머니 계시네요? 잠깐 차에 계세요. 제가 갔다 오죠."
"나도 가."


그런데, 그 채소 할머니에게 가 보니 어머니 말대로 검은콩도 있었다. 어머니가 어떻게 아셨을까?

"할머니! 상추 얼마예요? 콩은요?"
"2천 원만 내슈, 콩은 7천 원이유."


콩 할머니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어머니슈? 근디, 할머니 젊으시네? 머리도 안 세시구유."

어머니가 신나는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이 사람이 우리 아들. 내 머리 염색해 줘. 아들이..."

나는 2만 원을 내고 콩 두 봉지와 상추를 샀다. 거스름돈은 물론 안 받았다. 어머니의 철칙을 지켜야 하니까. 그 후부터 콩은 좀 비싼(?) 값에 그 할머니에게 산다. 어머니가 가끔 콩 할머니에 대해 물으시고 '콩을 샀느냐'고 확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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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게 된 검은콩과 대파 ⓒ 나관호


콩 할머니의 마음을 사다

그 할머니가 계신지 안 계신지 보지 못했어도 어머니가 물으시면 그냥 계신다고 말했다. 그래야 어머니 마음이 편하시니까. 할머니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셨다. 나의 하얀 거짓말에 속아 마음을 편히 가지시는 어머니를 보며 풋풋한 마음을 느꼈다.

플라톤은 "남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도 결정된다. 남에게 행복을 주려고 하였다면 그만큼 자신에게도 행복이 온다"고 했다. 어머니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삶 속에서 이미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셨던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 챙겨주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콩 할머니에게 자꾸 마음을 쓰시는 것을 보면서 어머니에게서 따뜻한 인생을 배웠다. 파 한 단, 콩 한 봉지를 사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어머니에게는 큰일이다. 왜냐면 콩보다 콩 할머니의 마음을 사는 것이니까.

치매 어머니가 천국에 가셨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마음을 실천 중이다. 어디든 할머니들이 장사를 하시면 남아 있는 채소와 파를 모두 사기도 한다. 할머니의 하루 벌이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면발보다 파가 많을 때가 있다. 나는 파를 좋아한다.
덧붙이는 글 나관호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작가이며,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운영자로 세상에 응원가를 부르고 있으며, 따뜻한 글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냈고, 기윤실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로,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와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돕는 구원투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기도 하다.
#치매 어머니 #콩 할머니 #파, 채소, 콩 #나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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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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