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달걀' 파동, 탈원전 논란과 닮았다

인간의 욕심 과도하게 부추기는 현대 사회, 스스로 파멸 불러올 수 있어

등록 2017.08.22 17:02수정 2017.08.2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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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이 아빠는 요즘 정말 좋으시겠다. 그 귀한 달걀을 마음대로 드실 수 있으니 말이야."


지난 주 가게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 엄마로부터 전해들은 말입니다. 아이 엄마 동료 한 명이 새삼 제 '안부'를 물으면서 '달걀'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아이 엄마의 동료 등에게 네댓 차례 달걀을 준 적이있습니다. 아이 엄마 동료와는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얼굴을 못 본 게 최소 5~6개월은 되는 듯합니다. 오랫동안 상면하지 못한 제 안부를 물어준 것은 고맙지만, 왠지 저의 안부보다는 달걀에 방점이 찍힌 듯 했습니다.

달걀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이토록 크게 받아본 적은 평생에 걸쳐 없는 듯합니다. 1년도 채 안 된, 지난해 말에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뭇사람들로부터 '달걀 부러움'을 산 적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 "재벌 '이아무개'도 이런 달걀 잘 못 먹을걸")

아기 주먹만한 먹을거리 덕분에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기는 했지만 사실 기분이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작은 안도감 같은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최대한 자연의 일부로 살고 싶어 이른바 '귀연 생활'을 시작했는데, '크게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텃밭 한구석에 40평 안팎의 닭장을 마련하고, 닭을 키운 지 1년이 좀 넘은 거 같습니다. 그간 닭의 숫자는 좀 늘었다 줄었다 했는데, 현재 암컷 10마리 수탉 1마리가 닭장 안을 어슬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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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거나 알이 벌어진 포도를 먹고 있는 닭들. 매일 달걀을 훔쳐 오면서 건강한 달걀을 먹자는 나의 욕심으로 인해 달걀이라는 생명이 희생돼 죄스런 마음을 떨치기 힘들다. ⓒ 김창엽


시골에 살긴 하지만, 언론을 통해 이번에 살충제 얘기를 접하기 전에는 닭장(혹은 닭)에 농약을 뿌릴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몰랐습니다. 농사랍시고 햇수로 9년째 짓고 있는데, 지금까지 닭 같은 가축은 물론, 이런저런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 살충제나 제초제를 제 손으로 뿌린 적은 단 한차례도 없습니다.

전쟁으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여름철 풀과의 싸움에서 매번 패배하고, 풀에 대해 지독한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제초제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초제 또 살충제를 사용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건 '귀연' 생활을 접기로 마음 굳혔을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충제 제초제 등 농약 사용의 '불가피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는 것일 뿐, 독성 물질 없이는 현실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아니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면 다소의 과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농약 없이도 농사는 지을 수 있는데 한국인들, 아니 온 인류의 사고방식이 확 바뀌어야 가능할 거 같습니다.

까짓것 농약이 뭐길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농약 사용 전면 금지는 현대인들의 삶, 그 기저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올해로 6년째 포도를 따 먹고 있습니다. 집 주차장 옆에 6그루를 심었는데, 제법 잘 자랍니다. 포도 송이도 얼핏 보면 주렁주렁 많이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번듯한 포도송이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벌레로부터 자유로운 포도송이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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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파먹은 포도 알들이 보인다. 올해로 6년째인가 포도를 따 먹는데, 지금까지 수확한 수백송이가 넘는 포도 가운데 멀쩡한 것은 거의 한송이도 없었던 것 같다. ⓒ 김창엽


올해 초 집 동쪽 입구에 있었던 복숭아 나무 4그루를 다 베어 없애야 했습니다. 매년 큼지막한 복숭아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열렸던 나무들이었습니다. 해마다 그루당 적어도 80~90개 이상 복숭아가 열렸는데, 지난 6년 동안 벌레 먹지 않은 복숭아는 20개도 보지 못한 듯 합니다.

포도와 복숭아뿐만이 아닙니다. 마늘도 그렇고 블루베리도 예외가 아니며, 지난해의 경우에는 감자 수확도 형편 없었습니다. 자급자족이 귀연생활의 목표였는데, 지금은 반쯤은 포기했습니다. 농사가 엉망인건 무엇보다 제 노력이 부족했고, 또 농사 기술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문하고 싶습니다. 농약이나 인위적인 화학물질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포도나 복숭아 풍작을 거두는 방법이 있을까요? 시골에서 트랙터만 있다면, 60~70대 농부도 1만~2만평 정도 쌀농사가 가능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기계의 힘만으로는 소비를 충족시킬만한 쌀을 생산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뚱딴지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농약 사용은 작금 논란이 되는 원자력발전 문제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원전은 최소한 한때 경쟁력이 있는 발전 수단이었습니다. 지금도 또 미래에도 그럴지 안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장 원전 발전을 올 스톱 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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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가지에 다닥다닥 징그럽게 붙어 있는 벌레들.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고추를 다수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김창엽


전세계적인 농약 사용 중단이나 원전 발전 중단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농약 사용이나 원전 가동 확대는 아마도 답이 아닐 것입니다. 높은 효율에 매달린 나머지 크든 작든 인명의 희생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사안들인 까닭입니다.

살충제 달걀 사태가 종국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너무도 뚜렷합니다. 먹을거리와 관련해 현대인들은 섭리와 자꾸만 동떨어져 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전 같은 산업도 그렇고, 심지어는 교육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욕심 혹은 탐심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체계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기적으로 혹은 겉으로는 효율적인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또 결국에는 스스로 파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 그런 세상 말입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은 생경한 듯하지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킵니다. 그는 옳으냐, 그르냐는 안중에 없고 이기냐 지느냐 만을 따지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살충제 달걀은 생산농가든 소비자든 가릴 것 없이 이기고 지는데 즉, 이를 경제적 측면에서 표현하자면 돈을 더 버느냐 덜 버느냐에 온통 관심을 갖은 결과가 아닐까요.

사족을 붙이겠습니다. 매년 봄 집 동쪽을 화사하게 밝히던 해충으로 인해 병들었던 복숭아 나무의 꽃을 내년부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는데요. 복숭아 꽃만이 아니라 윤이 반들반들나던 진갈색 등을 가졌던 복숭아 즙을 먹고 살던 장수풍뎅이 일가족도 이제 못볼 거 같습니다. 자연처럼 사는 게 참 간단치 않네요. 
덧붙이는 글 마이공주 닷컴(mygongju.com)에도 게재합니다.
#달걀 #살충제 #자연 #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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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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