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진' 보고 '그 날 찍힌 것 맞냐'던 친구, 멱살 잡고 말았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와서 다시 읽은 소설 <소년이 온다>

등록 2017.08.22 11:16수정 2017.08.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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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 <택시운전사>의 흥행과 함께 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이전의 영화와 소설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의 곳곳에서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속 장면들이 보였다.

2016년 초 우리 문화계의 커다란 경사는 단연 작가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의 수상소식이었다. 굳이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리 작가의 문학작품이 해외의 평단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기쁘게 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가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된 것 역시 작가 한강의 오랜 팬으로서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작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당연히 국가적인 경사였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와대에 대통령 명의의 축전을 보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나온 말에 따르면, 대통령은 작가 한강이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는 이유로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직접적 원인이 바로 그의 여섯 번째 소설 <소년이 온다>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와 함께 소설가 한강을 대표하는 작품이고, 지난 2014년 발표된 이후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 대해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그리고 독자들을 향해 덧붙인다. "한강이 쓴 광주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 책의 내용 일부를 발췌하고 요약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미 다 아는 얘기임에도 다시 떠올릴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의 상처가 아프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우리에게 말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원래 제목은 '여름의 당신'이었습니다. 소년이 건너가지 못한 여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낭만적으로 보일까봐, 그래서 바뀐 소설의 제목이 '소년이 온다'입니다."


취재 중 한강이 알아낸 것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 팔십만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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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표지 ⓒ 창비

작가는 소설의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가감 없이 전한다. 그가 열 살이 되던 해, 어른들은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나지막이 그 날의 끔찍했던 일을 얘기한다.

"재작년에 희영 아가씨하고 선봤던 사람 말이여. 왜 그 중학교 수학선생 있었잖은가. 사람 참 괜찮았는디 우리하고는 인연이 안 됐제. 그 사람 아내가 이번에 잘못되었다네. 만삭이었는디. 집 앞에서 남편 기다리다가. 애기엄마는 총에 맞고 이미 죽어부렀는디, 뱃속에서 애기는 살아갖고 몇 분을.."

작가는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사진첩을 우연히 펼쳐 본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린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없이 깨어졌다.'

훗날 80년의 광주를 글로 옮기기로 마음먹은 작가 한강은 취재과정에서 알아낸 그날의 사실들을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 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 발씩 죽음을 박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는 '앵커브리핑'을 통해 <소년이 온다>의 다음 부분을 인용하기도 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세월호가 거짓말처럼 바다 위로 올라온 이 순간에도 인양 비용을 거론하고, 수학여행 중 교통사고라 말하고, 책임자들은 벌을 받았으니 잊으라 말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날의 분수대에서 일상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임을 위한 행진곡, 미래 세대에 '신념과 희망의 노래' 되길

1980년 당시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머리띠를 한 어른들이 유리창이 모두 깨진 버스에서 몸을 밖으로 내밀고 생소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우리 동네에 무슨 큰 일이 생겨서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나 보다' 하고 짐작만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로 올라간 그 해, 87년 6월의 항쟁을 통해 쟁취한 대통령직선제를 통해서도 군부독재를 끝내지 못한 패배감으로 학교는 침잠해 있었고 모두는 울분에 가득 차 있었다.

최루탄 가스와 꽃가루가 뿌연 먼지와 함께 날리던 어느 날, 교정의 한쪽에는 참담했던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 날 저녁 어느 선술집에서, 도대체 저 사진들이 광주의 그 날 찍힌 것들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던 친구와 멱살잡이를 했다.

그 역시 처음 보는 그 사진 속 참상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음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광주의 그 날을 두고 모두가 함께 슬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그 날의 충격과 분노는 내내 고통스럽게 따라다녔다. 1988년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희미하나마 희망을 보았던 우리는 삼당합당에 또다시 절망했고, 지역감정의 벽에 갇힌 호남은 점점 '외딴 섬'이 되어 갔다.

시간이 흘러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1979년의 군사쿠데타와 80년 광주학살의 책임자였던 두 전직대통령은 법정에 서게 된다. 특히 광주학살의 주동자 전두환은 반란수괴죄, 내란수괴죄, 내란목적살인죄 등 무려 12개 혐의가 인정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풀려났다.

이것은 오히려 그들에게 면죄부가 되었고, 여전히 건재한 그들은 자서전을 통해 여전히 그 날의 참상을 폄훼하고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택시운전사>의 흥행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5.18의 진상과 역사적 의의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회에서는 정확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

시간이 조금은 걸릴지라도 어둠이 빛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진리는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1992년, 제14대 대선을 앞두고 초원복집에 모여 "지도층들이 지역감정을 좀 부추길 필요가 있다. 좀 유치하긴 해도 역시 지역감정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당시의 법무부장관은 지금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어 있다.

어제를 잘 살피면 오늘이 이해되고 내일을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광주에는 5월에 제사 안 지내는 집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토록 고통스런 시간을 우리는 함께 이겨냈고, 이제 우리 앞에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설움과 절망 그리고 분노의 노래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미래 세대에게는 정의와 신념과 희망의 노래가 될 것이다.
#택시운전사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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