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한 고행

청정하고 안전한 음식찾기

등록 2017.08.22 11:01수정 2017.08.2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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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사람의 행위를 사진이나 그림 등 예술의 소재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과문한 탓인지 먹는 행위에 철학과 사상을 동원하여 의미를 부여했다는 글이나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하여 찬미하는 글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먹는 행위는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사람들이 함께 먹어야 할 경우 조심하고 주의해야 될 예절을 가르치는 글은 많았다고 본다. 불교의 입문서인 초발심자경문처럼 음식을 먹는 행위를 세세하게 규정한 책이나, 일반 가정에서도 젓가락을 다루는 법 등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했던 것들이 먹는 예절을 중시한 사례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역사적 시간과 지구적인 공간에 따라 그리고 종교적인 계율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관심사였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마저 구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기에 그래서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음식의 선택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갖가지 식재료를 사용하여 새롭고 다양한 음식을 개발되고 있으며 그런 음식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기준은 일반적인 법이나 윤리적인 규범을 넘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입장에서 식사 관리에 엄격해야 했다

반드시 식도락가가 아닐지라도 음식을 선택한다는 사실은 본능적인 욕구충족이면서 사는 즐거움이라고 본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면서 근검과 절제를 강조하는 영적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의 문화와 즐거움을 말하면 속되다고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말씀이 아니라 밥으로 사는 사람이 아닌 속물의 삶을 택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지역에 가면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았고 괜찮다고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 오관을 만족시키는지 여부를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졸지에 만난 병으로 인해 나름의 음식 탐방은 끝나고 말았다. 재발가능성과 전이될 수 있다는 개연성이 크다는 의학적인 경고에 주눅 들어 음식에 대한 선택을 극도로 제한하고 절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먹는 음식과 배설의 관계가 일반적인 등식으로 이어지는 환자의 입장에서 음식의 선택과 식사 관리는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잦은 배변으로 인한 고통도 그랬지만 걸핏하면 변을 지리게 되는 실수는 내가 죄를 지어 당하는 수모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 장이 자리를 잡고 적응하게 되어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있으리라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암에 관한 책이나 이미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이 남긴 기록에 뒤적이면서 면역을 기르고 체력을 보강할 수 있는 약, 그러면서 대변횟수를 줄이고 변 지림을 막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았으나 나를 위한 맞춤 치료법은 없었다. 사람마다 나이와 병의 부위 그리고 병의 진행정도와 체질 등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후부터 가장 신경을 썼던 분야, '식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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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같은 뿌리를 가진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을 담은 가을의 전령사라고 하겠다. ⓒ 홍광석


2015년 확진 판정을 받은 후부터 가장 신경을 썼던 분야가 식생활 문제였다. 특히 수술 후에 일상의 중요한 관심사가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미 당뇨와 심장질환 때문에 설탕이 가미된 식품이나 맵고 짠 젓갈류 등을 밥상에서 퇴출시켰던 터라 더 이상 제한하고 조심해야 될 음식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변의 횟수를 줄이고 변을 지리는 실수를 막으려는 목적에 적합한 음식 찾기에 주력했다. 나를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임상실험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런 실험의 결과 음식이란 약품과 달리 몸에 반응하여 즉각 약효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 일반적으로 환자들에게 좋다는 음식도 오히려 체질에 맞지 않은 식품은 탈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년 7개월이 지난 현재, 계절에 따러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재발과 전이를 막는데 신경을 쓰면서 당장 배설에 탈이 나지 않을 음식으로 짜인 식단이 거의 고정되었다. 어찌 보면 완전히 음식에 관한 한 개인적인 욕구나 기호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삶의 질을 따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고도 하겠다.

그러나 어쩌랴. 비록 예전처럼 음식을 골라 먹는 즐거움은 포기하고 암 세포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는 음식, 배변 횟수를 줄일 수 있는 음식, 동물적인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음식을 찾기 위한 부단한 실험을 반복하는 삶일지라도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고 좀 더 살 수 있다면 그런 애로는 감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떻든 그러한 노력의 결과 현재 배변의 상태는 많은 변화가 있다. 대변 횟수는 1일 7회 정도로 거의 안착되어가는 것 같고, 나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변 지림 현상도 2017년 들어서는 1개월 1, 2회로 줄어들었다.

다만 세끼 먹는 정해진 음식인데도 대변횟수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변을 지리는 경우를 만나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고 또 예측불가능한 점이 문제로 남는다. 그냥 이따금 장에서 심술을 부리는 것으로 짐작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여전히 2시간이 넘는 장거리 외출은 조심하고 있다. 마을길을 걷는 운동을 나가는 경우도 그렇지만 시장을 가는 등 잠깐의 외출에도 화장지와 비닐주머니 등은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변화라고 자평한다.

수술 후 2년 3개월, 무사히 한고비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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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포나리 백합과의 일종인 야생화다. 씨앗으로 번식을 하는데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어릴때는 풀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키가 1m이상 자라고 꽃은 백합보다 크고 길며 향기도 진하다. ⓒ 홍광석


지난 8월 1일 CT촬영 등 추적 검사를 마치고, 8월 10일 수술을 담당했던 김 교수로부터 "이상 소견이 없다"라는 결과를 들었다. 수술 후 2년 3개월, 무사히 한고비를 넘겼다는 판정이었다.

내년 1월로 잡아준 대장 내시경 검사 등을 예약하고 왔는데 이제 다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다. 앞으로 중요한 과제 역시 건강을 지켜줄 안전한 먹을거리 찾기가 아닌가 싶다. 때문에 자기 암시를 통한 정신적 치유도 중요하겠지만, 청정하고 담백하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음식,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 찾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구나 이명 현상, 비문증, 잇몸의 부실 등 여러 후유증이 남아있기에 그런 후유증을 치료 혹은 완화시키는 음식 찾기도 남은 과제라고 본다.

어떤 이들은 환자라는 사실을 잊자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려니 하고 살자!'고 해도 매끼니 밥상을 대하면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재발 혹은 다른 곳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는 심적 부담도 털어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제 나는 신체의 아픔과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각자 안고 업고 가야 할 업(業)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히려 환자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보다 적극적으로 살길을 찾고 있다.

어떻든 일차적으로는 완치 판정을 받는 날까지를 목표로 삼겠지만, 늘 나의 처지를 자각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욕망을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실험은 평생 계속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무덥고 힘들었던 여름이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같은 뿌리이면서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다는 상사화가 가을의 전령사로 왔다. 곳곳에서 숨어 자라던 철포나리는 트럼펫 닮은 꽃을 피워 늦더위를 식힌다. 고왔던 꽃들이 시들면 새로운 꽃으로 이어지는 오묘한 자연현상을 볼 수 있는 전원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블러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치유 #상사화 #철포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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