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표지판, 북녘까지 날 수 있는 나비가 부러웠다

DMZ생태평화공원 생태탐방로 걷기여행

등록 2017.08.22 15:15수정 2017.08.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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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생태 평화공원 탐방여행에 나선 일행들 뒤에 DMZ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 오문수


"DMZ 방문하는 이유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관심 가져야 하는 화두이기 때문이죠. 이곳에 오면 분단의 현실이 가슴 아플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태환경이 반갑고 기뻐요. 노동당사 건물이 가장 인상 깊었고 갈 때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가장 이색적인 장소로는 적군묘지입니다."

지난 19일(토) 'DMZ평화누리길 걷기여행'에 동행했던  김혜옥씨가 한 말이다. 그녀는 이 DMZ탐방여행에 5번 참가했다고 한다. 이날 여행에는 전국에서 온 30여 명의 탐방객이 참여했다.


19일 오전 8시, 공덕역 부근에서 철원을 향해 43번 국도를 달리던 버스안에서 행사를 주관한 장승재씨가 마이크를 잡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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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보 생태 숲 탐방을 나선 일행. 오른쪽에 선 분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김혜옥씨로 DMZ생태탐방을 5번 정도 했다고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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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저지선에서 자라는 이끼들을 살피며 사진을 찍는 일행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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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모습. 탐방로 곳곳마다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 오문수


"철원은 역사, 문화, 안보, 생태를 간직한 곳입니다. 우리가 오늘 가야할 곳에는 오성산이 있어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김일성이 살았을 때 국군장교 군번줄 한 트럭을 줘도 안 바꾼다고 했던 산입니다."

필자는 1970년대 철원과 이웃한 화천 사창리의 수색중대에서 근무했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만 들었던 백마고지전투 현장과 철의삼각지대, 60년 동안 잘 보존된 DMZ 내 생태현장을 보고 싶어 탐방단에 참가했다.

철의 삼각지대는 철원, 평강, 김화를 잇는 지리상 삼각지대로 중부전선 장악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다. 한국 전쟁 당시 남북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곳으로 전쟁 후 결국 남북이 이 지역을 양분했다.

생창리, 군사적 요충지로 치열한 전장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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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전에는 민통선 안에 있어 민간인들의 접근이 불허됐던 마을이지만 민통선이 올라가면서 개방된 생창리 모습. 1970년 10월 30일 재향군인회 100세대가 입주하며 생긴 재건촌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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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에 전시된 박제동물로 DMZ인근에서 포획한 동물들이다 ⓒ 오문수


오전 10시 40분, 버스가 멈춘 곳은 생창리에 있는 'DMZ 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이다. 건물은 아담하고 깨끗하게 지어져 여느 시골마을 면사무소 건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1970년대 3사단 수색대에서 근무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민간인 통제구역인 민통선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감히 들어올 수 없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논에서 벼가 자라고 곳곳에 비닐하우스가 세워진 생창리 마을. 외형만 보면 전쟁과 동떨어진 지역에 있는 농촌모습과 똑같지만 사실은 최전방 농촌마을이다.

최전방임을 알 수 있는 건 곳곳에 있는 군인검문소와 바리케이트이다. 생창리는 운장리로부터 2㎞가량 이어진 산록이 서편에서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며 동편 화강(남대천에서 개명) 건너는 개활지로 지뢰지대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으로 성재산과 계웅산이 있고 화강이 흐르는 생창리는 고구려시대부터 김화군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진격로였고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남진로였다. 병자호란 때는 청의 10만 대군에 맞서 싸운  홍명구 공과 유림장군의 충절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6.25때는 피비린내 나는 '철의 삼각지 전쟁터'의 중심에 위치해 완전히 폐허가 됐었다. 1953년 수복되면서 김화군에서 철원군 김화읍으로 개명해 1970년 10월 30일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한 재건촌이다.

60년간 보존된 생태계의 보고, 분단의 아픔 체험할 수 있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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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가 DMZ생태평화공원 탐방로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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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는 일행들 ⓒ 오문수


DMZ생태평화공원은 지난 60년간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이자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케하는 관광코스이다. 생태관광은 생태계 보전이라는 틀 속에서 지역사회의 환경과 문화를 유지하고 사회 경제적 편익 향상에 기여하는 관광유형이다. 방문자센터를 떠난 버스가 DMZ생태평화공원 제1코스인 십자탑 탐방로 앞에서 멈추고 해설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정해진 길을 제외한 곳을 절대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사방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진 촬영하라고 허용하는 곳을 제외하면 절대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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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주변은 지뢰지대이다. 지뢰가 묻혔음을 알리는 표지판 옆에 땅벌이 집을 짓고 오른쪽에는 단풍나무과에 속한 신나무 열매가 걸려있다. 전쟁과 평화, 생태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 오문수


철조망이 쳐진 군부대 옆으로 난 탐방로에는 DMZ란 표시와 함께 하늘로 날아가는 두루미 두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군 검문소에서 출입수속을 마친 일행은 남서방향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며 해설사가 갖가지 꽃 이름을 말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민들레, 질경이, 애기똥풀, 아카시아. 신나무, 버드나무, 괴불나무, 삼지구엽초 얼레지 등등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산하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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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인근에 핀 개나리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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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곳곳에 달맞이 꽃이 널려 있었다 ⓒ 오문수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지뢰'라는 글자가 써진 삼각형 표지판과 철조망이다. 차량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양쪽으로 쳐진 철조망 건너편에는 수많은 지뢰가 호시탐탐 사람의 목숨을 노리고 있겠지.

계속 이어지는 지뢰표지판 하나에는 땅벌이 한 뼘 길이의 집을 짓고 옆에는 단풍과인 신나무 씨앗이 철조망에 걸려 있었다. 신나무는 열매에 날개가 달려있는데 가능하면 멀리 날아가 번식하려는 자연의 섭리가 들어있다.

6.25 전쟁 최대격전지 중 하나인 오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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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생태탐방의 꽃인 십자탑전망대로 오르는 일행들. 올라가면 북한측 오성산이 훤히 보이고 북한측 GP도 보이지만 사진촬영금지구역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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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탑전망대에서 꽃사진을 촬영하는 일행.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오성산으로 6.25전쟁 중 최대격전지 중 하나이다. ⓒ 오문수


고라니쉼터에서 200m 떨어진 산등성이에서 계단을 150m 가량 오르면 제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십자탑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DMZ가 보이고  국군과 인민군이 근무하는 철조망과 함께 북측에 있는 오성산(1062m)이 또렷하게 보인다.

오성산은 6.25전쟁 당시 김화지역 최대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4일까지 유엔군(한국군)과 중공군(북한군) 간에 벌어진 저격능선전투는 혈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제15군은 2개 연대병력의 사상자가, 국군 제2사단은 1개 연대병력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능선이 저격능선이라 불린 이유는 1951년 미 25사단이 고지를 점령할 때 중공군 저격병에 많은 피해를 입어 '스나이퍼 리지(Sniper Ridge)'라 불렀기 때문이다. 결국 오성산을 차지한 김일성은 "한국군 장교 군번줄  한 트럭과도 안 바꾼다"고 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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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인근에는 벌개미취가 활짝 피어있었다 ⓒ 오문수


중국은 오성산 부근의 저격능선전투와 삼각고지전투를 합쳐 '상감령 전역'이라고 칭하면서 '미제와 싸워 이긴 성전'이라고 자랑한다. 중국에서 쓰는 '전역(戰役)'이란 전투보다는 크고 전쟁보다는 작은 개념으로 대개 전쟁국면을 뒤집는 '결정적 한판'을 일컫는다.

십자탑전망대에서 오성산까지의 DMZ는 아프리카 초원같은 평화로운 모습이다. 노루와 멧돼지가 뛰놀고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인민군이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있으니 절대 사진을 찍지 말라"는 해설사의 말과 국군 GP에서 보내는 대북방송소리가 적막을 깼다. 

분단되지만 않았으면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땅인데 오갈 수 없고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몰라 마음속에서 동요가 일어난다. 십자탑전망대에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면서 탐방길을 따라 내려오는 데 옆 사람이 나를 가리키며 "모자 위에 나비가 앉았다"며 사진으로 찍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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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생태탐방 여행을 하는 내모자위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두 시간 정도를 따라왔다. 사람의 무서움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전쟁 중에 죽은 전사자들의 영혼이 넋이 되어 고향에 데려다달라고 붙은 걸까? ⓒ 오문수


내 모자위에 한 시간쯤 붙어있던 나비가 날아가고 이번에는 잠자리가 붙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전생에 나를 사랑하던 여인이 비무장지대에서 나를 반긴 걸까? 아니면 전쟁 때 산화한 아까운 전사자들의 넋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따라온 걸까?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아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나비와 잠자리와 동화되었던 순간이었지만 북녘까지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는 곤충들이 부러웠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DMZ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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