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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였던 대통령의 미디어 정치, 그 몰락의 결정적 이유

[당신이 놓친 다큐] 제14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2017) '다큐로 보는 세상' <레이건 쇼>

17.08.24 16:54최종업데이트17.08.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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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첫 유세 장소로 선택한 곳은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알려진 미시시피주 네쇼파 카운티였다. 1964년 흑인 인권 운동가 세 명이 KKK단에 의해 살해된 이래 민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해왔던 이곳. 레이건은 복지연금을 받으며 캐딜락을 모는 시카고의 여성을 언급하며 복지 문제를 인종 갈등 국면으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남부 지역에서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당시 대통령 후보 레이건의 연설을 통해 사람들은 당연히 복지 무임승차한 여성을 흑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백인이었다. 하지만 레이건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화려하고 유머러스하며 신뢰할 만한 언변에 진실에 대한 눈을 가리고 말았다.

뛰어난 배우 레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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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70이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재선에 성공한 역대 가장 나이가 많았던 대통령, 198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 대통령만큼이나 익숙했던 그. 무능과 존경이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지만, 국민에게는 여전히 호감도가 높은 대통령이다. EIDF(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개막식의 자리를 빛내준 파쵸 벨레즈 감독은 바로 이 대통령 레이건의 시대를 <레이건 쇼>라는 제목의 영화로 작품상 경쟁 작품의 대열에 올랐다.

다큐멘터리는 레이건 시대가 저물어 가는 1988년 이제 곧 대통령직을 마무리할 레이건과의 인터뷰에서 시작된다. 인터뷰어는 질문한다. "당신이 배우였던 것이 대통령직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해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답한다. 바로 이 레이건이 한 답이 파쵸 벨레즈 감독의 <레이건 쇼>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레이건 취임 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미국은 핵전쟁 위기가 높어져 갔고 그런 위기에 대통령 레이건은 불을 지폈다. 다큐멘터리가 주목하는 건 레이건의 정치 행위 방식이다. '한 번도 정치가가 돼본 적이 없다'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대통령 레이건. 그의 행보는 그 이전의 역대 다섯 정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영상 자료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대통령이 된 첫 해에만 무려 7번의 국정 연설을 한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을 TV쇼의 세트장으로 삼았다. 다큐멘터리는 컷 소리와 함께 국민을 향해 유려한 언변을 펼치는 대통령 레이건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담는다.

그토록 수많은 영상을 통해 국민을 매료시킨 대통령. 그 저변의 자질은 그가 '배우' 출신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스스로 배우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배역의 소화만이 아니라, 각본까지 해야 하는 대통령직의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는 그만큼 스스로 좋은 대통령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데 전혀 스스럼이 없었다.

비록 '조연' 배우였기에 할리우드 역사에서 그 존재감은 돋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구, 호남형의 인상을 지닌 이 배우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매번 성격 좋고, 이상적인 영웅상을 맡아왔었다. 그리고 그 '배우'로서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대통령의 이미지에 치환시켰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일찍 방송을 타면서 이미지 쇄신을 노리는 시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이 그의 정치적 입장만큼이나 중요해진 시절이다. 이제 와서 보면 레이건의 미디어 프렌들리가 새삼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1/3은 정책 구상을 하는 둥 하다가, 2/3는 홍보와 행사에 치중했던 대통령 레이건. 분명 2017년에는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바로 '정치'에 있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선례를 남긴 사람이 바로 레이건이라는 점에 다큐는 주목한다.

미디어 정치의 나쁜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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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프렌들리'한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는 시절이지만, 레이건은 그 질문의 시작이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대통령이다. 그의 재임 기간 내내 그에게는 '그가 정말 행정부의 수반인가?'하는 질문이 따라다녔다. 미디어를 통해 유머러스한 모습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고, 결단력 넘치는 영웅의 모습을 견지했던 그. 하지만 실제로는 참모 의존적이며, 심지어 실제 대통령이 영부인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의 반문이 따라다닌 인물이었다. '이란 인질 석방' 등 자신의 정책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실언'이나 '허언'으로 이를 증명해냈다.

행정부의 수반답지 못한 무지보다 더 심각한 건, 그의 맹목적인 카우보이식의 안보관이었다. 1983년 역시나 TV를 통해 중계된 대통령의 연설에서 자유 진영 시민들이 맘 놓고 살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수식어를 앞세워 '스타워즈'란 그럴듯한 허울 좋은 명목으로, 전략 방위 계획을 발주했다. 소련의 미사일이 닿기 전 격추할 수 있는 무기 체계라고 하지만, 언제나 방아쇠를 담길 수 있는 무력행사에 레이건은 거침없었고, 그런 영웅적 행보에 국민은 열광했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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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디어 프렌들리 대통령의 발목을 건 건, 그보다 더 미디어 프렌들리한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란 사실이다. 미소의 국제적인 긴장이 세계적 화두였던 시절, 70대의 레이건보다 더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54세의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정책보다 이미지로 정치를 해온 레이건에겐 가장 큰 위기를 불러왔다. '도베랴이 노 프로베라이(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소련어 한 마디 외에 이렇다 할 이미지적 각인을 불러오지 못한 미국은 전 세계인이 그토록 원하는 핵무기 동결 나아가 폐기까지를 내세운 도발적인 고르바초프의 제안에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정했던 레이건의 냉전적 이미지는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

결국, 노령의 나이에도 재선에 성공했지만 '처음 4년간 히트작만 내다 줄곧 실패작만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그는 여전히 기자들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유머의 너스레를 떨지만, 그 약발은 잦아져 갔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대중적 호감도와 별개로 능력 있는 대통령의 순위에서 레이건을 찾아보긴 힘들다. 제 아무리 '이미지 메이킹'을 해도 결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가 한 일로 결정된다는 것을 다큐는 냉정하게 지켜본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을 행위 예술가로 평가하듯, TV에서 먼저 성공해야 대선의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미디어 정치의 나쁜 선례로서 다큐는 그의 행보를 반면교사의 선례로 삼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레이건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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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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