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국가의 품격'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서평] '자유인의 평등 정치', 가슴 설레는 꿈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록 2017.08.26 09:39수정 2017.08.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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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표지 ⓒ 더 퀘스트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짜우포충 지음)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홍콩 민주항쟁에 영향을 준 책이다.

2014년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홍콩정부청사 옆 거리를 점령하고 중국 정부에 보통선거를 요구했던 '홍콩 우산 혁명'이 벌어졌을 때, 이들이 거리에서 읽은 정치 철학서로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할 바람직한 정치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를 위해 '자유' '평등' '정의'의 가치에 대해 따져 본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할 만한 매력적인 목표로 '자유인의 평등 정치'를 제안한다.

평등한 자유인이 동의할 국가의 품격은?

저자가 제안하는 바람직한 정치의 밑바탕에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이성 능력과 도덕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 이러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타인보다 본질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사람은 없으며 모두 평등한 도덕적 지위에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평등한 자유인'이라는 도덕적 전제에서 정의로운 사회의 원칙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표현은 이렇다.

"이상적인 정치의 출발점은 한 사람 한 사람 평등한 지위를 가진 자주적인 개체로 보고, 이런 밑바탕 위에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 제도를 세울 방법을 모색하는 데 있다."(7쪽)


혹시 어떤 이는 이를 '따분한 도덕' 얘기라고 흘려들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관점은 현실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이어지며, 국가의 정당성 또한 평등한 자유인의 기본권에 부합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요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모든 시민은 국가에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는 구걸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도덕적 권리다. 이는 시혜가 아니라 국가가 시민에게 져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다. 인간은 이 권리를 인식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국가는 폭력적 통치가 아니라 도덕적 근거를 들어 그 통치의 정당성을 시민에게 증명해야 한다."(10쪽)

단지 국가 구성의 정당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벌이는 각종 정책들 역시 그 정당성을 시민이 성찰을 거쳐 합리적으로 승인한 도덕적 이유에 두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그렇다면 국가의 중요한 책임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저자는 "평등한 시민이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홍콩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가 진정 바라는 국가의 품격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 바로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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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홍콩 민주항쟁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정치적 입장은 '자유주의'에 해당한다. 그런데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다. 저자는 독자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것이 '자유방임주의'와는 아주 다르다고 밝힌다. 때로 확실히 구분하기 위해 '자유주의 좌파'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평등과 정의의 가치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오히려 "자유주의가 정말 평등과 사회정의를 중시하지 않는 이론이라면, 이는 자유주의의 전통을 심각하게 위배한 것"(17쪽)이라며 다음과 같이 확고하게 말한다.

"과거 수백 년 동안 이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자유주의는 줄곧 평등을 핵심 가치로 여기고, 이를 주요 정치적 강령으로 삼아왔다. (…) 자유주의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자유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특정 영역의 평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의 모든 시민이 국가로부터 평등하게 존중받도록 싸우고 있다!"(17~18쪽)

또한 자유주의가 작은 정부를 요구한다거나 시장의 폐해를 외면한다는 오해도 있다. 오히려 저자는 사유재산권에 대해서 그 어떤 정치사상보다 근본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정치사상이 자유주의라고 말한다.

"사유재산권의 최종 목표는 모든 사람이 독립과 생존, 발전의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어떤 재산권 제도가, 어떤 식의 자원 분배가 모든 사람이 물질적 기반과 사회적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수 있는가? 이는 자유주의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이며, 이 문제의 최상의 답이 꼭 시장자본주의라는 법은 없다."(220쪽)

롤즈의 <정의론>에 대한 좋은 해설서이기도

저자의 주장은 칸트, 로크, 루소, 롤스, 드워킨의 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특히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가라고 밝힌다.

알려져 있다시피, 롤스의 <정의론>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치 철학 저작으로 손꼽힌다. 저자는 곳곳에서 <정의론>을 해설하며 자신의 논의를 펼친다. 덕분에 이 책은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좋은 해설서로서도 기능한다. 저자가 해설하는 롤스의 정치 철학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평등 정의관'이다.

"롤스의 계약론이 뛰어난 점은 그 뒤에 자리한 평등 정의관, 즉 국가 전체의 기본 제도와 관련된 정치 원칙은 권위자와 엘리트가 아닌 모든 시민이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정의관에 있다."(280쪽)

이러한 견해에서는 당연히 모든 시민이 공평하게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누리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모든 시민이 평등한 정치적 자유를 누리면서 국정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있어야 비로소 평등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는 참여의 요구가 높아지는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용기를 주며 적극적 참여 의지를 북돋는다.

나아가 저자는 "롤스는 심지어 마르크스보다도 수많은 좌파보다도 더 급진적으로 평등을 이해한다"(281쪽)고 설명한다. 실제로 롤스가 제안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재산 소유 민주주의'가 그렇다.

"롤스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체제'가 그의 정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 중 하나라고 보았는데, 이 제도는 사회적으로 '평등한 기본 자유'와 '공정한 기회 평등' 원칙에 부합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며, 노동자가 기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기업의 결정을 내리며 관리층을 선출한다는 특징이 있다."(373쪽)

"'재산 소유 민주주의', 즉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자본과 생산도구를 소유해서 부의 과도한 독점을 가능한 한 무너뜨리는 국면을 가능한 출구로 생각했다."(384쪽)

롤스의 주장을 한번 상상해 보라.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기업에서 노동자가 민주적으로 경영자를 선출한다. 그리고 재산 소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자본이 될 수 있는 기본 자산을 제공한다. 놀랍지 않은가!

대체로 롤스의 <정의론>을 마치 복지 국가 모델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그것은 롤스의 사상을 협소하게 이해하는 것임을 깨우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롤스가 보는 사회정의의 시선이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정치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잘 알려줘

한편, 저자는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단순 이분법과 조잡한 이념 논쟁이 홍콩에서도 문제가 되나 본데,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경계한다.

"사상 논쟁에서 좌우를 나누고, 적과 나를 구분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일단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잘 이해해야 한다. (…) '좌'와 '우' 모두 두루뭉술한, 이데올로기 색채가 짙은 꼬리표다. 이 꼬리표는 문제를 너무나 쉽게 단순화하고, 감정을 건드린다."(240쪽)

단순 이분법, 이념 논쟁 등은 한국 사회에서도 커다란 문제가 된다. 매우 거친 이분법으로 좌와 우를 나눌 뿐만 아니라, 그에 바탕해 진영까지 강고하게 짜려 한다. 심지어 최근엔 신좌파라는 '신흥 종교'를 창설해 정치의 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흔들고 있다. 이는 거꾸로 우리 사회의 정치 담론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현상일 뿐이다.

저자가 자유주의 좌파에 기초해 제안하는 '자유인의 평등 정치'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비판성과 진보성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은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꿈에 부풀게 한다.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정치 철학의 기초를 인상적으로 설명하며,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알아야 할 시민의 교양을 제공해 소중하다. 홍콩에서만 민주 시민의 가슴을 설레게 한 책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책이다.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성숙한 시민을 위한 교양 수업

짜우포충 지음, 남혜선 옮김,
더퀘스트, 2017


#자유 #평등 #정의 #롤스 #짜우포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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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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