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주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지만...

[시골에서 책읽기] 공장폐쇄를 바라본 아픔 <표성배, 미안하다>

등록 2017.08.26 09:37수정 2017.08.26 09:37
0
원고료로 응원
공장 노동자인 표성배님은 공장에서 일하는 삶을 시로 그립니다. 그동안 <기계라도 따뜻하게>나 <저 겨울산 너머에는>이나 <개나리 꽃눈>이나 <기찬 날>이나 <은근히 즐거운> 같은 시집을 선보였습니다.

공장 노동자 시인은 시에 산문을 엮은 <미안하다>(갈무리 펴냄)라는 책을 새로 선보입니다. 공장 노동자라면 누구나 겪거나 마주할 수 있는 일을 시와 산문 두 가지 이야기로 들려줘요. 어느 날 갑자기 '공장 폐쇄'라는 날벼락이 떨어지면서 이도 저도 하기 어려운, 그냥 나갈 수도 없지만 그대로 버티기도 어려운, 아프면서 힘든 일을 맞닥뜨렸다고 합니다. 이때가 2015년 겨울입니다.

공장이 언제라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 대부분 잊고 산다.
그만큼 순박하다고 해야 할까.
이런 순박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만 하다
어느 순간 공장 문이 닫히면 그 결과는 혹독하다.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4∼5쪽)

a

겉그림 ⓒ 갈무리

<미안하다>를 쓴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요. 이 책을 읽는 마음도 나란히 아픕니다. 왜 '미안하다'라고 말하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한국말사전을 펼칩니다.

'미안하다(未安-)'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이 낱말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아니, 공장 노동자 표성배님은 공장장도 사장도 아닌데 '공장 폐쇄'를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요? 정리해고를 받아들여서 나가겠느냐고 설문(또는 설문이라는 이름으로 몰아붙이는 폭력)조사를 하는 회사에서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한 마디도 안 했다는데, 공장 노동자 한 사람이 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왜 작은 한 사람이 마음이 가볍지 못하면서 부끄러워야 할까요? 주먹을 휘두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주먹질에 얻어맞아 아픈 사람이 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60세가 정년이라고 취업규약에 단체협약에 정부가 펴내는 홍보물에 반듯하에 인쇄되어 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11쪽)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나 불법적인 정리해고나 공장 폐쇄 등에 맞서 송전탑이며 공장 옥상, 크레인 위나 심지어 광고탑에까지 올라가서 밥을 위해 밥을 굶어도,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는 노동부는 자본을 대변하고 있고, 정론을 펼쳐야 하는 언론은 이를 모른 체한다. (13쪽)

우리는 2015년을 지나고 2016년을 거친 2017년을 살아갑니다. 햇수로 치면 고작 세 해입니다만, 이 세 해 사이에 나라에는 참으로 커다란 일이 불거졌습니다. 뒤에서 검은 짓을 한 이들이 들통났어요. 이들은 작은 사람들이 손에 쥔 촛불로 물결을 이루자 버티고 버티다가 끝내 높은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러고 나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새로 뽑았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미안하다'고 할 만한 일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공장 노동자뿐 아니라 이 나라 모든 노동자는 헌법에 적힌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요? 법그물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거나 아예 법을 짓밟는 모든 얄궂은 짓을 끝낼 수 있을까요?

"기업 경영하기 좋은 나라 기업 경영하기 좋은 도시"라는 광고 문구 앞에 꿇어앉아 있는 노동자를 상상한다. 심지어 큰 공부를 한다는 대학마저 취업률로 학생들을 줄 세운다. 대기업만 살고 모든 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35쪽)

침묵의 무게. 오늘부터 18일까지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공지를 메일로 받았다. 기술직 180여 명. (93쪽)

나라에서도 도시에서도 이제껏 기업이 살림을 꾸리기 좋은 터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앞으로는 사람들 누구나 살기 좋은 나라나 마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나 마을이 되고, 평화롭고 평등하면서 이웃이 어깨동무할 수 있는 나라나 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즐거움을 즐겁게 나누고, 괴로움은 홀가분하게 털어내듯이 나눌 수 있는 나라나 마을이 되기를 바라요.

일요일이라고 특별하게 쉬어야지 하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지난 십수 년 동안 그랬다. 당연히 공장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러니까 공장에 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게 마음이 편안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187쪽)

40%. 187명 중 74명의 동료가 공장을 떠났다. 40%다. 40도짜리 술이라도 한잔해야 견딜 수 있겠다. 너무 독하다. 혀끝에서 입안을 훑고 위장을 뒤흔들고 있는 이 뒤끝. 어지럽다. (201쪽)

표성배님은 공장에 남았다고 합니다. 떠나야 한 사람이 40%요, 남을 수 있던 사람이 60%라고 해요. 남은 사람이 떠난 사람한테 미안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만, 기업주가 40% 노동자한테 하지 않은 말 '미안하다'를 <미안하다>라는 책에 조용히 적바림합니다.

그래요,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서로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함께 일하는 벗님입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이 있다고 할 만합니다. 미안한 마음을 글로 남겨서 이렇게 온누리에 띄우는 사람은 이 나라가 평화롭고 평등한 길로 거듭나기를 비는 뜻을 품었다고 할 만합니다.
덧붙이는 글 <미안하다>(표성배 글 / 갈무리 펴냄 / 2017.6.16. / 15000원)

미안하다

표성배 지음,
갈무리, 2017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인기기사

  1. 1 [전문] "존재감 없음"... "검찰 대응 수월"... '판사 불법사찰' 문건 공개
  2. 2 윤석열 총장의 위기, 자업자득이다
  3. 3 윤석열 검찰총장님, 이런 과거가 있습니다
  4. 4 '사법농단' 알렸던 이탄희 "판사사찰, 양승태 때와 같은 일"
  5. 5 판사 출신 이수진 "위헌적 사찰문건, 윤석열 탄핵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