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질식사',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요?

[取중眞담] 올해만 2명 사망... 미국은 질식사 경고문 부착

등록 2017.08.25 16:24수정 2017.08.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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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초코파이 ⓒ 청소년문화공동체 필통


초등학생이 초코파이를 먹다가 숨지는 일이 24일 발생했습니다. 12살 권○○군은 자폐증 증상이 있었죠. 옆에는 소년의 어머니가 있었지만, 그는 지적장애 2급이었습니다.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할머니가 뒤늦게 아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뒤로 추정됩니다.

구급대가 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심장이 멎은 아이의 손가락을 바늘로 따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기자로서 많은 사건을 접하지만 유독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정'(情)을 나눈다는 초코파이를 먹다 죽어버린 아이의 손가락을 하염없이 따고 있었다는 그 모정이 떠올라 특히 그랬습니다.

사실 초코파이를 먹다가 질식으로 사망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없지도 않은 게 세상사이죠. 불과 얼마 전, 올해 3월에도 학과 행사에서 초코파이 빨리 먹기 게임을 하던 여대생이 질식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간호학과 학생이었고 교수와 친구들이 기도에 막힌 음식물을 빼내는 '하임리히법'과 심폐소생술까지 했지만 숨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초코파이에 경고문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국내에서 제일 판매량이 많다는 초코파이 상자에서는 '직사광선을 피해 온습도가 낮은 곳에 보관, 개봉 후 가급적 빨리 드세요'라는 취급 주의 문구 외에는 다른 경고문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 수출용 초코파이를 찾아보니 역시 우리 말과 같은 내용의 문구 (AVOID DIRECT SUNSHINE, KEEP IN COOL AND DRY PLACE, EAT SOON AFTER OPENING)밖에는 없더군요.

'질식 경고' 붙이는 외국..."경고문 넣는 것 고려해야"

미국에서 판매하는 한 마시멜로 제품의 질식 경고(Choking warning). 한번에 하나씩 섭취하고 특히 4세 이하 아동은 잘라서 섭취하며 아이들의 경우 보호자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표기하고 있다. ⓒ warmart.com


외국은 어떨까요. 미국에서 판매하는 마시멜로에는 '질식 경고'(Choking warning)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섭취하고 아이들에게는 보호자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에서 수입한 마시멜로우에도 '섭취 시 질식의 위험이 있으므로 한 번에 1개씩 섭취하라'는 안내와 함께 '어린이와 노약자는 보호자의 관찰 하에 잘게 잘라 꼭꼭 씹어서 섭취하라'는 한글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초코파이의 하얀색 부분이 바로 이 마시멜로입니다.

앞서 두 사건이 아주 일반적인 경우라고 보기 어렵더라도 한국 제품에 이런 안내 문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관련해서 소비자법을 연구해 온 서희석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서 교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제가 어릴 때 초코파이 초기 광고에서는 파이를 한 입에 넣는 장면이 들어갔어요. 소비자가 한 입에 먹기 적당한 식품이라고 인식할 여지가 있었던 거죠. 유사한 사건이 올해만 두 건이나 발생했다면 식품 회사가 자발적으로 경고문을 넣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식약처 같은 곳에서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고요."

만약 이런 일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떠했을까도 궁금했습니다. 서 교수는 "미국이었다면 소비자가 소송으로 갔을 때 승소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서 교수는 "한국이라면 사정이 다르다"면서 "개별 구체적인 상황은 따져 봐야 하겠지만 제조업체의 과실이라고 인정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습니다.

물론 그 작은 몇 줄 들어간다고 얼마나 달라지겠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몇 줄조차도 없다는 건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부디 초코파이의 비극사를 쓰는 기사가 이번으로 마지막이었으면 합니다.

권군의 명복을 빕니다.
#초코파이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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